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배 정자산을 평가한 공자
5-15.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으니, 자기의 몸가짐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이 의로운 것이다.” 5-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
자산(子産, 쯔 츠안, Zi-chan)은 정(鄭)나라의 왕족출신의 재상인 공손교(公孫僑)의 자(字)이다. 자를 자미(子美)라고도 한다. 교(橋)는 그의 명(名)이다. 그는 정나라 목공(穆公)의 손(孫)이며, 자국(子國)의 아들로 태어나, BC 554년에 경(卿)이 되었고, BC 543년에 정권을 장악하였다. 공자보다 1세대가 빠른 명망 높은 정치가였다. 자산이 죽은 것이 노(魯)나라 소공(昭公) 20년, BC 522년의 일이며 공자의 나이 30세였다.
자산이 정치를 행한 정나라는 노나라와 같은 소국이었다. 그가 집정을 하고 있었던, 정나라 간공(簡公)ㆍ정공(定公)ㆍ헌공(獻公)ㆍ성공(聲公)의 22년간의 시기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양대국이 생강(爭强)하던 시기였다. 그 사이에 끼어 자산은 박식과 웅변, 그리고 임기응변의 자유자재로운 수완을 발휘하여 두 나라의 평화를 도모하였다. 자산은 두 나라를 주선하면서, 비굴하지도 않았고, 자만하지도 않았으며, 정나라로 하여금 존경과 안전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자산은 농지의 구획정리를 행하여 세(稅)를 증수(增收)하였고, 군사세(軍事稅)로서의 구부(丘賦)를 실시하여 국가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불만세력을 억누르기 위하여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형서(刑書)를 주조하 여 국내에 공포하였다. 중국역사에서 자산은 법치주의의 선구자로서 항상 거론된다. 그러나 그의 법치는 단순한 권력의 술수가 아닌 인간세의 합리적 정신에 기초한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종교의식에 새로운 인본주의적인 해석을 가하였으며, 질병이나 제사에 관하여 이성적인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그는 중국철학 사에서 합리주의적 혁명의 전범을 세운 자로서 손꼽힌다. 그러한 그의 혁명적 조치는 현실적 치세로서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공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냉혹한 이성주의는 바로 이러한 정자산의 패러다임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공자는 정자산을 동시대의 사상가로서 정치가로서 마음속 깊이 존경했던 것이 분명하다. 과연, 정자산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드높다. 존경스러운 선학에 대한 정당하고도 아낌없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헌문」 10에는 공자가 자산을 평하여 ‘혜인야(惠人也)’라고 말한다. 여기 혜인(惠人)이라는 뜻은 그가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한결같이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혜인(惠人)으로서의 삶의 자세가 본 장에서도 유감없이 토로되고 있다.
‘위(謂)’는 평가한다는 뜻이다. 군자(君子)는 위(位)를 가진 정치적 지도자(political leader)라는 뜻과 위(位)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man of moral perfection)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물론 여기서는 이 두 가지 뜻이 다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 군자의 도에 네 가지가 있는데 정자산은 그 네 가지를 다 구비하고 있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행기(行己)’란 문자 그대로 자기를 행함이다. 즉 자신의 처신이나 몸가짐, 일상적으로 행동할 때의 모습이다. 그러한 몸가짐이 공손하다(humble)는 것이 그 첫째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현대 민주사회에서도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상(事上)’은 윗사람을 섬김이다. 윗사람을 어차피 섬겨야 할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공경스러워야 한다(respectful). ‘양민(養民)’과 ‘사민(使民)’은 통치의 두 측면이다. 양민(養民)이란 요새말로 하면 복지(welfare)의 측면이다. 사민(使民)이란 어떻게 국가대사에 국민들의 노동을 제공받느냐 하는 문제이다.
‘기름[養]’과 ‘부림[使]’은 고대이래 오늘날까지 통치의 양대 측면이다. 기름이 없이 부림이 있을 수 없고, 부림이 없이 기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름의 원칙은 ‘사랑’이다. 어떻게 아래 일반백성에게 혜택을 주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기름은 기름이 아니다. 그리고 부림의 원칙은 ‘의로움[義]’이다. 즉 백성을 부리는 명분이 적절하고 정당해야 하는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고대사회에 있어서의 정의(justice)의 개념이다. 오늘날과 같은 법제적인 정의는 아니지만 백성의 노동력을 제공받는 모든 행위가 어떤 원칙에 의거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의 전역은 반드시 계절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義)’는 ‘appropriateness’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덕성을 구현하는 군자의 통치는 어느 시대에나 명정치로서 기려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산은 무엇보다도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주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자산(子産)’은 정나라의 대부, 공손교(公孫僑, 꽁쑨 챠오, Gong-sun Qiao)이다. ‘공(恭)’이란 겸손한 것이다. ‘경(敬)’이란 삼가며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혜(惠)’는 사랑하며 이롭게 하는 것이다. ‘사민의(使民義)’는 예를 들자면, 도읍과 변방이 제각기 맞는 기준에 따라 질서가 있으며, 상ㆍ하에 따라 복제(服制)가 분별되며, 토지에는 경작지 이랑의 경계가 분명하며, 동네에는 다섯 가호가 한 반(班)이 되게 하는 것【『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30년 기사에 정자산의 치세방략을 기술한 부분】과도 같은 것이다.
子産, 鄭大夫公孫僑. 恭, 謙遜也. 敬, 謹恪也. 惠, 愛利也. 使民義, 如都鄙有章, 上下有服, 田有封洫, 廬井有伍之類.
○ 오역이 말하였다: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책망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장문중(文仲)이 불인한 점이 셋이요, 지혜롭지 못한 점이 셋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3년 가을 기사】 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반대로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산에게 군자의 도가 넷이 있다고 칭찬하신 것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 말로써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덮어버리거나, 한 사건으로써 한 시대를 총평하거나 하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 吳氏曰: “數其事而責之者, 其所善者多也, 臧文仲不仁者三, 不知者三是也. 數其事而稱之者, 猶有所未至也, 子産有君子之道四焉是也. 今或以一言蓋一人, 一事蓋一時, 皆非也.”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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