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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 안연의 호학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 안연의 호학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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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연의 호학

 

 

6-2. 애공(哀公)이 물었다: “제자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6-2. 哀公: “弟子孰爲好學?”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안회顔回)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은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니, 아직 배우기를 좋아한다 할 만한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孔子對曰: “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우리 또래의 사람들만 해도, 좀 고전의 소양이 있는 집안에서 큰 사람이라면,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공자가 그리는 안회의 모습에 서 얻어지는 교훈은 항상 몸에 배이도록 들었던 논어의 구절들이다.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와 같은 구절은 항상 자애로우셨던 아버님의 훈화 속에 끼어있었던 말씀으로 어린 시절의 나의 귓전에도 쟁쟁하게 남아있다. 나의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말라든가, 같은 잘못은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논어의 구절이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배어있는 우리의 언어다. 그러나 이러한 평이한 말씀일수록 항상 더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데, 고전의 묘미가 있다. 논어의 깊은 뜻을 씹어보면 씹어볼수록 더욱 고개가 숙여지게 되는 것이다. 한 역사적 인간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었다 다시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 것도 대단한 결단을 요구하는 사태이지만,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치 않는 것도 그 이상의 결단과 믿음을 요구하는 사태인 것이다.

 

애공(哀公)은 공자의 생애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하는 노나라의 군주로서 BC 494, 공자의 나이 58세에 10세 전후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비운의 인물이다. 이 대화는 공자의 귀로(歸魯) 후에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으므로 공자 나이 68세 이후의 매우 말년에 속하는 것이다. 당시 애공은 스무 살 정도의 어린 군주였다. 옹야편에 수록된 대화가 대부분 공자 말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편해(篇解)에서 밝힌 바, 이 장의 대화도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애잔한 생생함이 있다. 그리고 공야장(公冶長)편이 호학(好學)이라는 주제로 끝난 것을 생각하면 바로 다음 편의 첫머리에서 다시 호학(好學)의 주제를 이토록 애잔하게 상기시키는 기법은 논어편집자의 놀라운 연출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같은 주제가 선진(先進)6으로까지 연결되고 변주되어 있는 것이다.

 

애공(哀公)과 공자(孔子)의 대화는 이미 위정(爲政)19에 나왔다. 논어에서 애공(哀公)은 대체로 공자와 공자제자들에 대한 질문자로서 등장한다. ‘애공문왈(哀公問曰) …… 공자대왈(孔子對曰)’이라는 패턴은 논어기자들에게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196-2를 비교해보면, 6-2에는 문왈(問曰)’에서 ()’이 생략되어있다. 2-196-2가 동일한 전승의 파편들일 수도 있고,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패턴만이 유사한 다른 전승일 수도 있다. 3-21에는 애공(哀公)이 재아(宰我)에게 묻고, 12-9에는 유약(有若)에게 묻는다. 그리고 14-22에는 공자가 애공에게 충고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안회의 죽음에 관해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사기(史記)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안회의 나이가 공자보다 30세 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서는 나이나 연도를 밝히지 않은 채, ‘일찍 죽었다[조사(蚤死)]’라고만 표현했다. 그런데 가어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안회의 나이를 밝히지 않은 대신, 그의 죽음의 나이는 삼십일조사(三十一早死)’라 하여 31세로 밝혀놓고 있다. 이 두 기록을 종합하면, 안회가 죽었을 때의 공자의 나이는 61세가 된다. 61세 때는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안회가 죽은 것은 확실하게 공자 귀로 이후의 사건이며, 그의 아들 백어가 죽은 다음의 사건이다. 공양전(公羊傳)은 안회의 죽음을 애공십사년(哀公十四年: BC 481)으로 기록하고 있다. 논어속에 기록된 여러 기사들의 정황으로 보아 안회의 죽음이 공자 70세 전후의 사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안회의 죽음을 애공 14년으로 확정짓는다면, 그때 안 회의 나이는 41세가 되며, ‘요절[조사(早死)]’라는 표현은 그렇게 적절치 않게 되어 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청초의 고증학자 모기령(毛奇齡)제자열전삼십(三十)’사십(四十)’의 착오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자의 방랑길을 전부 수발한 수제자 안회의 나이를 자공(子貢)이나 염구(冉求)에 비하여 10세 가량 낮게 잡는 것도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쪽에 꿰어 맞추어도 빵꾸가 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수리적으로 일관되게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순 자체가 공자의 생애에 관한 모든 기록이 다양한 전승이 후대에 복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승은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성과 더불어 픽션적 성격이 배제될 수 없다는 것도 항상 같이 고려해야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일관된 연대표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연출된 상황의 진 실성과 의미에 더 천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호학자(好學者)로서 애제자 안회를 거론하는 대화는, 이미 편해에서 언급한 바대로, 옹야편의 기록 외로 선진(先進)에 나오고 있다. 이 두 기록을 나열해 보면:

