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큐자료【마태와 누가에서 마가자료를 제외시키고 남은 자료에서 또 다시 공통되는 자료로서 공관복음서에 내재하는 어록복음서(sayings gospel)이다. 공관복음서의 가장 오리지날한 층대를 형성한다】에 속하는 예수의 주기도문(마 6:9~13, 눅 11:2~4)도 인자하기 그지없는 아빠의 나라(바실레이아, βασιλεία), 곧 사랑밖에 모르는 아빠의 다스림(Reign)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간구하는 기도일 뿐이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명수,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제8장 ‘큐복음의 주기도문’ 참고, 통나무출판사에서 2009년에 출간됨. 김명수의 큐복음서에 관한 함부르그대학 박사학위논문은 세계큐연구학회(IQP)의 권위 있는 정경으로 선정되었다】.
예수를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온전한 효자로서 규정했을 때에, 그 효의 개념 속에는 ‘아버지에게로의 아들의 복종’이라는 전통적 효의 뉘앙스가 물론 내포되어 있다. 아버지가 죽으라면 서슴치 않고 죽기까지 하는 아들의 모습이 예수의 십자가에 서리어 있다. 그러나 예수의 복종은 나 밖으로부터 내려오는 일방적 명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기버림’이다. 예수의 자기버림이 곧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다.
그러니까 다석에게 있어서 예수의 ‘십자가’는 예수의 효(孝)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기계적인 복종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אלי אלי למה סואחטאני,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치는 인간적 번뇌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다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쌍방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 예수가 자기를 버렸다면, 물론 아버지 하나님도 자기를 버려야 한다. 욕심내고 질투하기만 하며, 자기만 믿으라고 인간을 징벌하는 독점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구약의 이스라엘 종족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한 욕심쟁이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이 효(孝)는 아니다. 효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상국가인 대동(大同)사회를 논한 『예기』 「예운」편에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무엇이 사람의 의로움인가? 아버지가 자애로울 때 자식은 효성스럽게 되고, 형이 착하게 굴 때 동생은 형을 따르고, 남편이 의로울 때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게 되고, 어른이 은혜를 베풀 때 어린 사람은 순종하게 되고, 임금이 인(仁)할 때 신하는 충성을 다하게 된다. 이 열 가지의 쌍방적 관계를 일컬어 인의(人義) 즉 사람의 의로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何謂人義? 父慈子孝; 兄良弟弟; 夫義婦聽; 長惠幼順; 君仁臣忠. 十者謂之人義.
십의(十義) | |
부자(父慈) | 자효(子孝) |
형량(兄良) | 제제(弟弟) |
부의(夫義) | 부청(婦聽) |
장혜(長惠) | 유순(幼順) |
군인(君仁) | 신충(臣忠) |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강성은 쌍방성이다. 인륜의 도덕이 호혜적인 정당한 관계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아들의 관계가 쌍방적이 아닐 때는 인간세의 모든 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만다.
예수가 자기를 버리듯이 하나님도 자기를 버린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도 자신을 끊임없이 무화(無化)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나 노장(老莊)이 말하는 허(虛)가 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허무(虛無)가 기독교에 고유한 인격성을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 허무(虛無)를 친근한 아버지로서 감지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참나, ‘얼나’【다석의 용어: ‘몸나’에 대비되는 ‘얼나’】가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격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경계해야 할 사태는 하나님을 인간화시킴에 존(存)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유교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효(孝)를 철저히 충화(忠化)시켜버린 것이다. 충(忠)을 인간 내면의 중심(中心)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군신(君臣)관계에 있어서의 일방적 충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의 효는 군신의 충의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군신의 충을 실현키 위한 세뇌적 도구로서 가정 내에서 부자의 효를 강요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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