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신관계로 충화(忠化)된 기독교신앙 속 얼나와 몸나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다석이 말하는 보편적ㆍ쌍방적 효의 실천의 대상이 아니라 군신(君臣)의 관계로 충화(忠化)된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철저히 인간화된, 그러니까 타종족의 신앙을 배타하기 위하여 폭력화된 하나님이며, 그것은 타종족(이단)을 무찌를 수 있는 군주(a secular King)로서의 하나님이다.
다석의 효기독론이 철저히 배제하는 것은 충화(忠化)된 유교의 형식주의적 측면과 서구전통의 인격성의 배타성과 폭력성이다. 다석의 하나님은 인간화된 모습으로 칠정(七情)의 식색(食色)을 드러내는 하나님【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관이나 희랍 신관의 일반적 모습】이 아니라, ‘없이 계신 하나님’이다. 그것은 표전(表詮)으로서의 태극(太極)의 배면에 있는 차전(遮詮)으로서의 무극(無極)이다【머우 쫑산(牟宗三) 교수의 표현】. 끊임없이 자신을 무화(無化)시키면서도 끊임없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력으로서의 생생지도(生生之道, Creative Creativity)【황 똥메이(方東美) 교수의 표현】이다. 그것은 바로 장횡거(張橫渠)가 서명(西銘)에서 말한 ‘건칭부곤칭모(乾稱父坤稱母)’로서의 부모(父母)이다. 따라서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모든 존재는 나의 동포이다(同胞)【탯줄을 공유한 존재, 원불교에도 ‘동포은(同胞恩)’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 동포 역시 배달민족 동포가 아니라 천지만물과의 동포의식이다】. 따라서 효자 예수와 나와의 간격은 존재할 수 없다【이러한 문제에 관한 담론으로서 다석의 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명저가 있다. 감신대 이정배 교수의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 多夕신학의 얼과 틀 그리고 쓰임』을 보라. 다석신학을 현대신학 담론의 주류적 쟁점 속으로 편입시킨 그의 공로는 크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정배 교수는 종교간의 편견없는 소통을 가장 자유롭게 외쳤던 변선환의 제자로서 김흥호의 가르침을 정통적으로 계승하였다】.
안병무(安炳茂)가 유영모(柳永模)의 집회에 참석했을 때 유영모와 나눈 유명한 대화가 있다(안병무의 구술을 기록한 것).
유영모: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내’는 나 유영모의 ‘나’를 가리킵니다.
안병무: 그것이 어떻게 선생님의 ‘나’입니까? 예수님의 ‘나’이지 않겠습니까?
유영모: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남’의 이야기로서 읽지 않습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곧 나의 삶과 죽음입니다. 예수의 ‘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라는 개인의 ‘나’가 아닙니다. 그 ‘나’는 하나님의 ‘나’이며 온 인류의 ‘참 나’입니다.
예수라는 인간 개인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면 그것은 또 다시 예수 자신의 효(孝)를 충화(忠化)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예수에 대한 효를 충화시키는 것이다. 충화되는 동시에 예수는 폭군(暴君)으로 화하고 만다.
예수는 하나님일 수가 없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됨을 온전한 효(孝)로서 보여준 사람의 길[道]일 뿐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인간의 참 생명이 몸에 있지 않고 얼에 있는 것임을 알리러 온 것이다. 다석은 말한다.
내가 없는 것이 마음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하게 되어야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거울 같은 마음이요, 얼이요, 얼은(成人)이다. (이정배 75).
몸나가 없는 곳에 한아님이 계시고, 한아님 앞에는 얼나가 있다. 얼나가 있는 곳에 한아님이 계시다. … 얼나와 한아님은 하나다. (이정배 68).
다석에게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몸나’와 ‘얼나’의 대비적 관계는 성리학의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대비로 이해할 수도 있고, 바울이 말하는 육체와 성령, 몸과 영, 율법과 의, 사망과 생명 등등의 이분법적 사유로 규정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다석에게서 몸의 극복은 몸에서 완성되는 것이므로 결코 그러한 이원론의 틀로써 다석의 사상을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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