 

6-2.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11-6, 季康子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이 두 파편을 비교해보면, 애공(哀公)이 계강자(季康子)로 바뀌어 있을 뿐, 우선 질문의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고 공자대왈(孔子對曰)’도 동일하고, 그 대답의 내용 또한 완전히 동일하다. 단지 호학(好學)을 부연하여 설명하는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란 구문이 생략되어 있고 미문호학자야(未聞好學者世)’라는 반복적 첨가가 축약되어 있을 뿐이다. 이 두 파편에 관하여 주자는 범순부(范淳夫)의 말을 빌어, 마치 공자가 같은 질문을 다른 상황에서 두 사람에게서 받은 것처럼 주해하고 있다. 계강자(季康子) 역시 공자를 노나라로 불러 온 장본인이며, 애공(哀公)과 역사적 시공이 겹치는 인물이다. 즉 계강자와 공 자의 만남 또한 귀로 이후의 사건이며 공자 말년에 속하는 일이다. 그래서 군주에게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자세히 다 일러주었고, 한 급이 낮은 대부에게서 질문받았을 때는 생략형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좀 용렬한 주해방식이다.

 

이것은 명백히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두 전승의 기록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메모리에 의존하는 구술 속에서는 질문자가 애공이 되든 계강자가 되든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전달하려는 핵심적 내용의 의미 체계인 것이다. 이 두 파편은 그 의미체계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작업은 이 두 전승의 기록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다. 그 공통분모의 성격은 최소한 공자와 제자 사이에 있었던 교감의 역사적 사실에 보다 접근하는 길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호학자로서 공자가 안회라는 제자를 꼽았다는 것이요, 안회는 불행히도 단명하여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안회의 서거 나이를 40세 전후로 잡는다 하더라도 조사(早死)’라는가 단명(短命)’이라는 표현은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공자보다 이미 30세 연하라고 한다면 공자의 주관적 의식세계에 있어서는 자기보다 30세나 어린 애제자가 자기보다 일찍 세상을 뜨는 사태를 충분히 단명이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6-211-6의 두 프래그먼트는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의 공통된 설화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논어의 경우는 최종편집자가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그러한 공통된 설화들을 상당수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각편의 편집자들에게 타편의 내용들이 숙지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논어의 편집이 한 집단 속에서 계통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같은 전승자료에 대하여 다른 연출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애공이 묻는 것으로 했을 때는 노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어린 군주에 대해 보다 진실하게 답변해준다.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라고 하는 교훈적 요소로써 순순(諄諄)하게 가르쳐주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그러나 삼환(三桓)의 실권자인 계강자에게는 쿨하게 간략히 대답해버린다. 편집자들에게 애공과계강자의 캐릭터가 충분히 요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호학(好學)’이라는 말의 특수한 의미에 관하여 상고할 필요가 있다. ‘호학(好學)’이라는 말은 공자(孔子) 집단에 있어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공자는 학()의 창시자였다. 공자는 호학(好學)의 과정을 통하여 성인(聖人)의 길을 개척하였던 것이다. 십실지읍(十室之邑)에 반드시 나처럼 충신(忠信)한 자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진실로 나처럼 호학(好學)하는 자들은 없으리라(5-27)고 외치는 공자의 자부감 속에는, ()이라는 것이 우리가 매스터해야 할 일정한 커리큘럼으로서 선재(先在)하고 있질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자부감 속에서 그 학()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창시해나간 자의 고독감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호학(好學)이란 공자의 실천적 삶의 제1명제였다. 그래서 호학자(好學者)의 가능성을 제자 어느 누구에게도 쉽사리 허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공(哀公)은 묻는다.

