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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장 젊은 날의 초상 -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 본문

문집/열하일기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장 젊은 날의 초상 - ‘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

건방진방랑자 2021. 7. 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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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그방경각외전

 

 

병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명의를 찾아 몸을 의탁하거나 약이나 침, 혹은 특별한 양생술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물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곳을 찾아 요양을 하거나.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이 연암은 아주 독특한 치료법을 택한다.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채집하여 글로 옮기는 ’(!)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치료의 방편으로 삼은 건 그렇다 치고, 글의 소재들이 주로 시정의 풍문, 그것도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야담들이라는 건 정말 희한하기 짝이 없다. 성인들의 말씀이나 현자의 지혜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시정에 떠도는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수양하다니. 이런 발상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 내막을 좀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텍스트가 민옹전(閔翁傳)김신선전(金神仙傳)이다. 민옹전의 주인공 민옹(閔翁)’은 말 그대로 이야기꾼이다. 어릴 때부터 옛사람의 기이한 절개나 거룩한 역사를 그리워하여 때로는 의기에 북받쳐 흥분하기도 했던 괴짜인데,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활발코, 괴이코, 황당무계하고, 걸찍걸찍해서 듣는 자치고 누구나 마음이 상쾌하게 열리지 않는 이가 없다[善譚辨, 俶恠譎恢, 聽者人無不爽然意豁也]’.

 

연암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그를 불러들인다. ‘나는 특히 음식 먹기를 싫어할뿐더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병이 되었나봐요[吾特厭食, 夜失睡, 是爲病也]’ 하자, 민옹은 곧 몸을 일으켜 치하(致賀)를 올린다. 당황하는 연암. 민옹의 진단은 이렇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을 싫어하신다니 그렇다면 살림살이가 여유있지 않겠우, 그리고 졸음이 없으시다니 낮밤을 겸해서 나이를 곱절 사시는 게 아니우, 살림살이가 늘어가고 나이를 곱절 사신다면 그야말로 수()와 부()를 함께 누리는 게 아니시우[君家貧, 幸厭食, 財可羡也; 不寐則兼夜, 幸倍年. 財羡而年倍, 壽且富也]” 병을 고통이 아니라, 삶의 능력 혹은 행운으로 변환시키는 역설 혹은 아이러니!

 

그런가 하면 김신선전(金神仙傳)의 주인공 김홍기는 도가(道家) 수련자다. 그는 나이 열여섯에 장가를 들었으나 한 번 관계하여 아들 하나를 낳고는 다시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자 두어 해 만에 몸이 별안간 가벼워 국내의 명산에 골고루 놀아서 늘 한숨에 수백 리를 달린 뒤에야 해가 이르고 늦음을 따졌다. 밥을 먹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를 흔들지 않았다. 머물 때에 일정한 주인이 없고, 다닐 때도 일정한 곳이 없을뿐더러, 올 때도 미리 기일을 알리지 않고, 갈 때에도 약속을 남기는 법이 없다. ‘무협지풍으로 말하면, ‘바람의 아들이라고나 할까.

 

청년 박지원은 그의 자취를 찾아서 전국을 헤맨다. 김홍기는 가는 곳마다 강렬하고도 깊은 흔적을 남기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 장면들을 열심히 따라가다보면, 문득 김홍기라는 기인(奇人)보다 그 기인을 찾아 헤매는 청년 박지원이 더욱 기이하게 느껴진다. 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김홍기의 흔적을 뒤쫓고 있는 것일까. 혹 그는 김홍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결말부에서 신선이란 벽곡(辟穀,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등을 조금씩 먹고 사는 것)하는 자가 아니라 울울히 뜻을 얻지 못하는 자[辟糓者 未必仙也 其鬱鬱不得志者也]’라고 하는 데 이르면, 김홍기와 청년 연암의 얼굴은 그대로 오버랩된다.

 

민옹이든 김신선이든 둘 다 세상의 주류적 가치나 표상 외부에 사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배적 코드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자유롭다! 연암이 이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위안을 얻는 것은 그의 병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얼마간 짐작케해준다. 그는 자신이 이제 밟아가야 할 홈 파인 공간이 주는 무거움 때문에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런 중력장치에서 벗어난 존재들과 접속함으로써 치유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지.

