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찍기
몸나와 얼나는 결국 ‘가온찍기’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가온찍기’란 물론 원래 있던 우리말이 아니고 다석이 만든 말이다. ‘가온’의 뜻은 역시 ‘가온데’라는 뜻이 일차적인 것으로 나의 내면 중심이면서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가온’의 의미 속에는 ‘온전함’이라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찍기’란 ‘점을 찍는다’는 말의 동명사형이다. 가온찍기란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참나를 영원히 오가는 시공간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만나는 생명사건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되는 찍음이다. 그 가온찍기가 씨ᄋᆞᆯ이요 해탈이요 견성이요 십자가를 짐이다. ‘찍기’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그것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찍는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효라는 것은 돈오(頓悟)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점수(漸修)적인 것이다. 돈오(頓悟)는 가온찍기의 점수(漸修)과정 속에 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석의 씨ᄋᆞᆯ사상에는 여래장적 요소가 희박하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그것을 구현하는 예수라는 생명,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나가 모두 무화(無化)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함석헌의 씨ᄋᆞᆯ은 여래장적 실체화의 가능성을 내포할 것이다. 함석헌의 언어는 그러한 문제에 관한 금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좀 복잡한 문제인데 나의 논의는 마쯔모토 시로오(松本史郞)의 『연기와 공 – 여래장사상비판(緣起と空 – 如來藏思想批判)』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혜원 스님의 번역본이 있다】.
이상으로 간략히 소개한 다석 유영모의 효기독론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기독교신앙의 수직구조가 전통적 효개념의 수직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그 한 축에서 찾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석은 그 수직구조를 수운, 해월과 같은 동학의 사상가들이 수평구조로 해소시키려고 노력한 것과는 달리 그 수직구조의 보편주의적 진면목을 추구함으로써 조선왕조의 효윤리의 폐해를 막으려 하였던 것이다. 효가 기껏해야 일가족 내에서의 생리적 존재에 대한 충성이나 복종으로 이해될 때, 그것은 무서운 질곡이 될 수도 있다. 효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를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확이충지(擴而充之)할 때 효는 우주론적 차원을 확보하고 좁은 윤리의 리고리즘(rigorism)을 벗어난다.
군(君) | 하나님 아버지 | |||
충(忠) | ← 충화(忠化) |
효(孝) | ||
신(臣) | 예수 - 인간 |
<기독교신앙의 왜곡된 모습>
이 도표에서 효(孝)가 충화(忠化)되는 위험성을 다석은 가장 크게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의 현실은 효를 충화시킨 결과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ᄒᆞ면 아니된단 어머니 ᄆᆞᆷ 아ᄇᆞ지 뜻 참 믿고 따라간 것이 아ᄃᆞᆯ인가 ᄒᆞ노라 『다석일지공부』 Ⅱ-690
효자로서의 아들 예수의 삶을 잘 그려놓은 다석의 말이다.
인용
'고전 > 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경한글역주, 4장 불교에서 말하는 효 - 목련존자와 우란분회: 초윤리와 일상윤리의 접합 (0) | 2023.03.30 |
---|---|
효경한글역주, 4장 불교에서 말하는 효 - 불교와 유교의 충돌 (0) | 2023.03.30 |
효경한글역주, 제3장 다석의 효기독론 - 군신관계로 충화된 기독교신앙 속 얼나와 몸나 (1) | 2023.03.30 |
효경한글역주, 제3장 다석의 효기독론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0) | 2023.03.30 |
효경한글역주, 제3장 다석의 효기독론 - 다석 유영모(柳永模)의 언어세계 (0)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