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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3장 살아 있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자본주의, 자본의 충동과 자본주의의 일반 공식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3장 살아 있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자본주의, 자본의 충동과 자본주의의 일반 공식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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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충동과 자본주의의 일반 공식

 

 

화폐를 가진 자는 그 화폐의 가치만큼 교환 가능한 모든 상품을 잠재적으로 소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하나의 특수한 상품을 소유한 자는 이제 다른 상품을 소유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제한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보다 화폐를 가졌을 때 더 우월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앞서 200만 원의 현금과 노트북 중 전자를 선택했던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화폐를 편집증적으로 소유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굶어 죽어도 화폐를 쓰지 않고 오로지 화폐를 소유하려고만 하는 구두쇠, 즉 맑스가 이야기한 화폐퇴장자(貨幣退藏者)’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화폐는 운동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운동의 시작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판매를 위한 구매가 이루어지는 각 순환의 종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순환의 시작이 된다. 단순한 상품유통 즉 구매를 위한 판매 은 유통의 외부에 있는 최종 목적, 즉 사용가치의 획득 혹은 욕망의 충족을 위한 수단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유통)의 내부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 이 운동의 의식적인 담당자로서의 화폐 소유자는 자본가가 된다. 그의 일신,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그의 주머니는 화폐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귀착점이다. 이런 유통의 객관적인 내용 - 가치의 증식 이 그의 주관적인 목적이 되고, 추상적인 부를 점점 더 많이 취득하는 것이 그의 행동의 유일한 추진적 동기가 되는 한에 있어서만, 그는 자본가로서, 즉 의지와 의식이 부여된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가치는 결코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며, 어떤 하나의 거래에서의 이윤 역시 그러한 목적이 될 수 없고, 다만 이윤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운동 자체만이 자본가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있다. 이 절대적인 치부에의 충동, 이 정열적인 가치 추구는 자본가와 화폐퇴장자(구두쇠)에게 공통된 현상이지만, 화폐퇴장자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반면에, 자본가는 합리적인 화폐퇴장자이다. 화폐 퇴장자는 화폐를 유통에서 끌어내버림으로써 가치의 쉴 새 없는 증식을 추구하지만, 보다 영리한 자본가는 화폐를 끊임없이 유통에 재투입함으로써 가치 증식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자본론

 

 

예를 들어 여러분이 200만 원을 금고에 고스란히 넣어두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돈을 다시 꺼냈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지금 우리가 200만 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을 30년 뒤에도 역시 구매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알지 않습니까? 10년 전에는 라면 한 봉지를 10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최소 300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그렇다면 결국 돈을 금고 속에 넣어두기만 하는 행위는 그다지 현명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맑스는 구두쇠, 즉 화폐퇴장자를 얼빠진 자본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왜 구두쇠는 얼빠진 자본가에 지나지 않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두 번째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본의 증식이 단지 유통 과정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화폐를 가진 사람이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 우월한 자리를 점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우월한 자리는 상품과 화폐가 지속적으로 교환되는 유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맑스는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은 유통 그 자체가 곧 목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유통)의 내부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200만 원을 가지고 있을 때, 여러분은 얼빠진 자본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리한 자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얼빠진 자본가를 선택한다면, 200만 원이 준 우월한 자리가 이제 모래성처럼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 영리한 자본가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한 번 이상의 유통을 통해서 다시 250만 원을 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리한 자본가가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250만 원을 회수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200만 원의 자본을 가지고 더 큰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 어떤 상품을 샀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은 이렇게 구입한 상품을 이제 250만 원에 되팔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여러분의 이 상품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돈을 가진 제3자의 권한이 아닌가요? 만약 돈을 가진 어떤 사람도 여러분의 상품을 250만 원에는 사지 않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을 150만 원 정도에 팔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여러분이 소유한 200만 원어치의 상품보다는 차라리 150만 원의 화폐를 소유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이것은 어떤 상품보다도 화폐가 존재론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경우입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우월한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화폐를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암초를 오디세우스처럼 지혜롭게 잘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암초는 화폐를 유통 과정에서 빼내어 금고에 담아두려고 하는 얼빠진생각이겠지요. 반면 두 번째 암초는 유통 과정에서 볼 수도 있는 손해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암초를 현명하게 잘 피했다면, 여러분은 영리한 자본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영리한 자본가가 되는 공식, 즉 맑스가 자본주의의 일반 공식이라고 부른 유명한 공식이 출현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100원에 구매된 면화가 100+10, 110원에 다시 판매된다고 해보자. 따라서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M-C-M이다. 여기서 M=M+M이다. 다시 말하면 M는 최초에 투입된 화폐액에 어떤 증가분을 더한 것과 같다. 이 증가분, 즉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초에 투입된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단지 자신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량을 변화시켜 잉여 가치를 첨가해준다. 바꾸어 말하면 스스로 가치를 증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운동이야말로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자본론

 

 

여기서 ‘M’화폐를 뜻하는 ‘Money’의 약자이고, ‘C’상품을 뜻하는 ‘Commodity’의 약자입니다. 그리고 M’은 유통을 통해 얻은 이윤,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약자입니다. 100원의 돈을 가진 자본가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이 돈으로 100원어치의 면화를 삽니다. 그리고 이 면화를 110원에 팝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명한 자본주의의 일반 공식, ‘M-C-M가 함축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함의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는 자본가가 반드시 이 일반 공식에 따라서 자신이 가진 화폐를 유통 과정에 투입시켜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자신이 가진 화폐량이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만약 손해가 무서워 유통 과정에 화폐를 투입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물론 자본가는 순간적으로는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물가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이 자본가는 자산 가치에 있어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셈입니다.

 

두 번째는 이 일반 공식이 질적으로 차이 나는 두 가지 과정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M-C-MM-C의 과정과 C-M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자가 100원을 가지고 면화를 사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이렇게 산 면화를 110원에 파는 과정이겠지요. 그런데 왜 이 두 과정이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상품보다 화폐를 가진 사람이 우월하다는 자본주의의 첫 번째 비밀과도 깊이 관련된 것입니다. 사는 과정에서 자본가는 화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월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파는 과정에서 그는 더 이상 그런 우월한 자리에 있는 자본가가 아닙니다. 파는 과정에서 그는 면화라는 상품을 가진 상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열등한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돈을 가진 다른 사람이 면화를 사주지 않는다면, 그는 자본가라는 자신의 우월한 원래 자리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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