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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학이 제일 - 12. 예(禮)는 조화를 귀히 여기지만, 악(樂)으로 절제해야 한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학이 제일 - 12. 예(禮)는 조화를 귀히 여기지만, 악(樂)으로 절제해야 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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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는 조화를 귀히 여기지만, ()으로 절제해야 한다

 

 

1-12. 유자가 말하였다: “()의 쓰임은 악()의 조화로움을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는 이 조화를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나 작고 큰 일이 모두 이 조화로움에만 말미암는다면 때로 행하여지지 않는 바가 있을 수도 있다. 오직 조화만을 알고 조화를 도모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하여 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1-12.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예악사상(禮樂思想)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논어를 읽었지만 본 장의 유약의 말과 같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리 구구한 설명이 있어도 구체적인 레퍼런스(reference)가 없으면 그 추상적 언어들은 뜬구름을 잡는 듯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애매모호하기만 한 것이다. 서양철학의 언어는 대부분 추상적이라 해도 거기에는 치열한 논리가 있다. 그러나 동방의 고전은 대개 논리 중심이 아닌 압축된 계발성의 아포리즘(aphorism)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포리즘은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없으면 해석이 불가능해진다. 많은 경우 고전의 텍스트는 전송이나 전승과정에서 탈락이나 착간이나 오독과 같은 여러 형태의 커럽션(corruption, 부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텍스트의 문제로서 난독(難讀)현상을 설명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구조에서 그 언어를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 체험의 포커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의 초점을 획득하고 나면 난해했던 문구들도 쉽게 풀려나가는 것이다.

 

예약(禮樂)’이라는 문제는 중국고전에서 항상 하나의 개념으로서, 그러니까 예()와 악()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추상개념으로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우리는 지금까지도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냥 태고적 개념인 것처럼 소외시키고만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예악사상이라는 것을 나의 일상성으로부터 객화시켜 그냥 부정적 맥락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재즈 공부를 조금 취미삼아 하는 중에 어느 순간엔가 문득 이 장의 의미를 확연히 깨닫게 되 었다. 고대인들의 삶이나 현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예악이라고 하는 것의 공 통된 의미체계를 발견하지 못하면 이 유약의 말은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언뜻 이해가 쉬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예절이나 에티켓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본 장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반드시 고례(古禮)에 있어서는 선왕지도(先王之道)를 가리킨다. 선왕지도라는 것은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모든 의례를 총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선왕이라는 것은 그러한 의례를 제작한 최초의 패라곤(paragon, 모범)들을 가리킨다. 이 예()야말로 문명의 본질이며, 끊임없는 문화의 생성이다. 그래서 선왕을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왕지도(先王之道)라는 것은 사회질서(social order)’라는 개념으로 대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선왕지도는 구체적으로 의례주례에 가장 선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ㆍ혼()ㆍ상()ㆍ제()는 물론, 온갖 빙례(聘禮)나 연례(燕禮), 상견례(相見禮),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사례(鄕射禮), 그리고 온갖 외교상의 접대, 화친, 회맹, 조약, 그 모든 것이 예가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례들을 우리는 허례허식의 구속으로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예는 예로서 독립되는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예는 반드시 악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악이 없는 예란 존재할 수가 없고, 예가 없는 악이 존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양자는 고례에 있어서는 더욱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과거의 모든 집례자(執禮者)가 실제로 악사(樂師)들이었다. 어떤 때에 누가 등장하고 어떤 의복을 입으며 어떤 기물을 활용하고 어떤 음악이 연주되는가, 이러한 구체적 세목에 밝은 자는 악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즉 예의 핵심이 악에 있었던 것이다. 예는 본시 지루한 것이요, 분별을 위한 것이요, 서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요, 공경키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악은 본시 즐거운 것이요, 같음을 위한 것이요, 서열을 초월키 위한 것이요, 친함을 위한 것이다. 악이 없는 예는 맹목적 형식이 되고, 예가 없는 악은 감정이 낭자한 난장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공자 이전의 교육기관들의 교수들이 모두 악사였다는 사실과 공자가 어려서부터 음악의 연주와 연구로서 출세의 기반을 마련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사태가 아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예악의 마당이 분화되고 외교예식은 불란서식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하는 딱딱한 의례가 되었고, 일상생활 속의 모든 절목도 의미없이 흐트러져 버렸다. 상례는 병원 영안실로 가고, 혼례는 천박한 예식장으로 가고, 음주례는 룸싸롱이나 노래방으로, 그리고 음악은 콘서트홀로 가버렸다. 그러니까 예는 예대로 형식화되어 재미없게 되고, 악은 악대로 전문화되어 삶의 무대를 떠나 방관자들의 무대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고대 선왕지도는 인문학의 총화였으며, 악과 예가 조화되어 어떻게 참가자들 모두에게 황홀한 엑스타시의 경험을 안겨주는가 하는 데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악의 문화 속에서 유약의 말을 접하게 되면 그 이해는 너무 쉽고 명료해진다.

