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개월 간 인을 떠나지 않았던 안회
6-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는 말이다, 그 마음이 석 달 줄곧 인(仁)을 어기는 법이 없나니. 석 달이 지나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인(仁)한 채로 흘러갈 뿐이다.” 6-5.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
이 구절도 대강의 뜻은 알아차릴 수 있으나 주어가 명료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너무도 많다.
1
고주는 ‘기여(其餘)’를 공문에서 안회 이외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풀었다. 타 제자들은 잠시만 인에 이를 때가 있고 오로지 안회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言餘人暫有至仁時, 唯回移時而不變也]. 나는 이 설이 매우 졸렬하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안회와 여타의 학생을 그런 식으로 분별심을 가지고 대비시켰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仁)이라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쉽게 생각하면 평범한 진리일 수도 있다. ‘내가 인하고자 하면 당장 인은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다[我欲仁, 斯仁至矣].’ 다산은 불행하게도 이 고주의 설을 취한다. 그래서 볼품이 없다. 다산은 참 영활한 사람인데 대체적으로 생각이 너무 평범하다. 조선 유학은 인물을 크게 키우지 못했다.
2
신주는 기본적으로 ‘기여(其餘)’ 후 문장의 주어를 안회로 본다. 안회는 3개월 동안은 한 번도 인을 어기는 적이 없는 타이트한 삶을 살 수는 있지만, 그 석달(긴 시간)의 한계를 넘어가면[기여(其餘)] 하루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잠깐씩 인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인의 경지가 석 달이 넘도록 완벽하게 유지는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설도 매우 유치하다. 3개월이 문자 그대로 90일이 아니라, 어차피 긴 시간을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3개월을 넘어가면 불인해진다는 이야기는 공자 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도무지 아니다. 신주는 안회를 아성(聖)으로서 공자와 어느 정도의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런 좀 유치한 주석에 매달린 것 같다.
3
진사이(伊藤仁齋)는 「태백」 11의 ‘기여부족관야이(其餘不足觀也已)’를 용례로 들면서 ‘기여(其餘)’를 인 이외의 여타 다른 도덕적 성취에 관한 안회의 능력으로 풀이한다. 안회는 그 마음이 3개월이나 인에서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 안 정적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므로 여타의 덕망, 문학이나 정사와 같은 것에 있어 서는 하루나 한 달이면 충분히 획득된다는 것이다.
4
소라이(荻生徂徠)는 진사이의 설을 한발짝 더 발전시켰다. 첫마디의 ‘회(回)’가 삼인칭으로서 회술하는 것이 아니라, 면전에서 안회를 부른 호성(呼聲)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다음의 구절은 안회에게 직접 훈시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안회야!” “네.” “네 마음이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는다면 나머지 제덕성(諸德性)은 금방 도달할 수 있겠지.”
나는 이러한 제설에 계발받은 바가 있으나 그대로 취하지 않는다. 삼 개월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색욕이나 식욕만 하더라도 삼 개월만 정해진 규칙을 지킬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쉽게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마련이다. ‘기여(其餘)’는 ‘3개월이 지나면’의 뜻이다. ‘일월지언이이의(日月至焉而已矣)’는 문자 그대로 ‘해와 달이 스스로 이를 뿐이다’라는 뜻이다. 마조(馬祖)의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도 여기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나의 저서,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147-152).
‘삼월(三月)’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삼 개월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다. 마음이 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이 없음으로 해서 그 덕이 보존되는 것을 말한다. ‘일월지언(日月至焉)’이라는 것은 혹은 하루에 한 번 도달하고, 혹은 한 달에 한 번 도달한다는 뜻이니, 일정한 기간을 설정할 수는 있어도 오래갈 수는 없음을 일컫는 것이다.
三月, 言其久. 仁者, 心之德. 心不違仁者, 無私欲而有其德也. 日月至焉者, 或日一至焉, 或月一至焉, 能造其域而不能久也.
○ 정이천이 말하였다: “‘삼월(三月)’이란 천도(天道)가 소변(小變)하는 절기이니 그 오램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기간을 지나 인을 실천하면 곧 성인이다. 인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은 한 터럭의 사욕도 없다는 것을 오직 말함이니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다면 그것은 인이 아니다.”
○ 程子曰: “三月, 天道小變之節, 言其久也, 過此則聖人矣. 不違仁, 只是無纖毫私欲. 少有私欲, 便是不仁.”
윤언명이 말하였다: “이것은 안자가 성인에 비하여 한 칸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성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혼연일체가 되어 간단(間斷)이 없는 것이다.”
尹氏曰: “此顔子於聖人, 未達一閒者也, 若聖人則渾然無閒斷矣.”
장횡거가 말하였다: “처음 배우는 자의 요령은 3개월 동안 어기지 않는 것과 일월로 도달하는 것에 내ㆍ외, 빈(賓)ㆍ주(主)의 분별이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심의(心意)로 하여금 힘쓰고 또 힘쓰고, 굴러가고 또 굴러가는 것처럼 하여 그침이 없어야 한다. 이 경지를 넘어가면 이미 그 굴러감이 거의 나에게 있지 아니 하다.”
張子曰: “始學之要, 當知‘三月不違’與‘日月至焉’ 內外賓主之辨. 使心意勉勉循循而不能已, 過此幾非在我者.”
횡거의 내외빈주(內外賓主)의 변(辨)과 심의면면순순(心意勉勉循循)의 논의는 『어류』 권 제31에 자세하다. 바퀴를 굴리기가 처음에는 어렵지만 어느 단계를 지나가면 힘 안들이고 굴러간다는 뜻[到此則進進不能已, 亦無著力處]이다. 나의 해석은 장횡거의 논의와 비슷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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