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살라
4-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마을에서 인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 택하여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4-1.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
사실 이 구절은 너무도 짤막하고 전후 맥락이 무시되어있기 때문에 정 확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고주ㆍ신주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해석은 ‘이(里)’를 사람이 거처하는 동리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동리[里]는 『주례』의 규정에 의하면, 25개의 집이 모여있는 취락의 규모를 말한다. 다산은 ‘이인위미(里仁爲美)’의 구문은 리(里)에서 일단 구두점을 찍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里一字爲句, 其義方鬯]. 사는 동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인한 동리에 사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미(美)가 선(善)으로도 되어 있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거처하는 동네는 인한 것이 아름답다든가, 인한 것이 좋다는 등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인한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는 그 동네에 인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의미, 또 그 풍속이 인후(仁厚)하다는 의미, 또 풍수지리적으로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 「이인」 편이 초기 공문교단에서 인(仁)에 뜻을 두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조그마한 공동체 촌락[里]을 형성하기 위하여 공자의 명언(名言)들을 모아 일종의 격 언집을 만든 것이라는 설을 펴지만, 그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 공동체는 기독교의 묵시론적ㆍ종말론적 에클레시아가 아닌 순결한 이 땅에서의 ‘인(仁)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인(里仁)」 편은 인공동체의 성서가 될 것이다.
리(里)를 동리라는 명사로 볼 수도 있고, ‘이인(里仁)’을 한데 묶어 ‘인한 동네에 거주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정현(鄭玄) 고주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리라는 것은 백성이 거처하는 곳이다. 인한 사람의 동리에 거처하는 것, 그것을 좋게 여기는 것이다. 좋은 거처를 구함에 있어서 인한 사람의 동리에 처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혜롭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里者, 民之所居也. 居於仁者之里, 是爲善也. 求善居而不處仁者之里, 不得爲有智也.
주자의 신주도 대동소이하다.
마을에는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이 아름답다. 마을을 선택하되 인후한 풍속에 처하지 않는다면, 시비의 본심을 잃게 되어 지혜롭다할 수 없는 것이다.
里有仁厚之俗爲美. 擇里而不居於是焉, 則失其是非之本心, 而不得爲知矣.
그런데 소라이(荻生徂徠)는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매우 기발한 신석을 내어놓고 있다. 소라이는 ‘이인위미(里仁爲美)’는 공자의 말이 아니라 공자 이전에 있었던 경구와도 같은 고언(古言)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자는 ‘이인위미(里仁爲美)’라는 당대의 이디엄을 자신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이 바로 ‘택불처인(擇不處仁), 언득지(焉得知)?’라는 구절이며, 이 구절이야말로 공자 자신의 말이라는 것이다. 『논어』의 상당부분이 이와 같이 공자의 창작이 아닌 선대의 고언(古言)의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이인(里仁)의 리(里)에는 동리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거처한다’는 동사이며 인(仁)은 그 동사의 추상적 목적어일 뿐이다. 리(里)가 ‘거(居)한다’는 동사의 의미로 쓰이는 용례는 『맹자』ㆍ『순자(荀子)』에서 인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인위미(里仁爲美)’는 “인에 거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인 속에서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인(里仁)’을 해설하면서 ‘처인(處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택하여 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으리오? ‘택(擇)’은 나의 실존적 결단을 의미할 것이다. 소라이(荻生徂徠)의 해석은 매우 참신하고 설득력이 있다. ‘이인위미(里仁爲美)’라는 어떤 기존의 추상적 관념을 공자는 재해석하는 과정에 서 자기 생각을 발현시켰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삶이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환경의 영향을 아니 받을 수 없다. 인간은 당연히 자기의 삶의 거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동물에게서도 매한가지 현상이다. 인간은 걸어가다가 다리가 아파 쉴 때에도 반드시 쉴 곳을 선택해서 앉는다. ‘이인위미(里仁爲美)’가 삶의 환경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소박한 우리의 체험으로 볼 때 그리 요원한 해석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나는 ‘인(仁)’을 고정된 명사로 해석하지 않는다. ‘인(仁)’에는 이미 ‘인함’이라고 하는 동사적 성격, 혹은 ‘인하게’라는 부사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이인’을 ‘인하게 산다’로 해석했다. 여기 산다는 의미는 삶의 거처와의 관련성을 배제시킬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은 일정한 거처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인(里仁)’이란 거처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체적 삶의 방식과 보다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즉 감수성 있게, 인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다. 밥 먹을 때나 책 읽을 때나 잠잘 때나 일할 때, 모두 인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란 사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인한 방식을 실존적으로 택하여 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를 지혜롭다 말할 수 있으리오? 여기서의 ‘지(知)’는 단순히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심미적 감수성과 관련된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처(處)’는 상성이다. ‘焉’은 어건(於虔) 반이다. ‘지(知)’는 거성이다. ○ 마을[里]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으니, 마을을 선택하여 인후함에 거(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고 그름의 본심을 잃은 것이니, 지혜롭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處, 上聲. 焉, 於虔反. 知, 去聲. ○ 里有仁厚之俗爲美. 擇里而不居於是焉, 則失其是非之本心, 而不得爲知矣.
여기 주희집주 속에 나오는 ‘택리(擇里)’라는 말에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인문지리학서인 청화산(靑華山人)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의 『택리지(擇里志)』의 제명이 유래되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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