 

 

 

 

그런 점에서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은 일종의 마이너(minor)들의 보고서다. 민옹과 김신선은 특히 튀는인물들이고, 그 밖의 경우도 대략 유사한 계열에 속한다. 마장전(馬駔傳)에 나오는 송욱(宋旭), 조탑타(趙闒拖), 장덕홍(張德弘) 등은 거리를 떠도는 광사들이고, 광문자전(廣文者傳)의 주인공 광문이는 비렁뱅이이며,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의 주인공 엄항수(嚴行首)는 서울 변두리에서 똥을 져다주면서 먹고사는 분뇨장수, 우상전(虞裳傳)의 주인공인 우상 이언진(李彦眞)은 역관 신분인 탓에 국내에서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일본에서 이름을 날린 불우한 문장가다.

 

직업도 신분도 다르지만, 이들은 주류(major)에서 벗어난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을 묘사하는 연암의 언어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똥을 져 나르는 엄항수가 정신적으로는 가장 고결하다고 하는 것이나 양반이 되려고 그토록 갈망하던 정선부자가 양반문서를 보고서는 당신네들이 나를 도둑놈이 되라 하시유[將使我爲盜耶]’하며 달아나는 것, 송욱(宋旭)이나 광문자(廣文者) 같은 거리의 자식들도 군자들의 위선적인 사귐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등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의 이야기는 온통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역설로 흘러넘친다. 이를테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웅성거리던 마이너들의 목소리가 연암의 입을 빌려 지상을 활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흥미로운 건 아주 뒷날 탄생된 소위 허생전(許生傳)역시 탄생의 경로가 방경각외전과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열하일기』 「옥갑야화(玉匣夜話)편에 실려 있는데, 하루는 연암이 옥갑에서 비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밤 드리(밤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역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예전에 윤영(尹映)이란 이에게 들은 거부(巨富) 변씨(卞氏)와 허생(許生)의 이야기를 풀어 놓게 되는데, 그게 바로 허생전(許生傳)이다. 그 과정을 조금 살펴보기로

 

 

내 나이 스무 살(1756) 무렵, 봉원사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는 식사를 아주 조금밖에 하지 않았으며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도인법(導引法, 도가에서 선인이 되기 위한 양생법의 하나)을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오가 되면 문득 벽에 기대앉아서 약간 눈을 감고 용호교(龍虎交, 도가의 양생법)를 하였다. 연배가 상당히 높았으므로 나는 그에게 공손히 대하였다.

余年二十時, 讀書奉元寺, 有一客能少食, 終夜不寐, 爲導引法, 至日中, 輒倚壁坐, 少合眼爲龍虎交, 年頗老, 故貌敬之.

 

그때 그가 나에게 허생의 일과 염시도ㆍ배시황ㆍ완흥군부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몇만 마디 말이 계속 이어지면서 몇날 밤을 끊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기괴하고 신기하여 모두 들을 만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이름이 윤영이라고 했다. 이때가 바로 병자년(1756) 겨울이다.

時爲余談許生事, 及廉時道裵時晃見完興君夫人, 亹亹數萬言, 數夜不絕, 詭奇怪譎, 皆可足聽, 其時自言姓: 名爲尹映,此丙子冬也.

 

 

그로부터 18년 뒤, 연암은 다시 그를 만난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얼굴은 그대로였고 발걸음 또한 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윤영임을 부인하였다. 이름을 숨기고 속세를 유희하며 구름에 달 가듯이 떠도는 존재였던 것. 결국 창작의 시공간은 다르지만 허생전(許生傳)역시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의 텍스트 구성법과 동일한 패턴을 밟고 있다.

 

소설사의 선구로 칭송받는 문제적 텍스트들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훗날 그는 이 작품들을 습작 혹은 유희문자 정도로 치부하고, 그 가운데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같은 작품은 스스로 없애버리기도 했지만, 마이너리그는 문학사적 성취 여부와는 별개로, 연암의 글쓰기가 향하는 방향 및 잠재적 폭발력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인용

목차 / 박지원

열하일기 / 문체반정

신체적 특징

태양인

우울증

마이너리그방경각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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