 

공자님! 그대가 가르친 사람들 중에서 정말 호학(好學)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있었지요. 단 한 사람 있었지요. 그 사람은 안회랍니다.”

그렇다면 안회는 어떠했길래 당신에게 그런 상찬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이란 무엇인가? ()이란 배움이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란 공부(꽁후우, gong-fu)라는 것이다. 공부(工夫)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엇을 단련하는 것인가? 그것은 몸을 단련하는 것이다. (Mom)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 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몸에는 심()과 신()의 구분이 없다. 보통 우리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수학ㆍ영어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정해진 커리큘럼내에서 나의 개념적 지식의 확충이나 추리능력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에게 있어서 호학(好學)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자가 호학(好學)의 내용으로서 제시한 안회의 공부는 단 두 마디로 요약되는 것이었다: 1) 불천노(不遷怒), 2) 불이과(不貳過)

 

불천노(不遷怒)에 관해서도 전통적으로 구구한 해석이 많았다.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옮기지 않는다. ()에 대한 분노를 을()에 대한 분노로 전환시키지 않는다. 화내야 할 때 화내면서 그 화냄의 방향을 틀리게 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에 대한 자세한 심리학적 분석은 오히려 공자의 소박한 본의를 그르칠 수가 있다. 송유()들이 이()ㆍ기()를 말하고 성()ㆍ정()을 말하는 상당수의 논의들이 그러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할 것이다. 불천노(不遷怒)는 우선 노() 그 자체의 존재를 거부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성인무노(聖人無怒)’란 말은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 그러한 모습으로 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즉 노()는 이미 나에게 있어서 어떤 도덕적 가치관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도 여러 차가 있겠지만, 그것은 대체적으로 도덕적 분노요 심미적 분노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감정의 원초적 에너지와 관련된 것이다.

 

()ㆍ노()ㆍ애()ㆍ락()이 모두 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천노(遷怒)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은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천희(遷喜)와 같은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그 분노는 분노의 형태로서 남에게 옮기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천노(遷怒)의 가장 소박한 일상적 의미는 분풀이’ ‘화풀이의 뜻이 될 것이다. 동에서 뺨맞고 서에 가서 뺨때린다는 식의 나의 행동거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노()는 역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 먹는다 해서, 그러한 자연현상에 대하여 우리는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는 역시 한 인간이 나에게 저지르는 당연치 못한 사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 당연치 못함을 자각하는 것도 나의 도덕적 본성이요,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남에게 옮기지 않는 것도 나의 도덕적 본성이다. 분노를 나 홀로 삭히는 것, 이것은 참으로 안자(顔子)와 같은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불이과(不貳過) 또한 마찬가지다. 불이(不過)는 인간에게 과()가 없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성인이라도 과(: 허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를 과()로서 자각하는 것은 천리(天理)의 대공(大公)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범인들의 가장 큰 과제상황은 과()를 과()로서 인식치 못한다는 것이다.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천리(天理)로서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러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공부라 하는 것은 지식의 확충이 그 일차적인 소이연이 아니다. 바로 노()해야 할 때 노()할 줄 알고, 자기의 과()를 과()로서 인식할 줄 아는 것이 공부의 소이연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를 옮기지 않고, 그러한 과()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 것은 공부의 궁극적 단계다. 간단(間斷)없는 몸의 단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호학(好學)의 실내용이 바로 이러한 몸의 실천적 행위였다는데 바로 현대인들이 지나치기 쉬운 유학의 본질이 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타인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는 우리 자신의 허약함을 개탄케 된다. 우리는 우리의 과실을 두 번 다시 반복치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음식남녀(飮食男女) 간에 항상 과실에 빠지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릎을 꿇으면서 외친다: “안회여! 그대야말로 성인이로소이다.” 공자는 말한다: “안회가 없어진 후로는 나는 아직 호학한다 할 만한 자를 만나지 못하였나이다.”

