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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공자의 효 담론과 주자의 효 중시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제1장 주자학과 『효경간오』 - 공자의 효 담론과 주자의 효 중시

건방진방랑자 2023. 3. 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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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효 담론과 주자의 효 중시

 

 

그렇다면 주희는 자신의 사상체계 속에서 효경을 파기해버렸을까?

 

()라는 것은 인륜의 대본(大本)이요 유교의 대강(大綱)이다. 공자가 인()을 말하였다고는 하나, 인은 너무 어렵고 구름 잡는 것 같아 이해하기가 어렵다. 논어(論語)를 펼치면 바로 두 번째로 유약(有若)의 말로서 기록된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는 로기온이 나오고 있다. 효야말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는 뜻이다. 인의 구체적인 실천덕목이 효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인을 가깝게 실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효()이다.

 

위정편에 보면 제5장부터 제8장까지 쪼로록 효에 관한 담론이 나오고 있다. 공자의 효에 대한 생각을 매우 절절하게 알 수 있다. 효에 관한 공자의 생각은 개념화되어있질 않고, 매우 실제적인 가족관계에서의 미묘한 감정의 교섭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위정편 21에는 누군가 공자에게 왜 정치를 직접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이와 같이 대답한다: “서경효성스럽도다. 효성스럽도다. 형제간에 우애가 깊도다. 이를 정치에 베풀도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함이 아니겠는가? 어찌 내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만이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子曰: ‘書云: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공자는 효가 실천되는 사회가 되면, 구태여 자신이 정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정치의 목표가 결국 효라는 인간관계의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희가 유교적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말하는 한에 있어서 효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가 도외시한 것은 효경이라는 텍스트였고 효()라는 덕목이 아니었다.

 

주자행장(朱子行狀)에 보면 희는 8세 때에 서당 선생님으로부터 효경을 전수받았는데, 한번 눈을 스치자마자 그것을 통달하고, 그 책 위에 6글자로 제()하기를, ‘이와 같지 아니 하면 인간의 자격이 없다. [不若是, 非人也]’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희(紹熙) 5(1194) 봉사(封事)를 올리기를, ‘제가 읽은 것이라곤 효경논어(論語)』 『맹자(孟子), 그리고 육경뿐이올시다. 그리고 배운 것이라곤 요ㆍ순ㆍ주공 ㆍ공자의 도()에 지나지 않습니다[臣所讀者, 不過孝經語孟六經之書. 所學者, 不過堯舜周孔之道]’라고 하였고, 여자에게도 마땅히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효경논어를 가르치는 것 외로도, 여계(女誡)한서의 저자 반고(班固)의 여동생 반소(班昭)가 여자의 덕성에 관해 지은 책가범(家範)송나라 때 대학자 사마광(司馬光)이 가정일상 규범에 관하여 쓴 이론서로서 그의 속수가의(涑水家儀)라는 책과 한 쌍을 이루는 책을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효경논어를 여성들까지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 지칭하고 있어 주희 자신이 효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희는 49(순희淳熙 5)로부터 52세까지 남강군(南康軍)의 지사로 있었는데 그때도 효경서인장(庶人章)을 설파하면서 백성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하여튼 이러한 기록은 주희 본인이 어려서부터 효경을 존중하였고, 사람들이 자기수양의 기틀로 삼아야 할 책으로 간주하였으며, 서민들의 교육에도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효경이라는 텍스트를 거의 파기하다시피한 그의 지적 작업의 파산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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