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20.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 네 가지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20.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 네 가지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05:35
728x90
반응형

 20.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 네 가지

 

 

7-20. 공자께서는 괴()와 력()과 난()과 신()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7-20. 子不語怪, , , .

 

논어의 가치가 이 장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전 우주를 뒤덮고도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내 말을 과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내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논어는 한 사람의 말을 적어놓은 일시의 기록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며 그들의 삶을 구성해왔던 공동체의 공동가치의 기반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급격히 서구적 가치가 동점(東漸)의 세()를 과시하면서 일시적 가치의 혼란이 생겨났고, 마치 기독교의 신ㆍ구약성서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고 출판물 통계에도 그러한 착각이 반영되어 있으나, 성경이란 본시 희랍어로 되어있을 때는 그것의 수사본을 읽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개가 낭송문화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 후 제롬(Jerome, c.347~420) 이후의 라틴어성서라는 것도 극소수의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성경이 일반대중에게 전파되기 시작된 것은 1611년에 성립한 킹 제임스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이후의 사건에 불과하다. 밀턴이 실락원(1667) 복락원(1671)을 지을 즈음에나 성서문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성서의 보편화는 거의 20세기 사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서구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논어는 한대(漢代)에 이미 정경화된 이후로 북송 때는 이미 목판인쇄와 출판물 유통의 비약적 발전으로 저자거리에서 쉽게 대중이 사볼 수 있는 서물이 되었고 명대부터는 과거제도의 발달과 더불어 동아시아문명 전체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시골 동네의 구석구석 작은 서당에서도 학동들이 소독(素讀) 암송하는 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서는 신앙의 대상이었지만 논어는 교육의 주제였다. 따라서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신약성서를 읽은 인구와 논어를 읽은 인구를 비교하면 가히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논어의 한 구절은 공자의 한 마디가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의 씨줄ㆍ날줄인 것이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 한 마디가 동아시아문명의 합리성(Rationality)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통시적ㆍ공시적 사실이다.

 

()’는 기괴함이요, 그로테스크함이요, 불가사의함이다. ‘()’은 비상한 힘의 세계다. 차력사들의 힘 과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것은 장미란양이 스포츠정신에 입각한 과학적 노력의 결과로써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란 난세의 온갖 현상이요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근친상간의 모든 요상한 행동 같은 것, 인과적 사유로써 분석이 되지 않는 어떤 혼란스러운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란 신비로운 것이요, 초자연적인 것이며, 귀신 하느님과 관련된 모든 환상이나 주장이다. 처녀잉태나 죽은 자의 물리적 부활이나 묵시론적 암시나 이 모든 것이 에 속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적인 세계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괴ㆍ력ㆍ난ㆍ신을 말하지 않았다. 여기 또다시 중요한 것은 불어(不語)’라는 표현이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부정하느라고 애를 쓴 사람이 아니다. 괴력난신에 대해 왈가왈부를 운운한 사람이 아니다. 근본적인 인간의 논설의 대상으로서 치지도외한 것이다. 여기 불어(不語)’라는 것은 단순히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논어(論語)’()’라는 용법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자기의 신념체계로서 그것을 타인에게 가르치거나, 학생들에게 규범으로서 제시하거나 선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誨言也. 소라이]. 다시 말해서 공자의 케리그마에는 괴력난신은 일체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차력사의 노력으로 이빨로 트럭을 들어올린다 하더라도, 기중기 가 있는데 힘써 그 짓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주먹을 단련시켜 맨주먹으로 못을 박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장도리 하나면 끝나는 일을 그토록 어렵게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세계가 모두 하느님의 신비덩어리인데 왜 하필 처녀가 애를 낳아야만 신의 아들이 되고, 죽었다 살아나야만 신앙의 대상이 되는가? 이러한 인간의 우몽(愚蒙)을 어찌 참을 수 있을쏘냐? 공자의 시대에도 이러한 우루(愚陋)한 속설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이 한마디로 인간의 우매(愚昧)를 일소(一掃)시켰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도마복음서큐복음서의 예수는 일체 괴ㆍ력ㆍ난ㆍ신을 말하지 않는다. 이 땅의 우중(愚衆)들이, 이 과학의 시대에, 점점 괴력난신의 신봉자들이 되어가는 작금의 실태는 오직 예수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괴이(怪異)’, ‘용력(用力)’,‘ ‘패란(悖亂)’의 일들은 리()의 바름이 아니니, 본시 성인께서 말씀하실 바가 아니다. ‘귀신(鬼神)’은 이 우주가 돌아가는 조화(造化)의 흔적일 뿐이다. 그것은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궁리(窮理)의 극한적 상황까지 따져보지 아니 하면 쉽사리 밝힐 수 없는 것이므로, 또한 성인께서는 쉽게 그것을 주제로써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아니 하시는 것이다.

怪異, 勇力, 悖亂之事, 非理之正, 固聖人所不語. 鬼神, 造化之迹, 雖非不正, 然非窮理之至, 有未易明者, 故亦不輕以語人也.

 

 

주희의 주석이 매우 명료하다. 소라이는 주희의 주석이 무신론적 주장 이라고 비판한다. 귀신은 천신(天神)ㆍ인귀(人鬼)의 확고한 존재들인데 어찌 흔적[]’이라 말할 수 있느냐고 까대는 것이다. 결국 소리이의 이러한 입장 때문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코쿠가쿠(國學)’가 성립하였고 그것은 신토이즘(神道)과 황국일본(皇國日本)의 정체성의 기초가 되었다. 일본 문명은 귀신을 사랑하다가 즉물적 가치에만 집착하고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다. 그러한 성향이 일본 국수주의적 사상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말함) 불어不語 (말하지 않음)
()
Common Sense
()
Grotesqueness
()
Ordinary Virtues
()
Extraordinary Power
()
Order
()
Disorder
()
Humanity
()
Supernatural Beings

 

 

사량좌가 말하였다: “성인은 항상된 것[]을 말하며 괴()를 말하지 아니 하고, 인간의 내면적으로 축적되는 덕성[]을 말하며 력()을 말하지 아니 하고, 질서있는 세계[]를 말하며 란()을 말하지 아니 하고, 사람[]을 말하며 신()을 말하지 아니한다.”

謝氏曰: “聖人語常而不語怪, 語德而不語力, 語治而不語亂, 語人而不語神.”

 

 

상채의 말은 천하의 명주석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