 

2000106, 나는 대구에 있는 제2군사령부에서 통일시대의 군()의 위상과 유교적 가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행한 적이 있다. ()이란 근세적 국가가 민족국가로서 존립하는 데 필요불가결의 조직이다. 민족국가의 존립은 타 민족국가와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대립은 때에 따라 전쟁이라는 매우 불행한 비극을 초래한다.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를 들라하면 나는 서슴치 않고 전쟁을 들 것이다. 그런데 군대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러한 비이성적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합리적 조직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군대는 민주적일 수 없다. 민주적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존립자체가 민주적인 체계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참혹한 비이성적 사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를 위한 비민주적인 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치열한 명령체계의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질서)를 기본구조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대는 민주적일 수는 없지만 합리적일 수는 있다.

 

군대가 꼭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민개병제의 체제가 우리나라에서 영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현금의 국민개병제가 우리 국민에게 던져주는 가치는 체험의 공통성으로 생겨나는 연대감이다. 한국의 사나이라면 누구든지 군대의 체험이라는 것을 젊은 날의 꿈으로 간직한다.

 

전쟁시에는 군의 도덕성은 쉽게 보장된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대신 죽을 각오를 하는 장병의 삶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시의 군의 가치도 군이 얼마나 도덕적인 전쟁을 수행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평화시의 군의 가치에 관하여 전쟁의 대비라는 임무 이외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단련시키는 공부의 교육적 가치를 제시했다. 즉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고 인격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사태를 거슬러, 인간을 도덕적으로 단속시키고 인격적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공부의 장으로서 군()의 존립이유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장으로서 내가 제시한 이념은 공자의 단 두 마디로 축약되는 것이었다.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

 

군대와 같은 명령체계의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질서)에 가장 범하기 쉬운 인간의 허약성은 바로 천노(遷怒)’ 두 글자에 있다. 상관으로부터 얻은 분노를 부하에게 옮기는 것이다. 군대와 같은 위계조직내의 대부분의 비리가 이 천노(遷怒)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군의 지휘관이 분을 스스로 삭힐 줄 안다면 그는 부하로부터 매우 존경 받는 인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같은 허물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을 허락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군대 내에서 장병들이 경례를 할 적에 충성하고 외치는 것보다는 불천노’ ‘불이과하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나의 강의는 백여 명의 고급지휘관들이 불천노, 불이과를 우렁차게 제창하면서 종료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가 친필로 써서 남긴 불천노(不遷怒)’라는 액자가 제2군사령부 대회의실에 걸려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강의의 본 의를 깊게 공감하여 주시고, 유교적 가치가 군조직에도 이해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신 당시 사령관 김인종 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이 강연의 내용과 관련된 의미있는 논문이 육군본부에서 나오는 육군지에 실려있다. 도올 김용옥, 인류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한국 의 올바른 가치관, 육군199912월호, 239, 84~95.

 

 

()’는 거성이다. ‘()’은 무(: 없다)와 같다. ()’은 옮긴다는 뜻이다. ‘()’는 반복한다는 뜻이다. 전자는 갑에게 화낸 것을 을에게 옮기지 않고, 후자는 앞서 잘못한 것을 뒤에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안자의 극기지공(克己之功)이 이러한 수준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호학(好學)’이라 일컬을 만하다. ‘단명(短命)’이라는 것은 안자가 서른두 살에 죽은 것을 가리킨다. ‘금야즉망(則亡)’이라 말씀하셨는데 또 미문호학자(未聞好學者)’라고 거푸 말씀하신 것은 대저 깊게 애석해하시는 것이요, 또한 참으로 호학하는 자를 얻기 어려움을 나타내신 것이다.

, 去聲. , 與無同. , 移也. , 復也. 怒於甲者, 不移於乙; 過於前者, 不復於後. 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 可謂眞好學矣. 短命者, 顔子三十二而卒也. 旣云今也則亡, 又言未聞好學者, 蓋深惜之, 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안자의 화냄은 그 원인이 상대방에 있었고 자기에게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옮길 건덕지가 없다. 선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알지 못한 것이 없고, 일단 안 것은 일찍이 다시 행한 적이 없으니, 잘못을 다시 할 리 없다.”

程子曰: “顔子之怒, 在物不在己, 故不遷. 有不善未嘗不知, 知之未嘗復行, 不貳過也.”