 

이 장은 논어에서 ()’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구절인데 유약의 말로서 등장하고 있다. 브룩스는 이 말의 개념적인 성격 때문에 후대에 유약에게 의탁하여 지어낸 파편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 이 장을 자장(子張)편 뒤로 옮겨놓고 있다. 자장편이 성립한 즈음에, 대강 BC 3세기 중반에나 형성된 파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브룩스의 논의는 신빙성이 없다. 요즈음 발굴된 간문(簡文)의 연구성과는 전국 초기에 이미 상당히 개념화된 논의들이 문자화되어 식자들 사이에서 오갔던 것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악기의 후반부에 위문후(魏文侯)가 악()에 관하여 자하(子夏)에게 묻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 그러한 맥락에서 비슷한 시절에 유약(有若)을 가탁하여 지어낸 설화 중의 한 파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유약의 언어는 상당히 초기에 기술된 로기온이라고 생각한다.

 

 

조화로움이 귀한 이유

 

예지용(禮之用), 화위귀(和爲貴)’라는 말을 추상적으로 생각하여 이것이 자사(子思)의 중용사상과 관련된 노나라 유약의 사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송유들은 ()’이라는 표현 때문에 체용론(體用論)을 들먹이며 해설을 가하고 있으나, 본시 체()와 용()이라는 이원적(二元的) 이해방식은 불교(佛敎)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진 중국인의 원래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원효가 소()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철저히 체용론(體用論)에 의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이런 이해를 논어에 적용할 수는 없다. ()의 체()와 예의 용()이 개념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송유의 이해방식을 비판하는 자들이 쓸 용()을 단순한 써 이()로 보아, ‘예지이화위귀(禮之以和爲貴, 예의 화로써 귀하게 됨은)’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다산의 말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놓고 풀이하여도 별 상관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선왕지도의 간요(肝要)한 핵심을 파악하면 이 장의 언어는 너무도 명료해진다. ‘예지용(禮之用), 화위귀(和爲貴)’란 예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음악의 조화기능이 가장 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고대의 동방음악은 동일한 시점에서 다른 피치의 음들을 동시에 울리는 화성(Harmony) 개념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금석사죽(金石絲竹)의 음색의 조화라든가 한 멜로디상의 음들간의 조화라든가, 선행ㆍ후행 멜로디간에 성립하는 조화와 같은 다양한 개념이 있었다. 물론 여기서 화()는 음악이 자체특성으로 지니는 하모니의 개념도 들어가겠지만, 무엇보다 예()를 그 당장에서 순화(順和)롭게 만드는 토탈한 기능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의 기능은 음악의 조화의 기능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다음의 선왕지도(先王之道), 사위미(斯爲美)’라는 것은 바로 선왕지도는 예와 악이 어우러지는 경지를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즉 선왕지도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다름아닌 예와 악의 조화였던 것이다. 황간(皇侃)의 소()는 이 문장 전 체의 대의가 인군(人君)이 행화(行化)할 때에 반드시 예악(禮樂)이 상수(相須)해야 함을 밝힌 것이라 하고, ‘()으로써는 민심(民心)을 조화롭게 하고, ()로써는 민적(民跡)을 검속한다[用樂和民心, 以禮檢民跡]’ 하였는데 황간은 여기서 분명하게 () = ()’의 도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형병(邢昺)(), 위악야(謂樂也)’라고 명백하게 못 박았다.

