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효도의 방법
1-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그 하신 일을 살핀다.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침이 없으면 효라 이를 만하다.” 1-11.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
그 뜻과 그 행실의 주체
‘삼년무개어부지도(三年無改於父之道), 가위효의(可謂孝矣)’는 「이인(里仁)」 20에 한 글자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다시 나오고 있다. 아마도 삼년상의 문제와 더불어 공자가 살아 생전에 자주 이야기했던 말이 다양하게 전송(傳誦)된 파편들일 것이다.
우선 ‘부재관기지(父在觀其志), 부몰관기행(父沒觀其行)’의 해석은 역사적으로 고주(古注)나 신주(新注)나 ‘기(其)’의 지시체를 아버지[父]로 보지 않고 모두 자식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모든 전통적 해석은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 인간의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그의 드러나는 행동을 보지 않고 그 내면의 심지를 살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때부터는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자기행동을 할 수 있음으로 그 사람의 행동만 보아도 그 인품의 됨됨이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孔安國曰: “父在, 子不得自專, 故觀其志而已. 父沒, 乃觀其行也].
그러나 매우 소박하게 이 구절을 읽을 때, 이 구절의 의미는 ‘삼년무개(三年無改)’와 연접되어 있음으로 기지(其志), 기행(其行)이 부지도(父之道)와 관련되는 어떤 사태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한 인간의 인격판단기준을 부재(父在), 부몰(父沒)에 따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지(志)’는 요새말로 지향성(intentionality)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생동하는 마음의 지향성이다. 지(志)는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역동적 의지의 세계다. 따라서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 아버지의 살아 움직이는 뜻을 즉각 즉각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러한 지(志)는 포착될 수 없으므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의 행업(行業), 그러니까 이루어 놓은 업적 등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효심(孝心)의 기본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삶의 길[道]을 최소한 삼 년 동안은 고침이 없어야 한다. 삼년의 설정은 꼭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삼년상(三年喪)’이라는 공자 교단의 규율을 생각할 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아버지가 해오던 일들, 주변에 형성된 삶의 방식을 너무 매정하게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린다면 앞서 ‘신종추원(愼終追遠)’에서 말한대로 역사의 단절이 초래되는 것이다. ‘삼년무개(三年無改)’란 요새말로 하면 스무드하게 넘어가는 트랜지션(smooth transition)을 말하는 것이요, 심리적으로도 자연스러운 거리감의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위효의(可謂孝矣)’에서 ‘가위(可謂)’는 강한 가치판단을 나타내고 있다. 그냥 가볍게 ‘효라 이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라야 비로소 효라 할 만하다’는 강한 어조가 숨어있다.
나쁜 부모라면
전통적으로 ‘삼년무개어부지도(三年無改於父之道)’를 놓고 아버지의 도(道)가 악한 것일 경우는 어떠하냐? 그래도 3년은 무조건 고수해야 하느냐? 는 등등의 문제를 놓고 시시콜콜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은 결코 그런 특수 맥락을 전제로 해서 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상황적으로’ 자연적으로 해결될 문제이지 어떤 절대적 규범으로 접근하면 아니된다.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도’를 말할 때는 대강 그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이요, 삼 년을 설정해 놓고 생각하면 그 나쁜 면은 점차 잊혀져 갈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그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돌아가신 후에 삼 년 동안 ‘유훈통치(遺訓統治)’를 하고 그 도(道)를 고침이 없었다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사례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얼마나 『논어』의 가치관이 뿌리 깊은가를 잘 나타내주는 하나의 구체적 에피소드일 것이다.
‘행(行)‘은 거성이다. ○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아들은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는 판단키 어렵고, 그 행동의 내면에 숨어있는 뜻을 보아 그 인간됨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연후에는 그 행동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행동을 보면 그 인간됨의 선악을 족히 분변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말아야 비로소 그 효성스러움을 볼 수가 있으니, 만약 그렇지 아니 하다면 그가 행한 바가 비록 선하다 할지라도 또한 효의 자격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行, 去聲. ○ 父在, 子不得自專, 而志則可知. 父沒, 然後其行可見, 故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 然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 乃見其孝, 不然, 則所行雖善, 亦不得爲孝矣.
○ 윤언명(尹明)이 말하였다: “아버지의 하신 일이 도에 합당하다면 3년 아니라 종신토록 고치지 않더라도 가하지만, 만약 아버지의 하신 일이 도에 합당치 아니 하다면 어찌 3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3년을 고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은 효자의 마음에는 차마 함부로 할 수 없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尹氏曰: “如其道, 雖終身無改可也. 如其非道, 何待三年. 然則三年無改者, 孝子之心有所不忍故也.”
유정부(游定夫)가 말하였다: “3년 동안 고치지 말라는 것은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 있다 할지라도 3년 동안은 고치지 말고 기다려보라는 것을 또한 일컫는다.”
游氏曰: “三年無改,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
부모의 도라 할지라도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라면 즉각 고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고쳐야 함’에 대한 판단의 정당성을 즉각적으로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수학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3년 정도의 유보기간을 설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주자어류』 권22에 이 문제에 관하여 ‘3년 지난 후에는 고쳐야 할 것이라면 고쳐도 좋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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