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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3장 살아 있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자본주의, 상인자본의 논리와 산업자본의 논리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3장 살아 있는 형이상학으로서의 자본주의, 상인자본의 논리와 산업자본의 논리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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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자본의 논리와 산업자본의 논리

 

 

보통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새롭게 도래한 경제구조라고 이해됩니다. 그래서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를 전자본주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자본주의(pre-capitalism) 시대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산업자본주의(industrial capitalism) 이전의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전자본주의 시대에도 이미 자본주의 자체는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것은 산업자본주의가 아니라 상인자본주의(merchant capitalism)의 형태였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자본주의의 뿌리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얕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요컨대 전자본주의 시대가 상인자본주의 형식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대는 상인자본주의 형식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주의라는 형식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자본주의 형식은 상인자본주의라기보다는 산업자본주의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다니려고 하는 회사, 혹은 다니고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산업자본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이 작동하는 논리에 대해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인자본이 공간적인 두 가지 가치 체계, 더구나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액에 의해 생기는 것인 데 비해, 산업자본은 노동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기초한다.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기존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 자본은 세계를 문명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존속하기 위해서 기술혁신을 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거의 무익하다고 생각되는 기술혁신이나 차이화도 자본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

 

 

이 구절은 가라타니 고진이 지은 트랜스크리틱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 대목은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의 차이점을 가장 분명하게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고진에 따르면 상인자본의 가치 증식은 공간적으로 차이 나는 두 가지 가치 체계 간의 차액에 의해 발생하는 반면, 산업자본은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만들어내야만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요? 그렇다고 너무 당혹스럽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차근차근 함께 살펴볼 테니까요.

 

그럼, 먼저 상인자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고진은 상인자본이 “‘공간적인 두 가지 가치 체계, 더구나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액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선 상품에 대한 가치 체계가 다른 두 공동체, 즉 공동체 A와 공동체 B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공동체 A는 소금이 1000원에 팔리고, 반면 인삼은 5000원에 팔리는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공동체 B인삼이 1000원에 팔리고, 소금은 5000원에 팔리는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동체가치 체계로 보아서, 우리는 공동체 A는 바다에 근접해 있고 공동체 B는 산간에 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겠지요. 만약 여러분이 자본금 1000원을 가진 상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윤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먼저 바닷가에 인접한 공동체 A에 가서 소금을 1000원에 삽니다. 그리고 이 소금을 가지고 공동체 B로 갑니다. 공동체 B에서 여러분은 소금을 5000원에 팔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인자본도 맑스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일반 공식, M-C-M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렇게 얻어진 5000원에 만족할 수 있나요? 만약 여러분이 현명한 자본가라면, 여러분의 수중에 모인 5000원으로 다시 공동체 B에서 인삼을 구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인삼을 공동체 A에 팔기 위해서지요. 결국 공동체 A에서 출발해서 공동체 B를 거쳐서 다시 공동체 A로 돌아올 때, 여러분의 자본은 1000원에서 자그마치 25000원으로 증식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공동체 A에서 1000원으로 소금을 산 것, M-C는 등가교환인 것처럼 보이고, 또한 공동체 B에서 소금을 5000원에 판 것, C-M도 등가교환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는 이윤이 발생했습니다. 이 이윤은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공동체 A와 공동체 B가치 체계의 차이, M-CC-M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 공간적인 두 가지 가치 체계, 더구나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액에 의해 생기는 것이 바로 상인자본의 가치라는 고진의 말이 이해되지요. 만약 모든 곳에서 가치 체계가 동일하다면, 상인자본은 잉여가치를 남기지도 못할 것이고 따라서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업자본은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까요? 고진은 산업자본이 노동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여기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회사는 부단히 노동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특히 기술혁신을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휴대전화, 더 발전된 휴대전화를 만들어 판매할 것입니다. 새로운 휴대전화는 기존의 휴대전화를 낡은 것으로, 다시 말해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소비자는 기존의 휴대전화가 망가지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의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휴대전화를 사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환경문제나 생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인간의 삶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비하고 또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비자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이나 생태 문제가 산업자본주의의 작동 메커니즘 그 자체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환경문제나 생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리는 산업자본주의 자체를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산업자본은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만들어냅니다. 간단히 말해 기술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유행,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진이 말한 차이화(differentiation)’의 과정, 정확히 말해 자기 차이화의 과정입니다. 물론 각각의 제품을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산업자본의 메커니즘도 M-C-M라는 자본주의 일반 공식에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자본가는 자신이 가진 자본으로 공장, 원료, 기술력, 노동력 등을 삽니다. 이것은 M-C의 과정이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새로운 제품은 기존의 낡은 제품을 제치고 불티나게 팔리게 됩니다. 이것은 C-M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상인자본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에서도 M-C라는 사는 과정C-M라는 파는 과정은 각각 독립적으로 살펴보면 등가교환인 것처럼 드러납니다. 따라서 사는 과정이나 파는 과정을 서로 떼어놓고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이윤이 발생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보입니다. ‘사는 과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는 과정도 아니라면 어디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상인자본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의 경우에도, 이 두 과정 사이의 차이에서만 이윤이, 즉 잉여가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우리가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산업자본주의 메커니즘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인자본주의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자신의 자본으로 공동체 A상품을 구매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공동체 B로 가서 판매합니다. 따라서 이 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상품을 판 사람과 자신으로부터 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산업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월급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산업자본가가 만들어낸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그 제품을 만든 노동자나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동료 노동자가 이 제품의 소비자입니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흔히 착취라고 표현하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만든 제품을 노동자가 소비함으로써 잉여가치, M’이 발생하는 셈이니까요..

 

 

▲ 평화시장 여공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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