 

 

()이란 조화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을 거느리고 하늘을 따른다. ()란 그 마땅함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귀()와 더불어 살며 땅을 따른다.

樂者敦和, 率神而從天; 禮者別宜, 居鬼而從地.

 

 

()은 하늘의 세계요 신()의 세계다. ()는 땅의 세계요 귀()의 세계다. 그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인가? 예술이란 본시 하늘을 향한 인간의 동경이다. 예의란 본시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의 질서이다.

 

 

()이란 같아짐을 위한 것이요, ()란 달라짐을 위한 것이다. 같아지면 친해지고, 달라지면 공경하게 된다(예기』 「악기).

樂者爲同, 禮者爲異. 同則相親, 異則相敬.

 

 

선생과 제자,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이 모든 관계에 존하는 예란 이들 사이의 마땅한 바를 분별키 위함이요, 이들의 다름을 확실케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름과 공경으로만 살 수가 없다. 그러면 인간은 소원해지고 고독해지고 엄숙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음악, 예술이란 이러한 이화(異化)의 방향을 동화(同化)의 방향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화()요 동()이다. 예자(禮者)는 천지지별(天地之別)이요, 악자(樂者)는 천지지화(天地之和)인 것이다. ()이란 정()의 불가변자(不可變者), ()란 이()의 불가역자(不可易者)인 것이다. ()이란 내()에서 동()하는 것이요, ()란 외()에서 동()하는 것이다[故樂也者, 動於內者也; 禮也者, 動於外者也]. 예와 악은 분명 서로가 서로를 요구하는 조화의 관계이지만 이 양자 사이에는 오묘한 텐션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예와 악은 조화의 관계인 동시에 긴장의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다음 구절에서 드러난다.

 

소대유지(小大由之), 유소불행(有所不行)’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선왕지도의 세계에 있어서는 작고 큰 이벤트들이 모두 음악의 조화기능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기능에만 모든 것을 맡겨버릴 때, 항상 행하여지지 않는 바가 있을 수 있다, 즉 모든 이벤트가 다 스무드하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용(中庸)10화이불류(和而不流)’를 말하였고 악기악승즉류(樂勝則流)’를 말하였다. 악이란 본래 인간의 정감에 근본하고 있는 것이다[先王本之情性]. 따라서 오직 조화만을 알고 조화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흐르게 되고, 질탕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우리가 파티를 하나 멋있게 진행하려 할 때에도 이 악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면 질펀하게 되고 예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면 딱딱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조화를 위 한 조화, 같아짐을 위한 같아짐만을 생각하는 것은 위태롭다. 조화(Harmony)는 부조화(Disharmony)의 계기를 아니 가질 수 없고, 화동(和同)은 별이(別異)의 계기를 아니 가질 수 없다. () 즉 악()은 반드시 예()로써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써 절제된 때만이 악()은 악()으로서의 기능이 드러난다. ()가 없는 악()은 광란이요, ()이 없는 예()는 구속일 뿐이다. 바로 논어의 예()에 대한 첫 구절은 악기(樂記)에서 말하는 악통동(樂統同), 예변이(禮辨異)’의 오묘한 진리를 예()와 화()의 친화와 텐션의 관계로써 설파한 것이다.

 

지루한 것 즐기는 것
분별하기 위한 것 같음을 위한 것
서열을 가리기 위한 것 서열을 초월키 위한 것
공경하기 위한 것 친함을 위한 것
땅의 세계, 귀신의 세계 하늘의 세계, 신의 세계
이 없는 는 구속 가 없는 은 광란

 

 

라는 것은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요,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이다. ‘()’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강요함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저 예의 체()됨이 비록 엄격하지만, 그러나 모두 스스로 그러한 이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용()됨이 종용(從容: 자연스러운 모습)하여 강요함이 없으니 귀하다 할 만한 것이다. 선왕지도는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에 아름답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작은일, 큰일 할 것 없이 모두 이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沃案. 주희는 소대유지(小大由之)’에서 끊고 읽는다.

