소유욕은 자의식과 함께한다
자, 이제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려는” 사람, 즉 ‘자신을 비우지 못해 세상에 노닐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을 철학적으로 심화해보도록 하죠. 첫 번째는 소유욕과 자의식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배를 얻어 타고 황하를 건넌다고 해볼까요. 이때 다른 배가 잘못해서 이 배에 부딪히면, 배 주인과 배를 얻어 탄 사람 중 누가 더 화를 낼까요? 아마도 ‘내 배야’라는 의식을 가진 배 주인일 겁니다. 층간 소음이 발생한 경우도 생각해보세요. 같은 집이어도 월세로 사는 사람과 자기 집인 사람 중 누가 층간 소음에 민감할까요? 비슷한 성정을 가지고 있다면 집 소유자가 더 민감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산길에 있는 바위와 내가 집 앞에 설치한 벤치가 있다고 해보세요. 그 바위나 벤치는 두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내가 먼저 앉아 있는 곳에 다른 사람이 앉으려 할 경우, 바위와 벤치 중 어느 곳에서 더 불편하고 심지어 불쾌한 감정이 들까요? 벤치 쪽일 겁니다. 바위는 내 것이 아니지만 벤치는 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죠. 이는 모두 내가 가진 것이 나를 설명한다는, 달리 말해, 나는 내가 가진 것이고 내가 가진 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해묵은 편견과 관련됩니다.
재산, 지위, 권력, 명예, 학위, 소위 스펙이라고 말하는 것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희소하고 근사한 것을 가질수록, 혹은 평범한 것이라도 많이 가질수록, 나는 근사한 사람이 되고 부유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죠. 권력을 가지면 위대한 사람이 되고, 돈을 많이 가지면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위대한 사람인 나를 유지하고 싶다면 나는 권력을 쥐고 있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부유한 사람인 나를 유지하고 싶다면 돈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죠.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 침범할 때 우리가 격렬히 분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누군가 내가 가진 것을 훼손하면 그는 나를 훼손하는 것이고, 누군가 내가 가진 것에 침을 뱉으면 그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소유욕은 자의식과 함께합니다. 식당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포크를 들어내 파스타를 덜어갈 때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산 파스타야” “이 파스타는 내 거야” 이런 생각이 강할수록 나의 분노는 클 겁니다. 그러나 공짜로 얻은 파스타라면 화가 덜 나겠죠. 혹은 내 사람이라고 여기는 아내나 남편, 아이 혹은 친구나 애인이 내 파스타를 가져갔다면 모멸감을 느끼거나 화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공식처럼 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 것이라는 의식은 나라는 의식과 함께한다”고 말이죠. 이제야 우리는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려는” 그 군주가 왜 자신의 배에 부딪힌 다른 배에 분노하는지 알게 됩니다. 배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거대한 배는 바로 자신의 소유물이자, 나아가 군주로서 자기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빈 배가 와서 부딪힌 경우 화를 삭이거나 화를 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소유물을 훼손하는, 혹은 빼앗을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야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 노닐어야 한다”는 장자의 가르침 중 “자신을 비운다”는 말의 의미가 우리 눈에 드러납니다. ‘실(實)’이 가득 채운다는 의미라면 ‘허(虛)’는 텅 비운다는 뜻입니다. 이미 ‘비운다’는 말에는 어떤 소유 의식의 부정이 전제되어 있죠. 자신을 비운다고 해서 멍하니 의식을 버린다거나 무언가 신비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층간 소음이 들리면 윗집 아이들이 아파트에서도 건강하게 자란다고 생각하고, 내가 앉아 있는 벤치에 누군가 앉으려 하면 그가 편히 앉도록 엉덩이를 옮겨주고, 누군가 파스타를 가져가 먹으면 그가 얼마나 배고팠을지 걱정하는 것이니까요. 결국 “자신을 비우자” 놀랍게도 그 자리에 타자가 들어섭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자연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비운 사람은 극도로 타자에 민감한 상태에 있게 되니까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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