 

정이천은 또 말하였다: “기쁘고 화나는 일이 나의 감정에 있지 아니 하고 상대방이 행한 일에 있다면 그것은 리()가 희ㆍ노에 맞는 것이므로 마땅히 기뻐하고 화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희노가 혈기(血氣)에 있지 아니 하다면 옮길 일이 없다. 순임금이 네 사람의 흉악한 자들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 서경』 「순전舜典을 주벌하신 것도 이와 같은 일이다. 화낼 만한 이유가 그들에게 있으니 내 감정이 거기에 관여할 건덕지가 없는 것이다.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춤에 아름다움과 추함이 저 대상에 달려 있으니 거울은 사물따라 응할 뿐이다. 무엇을 옮긴다 하겠는가?”沃案. 정자의 말은 인식론적으로 너무 나이브하다. 매우 나이브한 객관주의를 말하고 있으나 심미적 가치는 그렇게 단순하게 객관에 귀속시킬 수 없다.

又曰: “喜怒在事, 則理之當喜怒者也, 不在血氣則不遷. 若舜之誅四凶也, 可怒在彼, 己何與焉. 如鑑之照物, 姸媸在彼, 隨物應之而已, 何遷之有?”

 

정이천이 또 말하였다: “안자의 경지라면 어찌 불선(不善)이 있겠는가? 그에게서 불선이라는 것은 단지 약간의 차실(差失)이 있는 것일 뿐이니, 차실이 생기면 곧 알아차릴 것이요, 알아차리면 곧 다시 불선이 싹틀 수 없다.”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纔差失便能知之, 纔知之便更不萌作.”

 

장횡거가 말하였다: “자신에게 찜찜한 것은 두 번 다시 싹트지 않게 한다.”

張子曰: “慊於己者, 不使萌於再.”

 

혹자가 말하였다: “()ㆍ서()육예(六藝)를 칠십 제자 치고 익혀 통달치 않은 사람이 없는데, 부자께서는 유독 안자만이 호학한다고 칭찬하시니 안자가 좋아한 것은 과연 무슨 배움입니까?”

정자가 말하였다: “배워서 성인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혹자가 말하였다: “그 배움의 길(방법)이란 무엇입니까?”

정자가 말하였다: “천지간에 그 엣센스를 축적하고 오행의 뛰어난 것을 획득한 자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 본성이 진실하고 고요하며, 감정이 촉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성(五性)이 구유된다. 그것이 곧 인ㆍ의ㆍ예ㆍ지ㆍ신이다. 그리고 형체가 이미 형성되고, 외물에 의하여 그 형체가 촉발되면 그 내면에서 움직임이 있게 된다. 그러니까 그 가운데가 동하게 되면 칠정이 발출되게 된다. 이것이 곧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이다. 감정이 치성하여 더욱 방탕하게 되면 그 본성이 파괴되고 만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그 정()을 단속하여 중도에 합치시키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본성()을 기를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그것을 마음에 밝혀서 가야할 바를 안 연후에, 힘써 행하여 이르기를 구해야 한다. 안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ㆍ움직이지도 않는다(12-1)한 것과, 불천노 불이과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은, 그 좋아함이 독실한 것이요, 그 배움이 도를 얻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인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아성에 머물렀다), 소극적으로 지키려고만 했고, 자유자재로 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몇년만 수명이 연장되었더라면 그는 며칠 안 되어 성인으로 화()했을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성인이란 본래 생이지지(生而知之)’요 근본적으로 배워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배움을 실천한다 하는 것이 맨 문사를 암기나 하고 암송이나 하고 자빠졌으니 이것은 진실로 안자시대의 배움과는 다른 것이다.“

或曰: “詩書六藝, 七十子非不習而通也, 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 顔子之所好, 果何學歟?”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學之道奈何?”

: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五性具焉, 曰仁, , , , .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 , , , , , .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 正其心, 養其性而已. 然必先明諸心, 知所往, 然後力行以求至焉. 若顔子之非禮勿視, , , , 不遷怒貳過者, 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然其未至於聖人者, 守之也, 非化之也. 假之以年, 則不日而化矣. 今人乃謂聖本生知, 非學可至, 而所以爲學者, 不過記誦文辭之間, 其亦異乎顔子之學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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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철학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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