禮者, 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也. 和者, 從容不迫之意. 蓋禮之爲體雖嚴, 而皆出於自然之理, 故其爲用, 必從容而不迫, 乃爲可貴. 先王之道, 此其所以爲美, 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

 

(有所不行이하), 다음은 윗 문장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해도 또 다시 행하여지지 않는 바가 있다고 하는 것은 화()의 귀함만을 알고, ()로써 모든 것을 일률적으로 처리하고 또다시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예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흘러 방탕하게 되고, 다시 되돌아올 줄을 모르게 되 니 그것 또한 행하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 以其徒知和之爲貴而一於和, 不復以禮節之, 則亦非復理之本然矣, 所以流蕩忘反, 而亦不可行也.

 

 

주희도 나름대로 명료하게 생각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나는 희의 설을 취하지 않는다. 체ㆍ용 운운한 것은 비속하다.

 

 

정자가 말하였다: “예가 승하면 딱딱하고 지루하여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러므로 예의 쓰임은 음악의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가 이것으로써 아름다움을 삼았다. 그리하여 작고 큰일들이 모두 여기에 말미암았다. 악이 승하면 흐르고 방탕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하여지지 않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음악의 조화만을 알고 조화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어그러지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

程子曰: “禮勝則離, 故禮之用和爲貴. 先王之道以斯爲美, 而小大由之. 樂勝則流, 故有所不行者,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

 

범씨가 말하였다: “대저 예의 체()는 경()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용()인즉슨 화()를 귀하게 여긴다. ()이라고 하는 것은 예가 그것으로써 서는 것이요, ()라고 하는 것은 악()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유약과 같은 인물은 예악의 본질에 통달했다고 이를 만하다.”

范氏曰: “凡禮之體主於敬, 而其用則以和爲貴. 敬者, 禮之所以立也; 和者, 樂之所由生也. 若有子可謂達禮樂之本矣.”

 

나 주희는 말한다. 엄격하면서도 편안하고, 조화로우면서도 절제하는 것은 대자연의 이치[]의 스스로 그러함이요, 예의 전체(全體)이다. 여기에 호리라도 치우침이 있어 그 중정(中正)을 잃어버리면 각기 한 편으로 치우치게 되어, 어느 것이나 다 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愚謂嚴而泰, 和而節, 此理之自然, 禮之全體也. 毫釐有差, 則失其中正, 而各倚於一偏, 其不可行均矣.

 

 

주희는 화()를 악()과 관련하여 해석하지 않는다. 추상적 개념으로서 어떤 이론적 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주자학의 이론적ㆍ관념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범씨는 북송의 사람 범조우(范祖禹, 환 쭈위, Fan Zu-yu, 1041~1089)이다. 사천성 성도(成都) 화양(華陽) 출신. 자는 순부(淳夫, 순보淳甫), 또는 몽득(夢得)이라고 도 한다. 가우(嘉祐) 연간에 진사가 되어 사마광(司馬光)을 따라 자치통감(資治通鑑)편수에 종사하였다. 낙양에서 15년간을 그 일에만 전념하고 일체 벼슬길에 관심이 없었다. 사마광을 스승으로 받들면서 화양학파(華陽學派)를 창시하였다. 사마강(司馬康), 황정견(黃庭堅)이 그의 문하생이다. 인품이 간결하고 의리가 명백하고 항상 강경(講經)할 때에는 의관을 정제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순유(醇儒)라고 불렀다. 소식(蘇軾)도 그를 가리켜 강관제일(講官第一)’이라 하였다.

 

그는 특별히 자사(子思)의 작인 중용(中庸)을 깊게 연구하여 궁리진성(窮理盡性)’의 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성론()에 관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망국지도(亡國之道)를 지탄하였다. 물론 그는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사서(四書)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중용이라는 서물의 오의(奧義)를 궁리하고 그 의미체계를 대학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이들 북송 사상가들이야말로 주자학의 선하(先河)들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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