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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1장 젊은 날의 초상, 우울증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1장 젊은 날의 초상, 우울증

건방진방랑자 2021. 7. 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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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영조 13) 25일 새벽, 서울 서소문 밖 야동에서 박사유(朴師愈)와 함평 이씨 사이의 2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뒷날 집안 사람이 어느 북경의 점쟁이에게 그의 사주를 물었더니, “이 사주는 마갈궁(磨蝎宮)에 속한다. 한유(韓愈)소식(蘇軾)이 바로 이 사주였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반고(班固)사마천(司馬遷)과 같은 문장을 타고났지만 까닭없이 비방을 당한다[此命磨蝎宮, 韓昌黎蘇文忠以此故窮, 馬文章, 無事致謗](과정록過庭錄1).”고 했다나.

 

소급해서 적용해보자면, 이 사주풀이는 비교적 적중한 편이다. 한유와 소식, 반고와 사마천에 견줄 만한 불후의 문장가가 되었고, 명성에 비례하여(?) 갖은 구설수와 비난에 시달렸으니.

 

그의 집안인 반남박씨가는,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중종 때 사간(司諫)을 지낸 박소(朴紹) 이후 명문 거족이었다. 연암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할아버지 박필균(朴弼均)신임사화(辛壬士禍)로 노론과 소론이 분열될 당시, 집안의 당론을 노론으로 이끄는 한편, 영조 즉위 후 정계에 진출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출신 성분으로 보면 조선 후기 권력의 핵심부인 노론 경화사족(京華士族)의 일원인 셈이다.

 

처가쪽 역시 마찬가지다. 연암은 16세 때 전주 이씨와 결혼한 후, 장인 이보천과 그 아우인 이양천의 지도를 받으면서 학업에 정진했는데, 이들은 송시열(宋時烈)에서 김창협(金昌協)으로 이어지는 노론 학통을 충실히 계승한 산림처사(山林處士)였다. 이 집안은 대대로 청렴함을 자랑했기 때문에 명망에 걸맞은 부를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돈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을지언정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 따위는 없었다. 이것은 중세 지식인들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있어 꼭 새겨두어야 할 사안이다. 가난하지만 언제든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는 계보에 속하는 인물과 비록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해도 평생 출신의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물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천양(天壤)의 거리[天壤之差]’가 있기 때문이다.

 

주류 가문의 촉망받는 천재가 밟아야 할 코스란 명약관화하다. 과거를 통해 중앙정계로 진출하여 세상을 경륜하는, 이른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 연암 또한 처음에는 이 길을 그대로 밟아나간다. 스무 살 무렵부터 몇몇 벗들과 팀을 짜서 요즘의 고시생들처럼 근교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과거 준비에 몰두한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난다. 우울증이 몸을 덮친 것이다.

 

 

계유ㆍ갑술년 간 내 나이 17~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彛器, 골동품)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더욱더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민옹전(閔翁傳)

歲癸酉甲戌之間, 余年十七八, 病久困劣, 留好聲歌, 書畵古釖, 琴彛器諸雜物, 益致客, 俳諧古譚, 慰心萬方, 無所開其幽鬱.

 

 

귀신까지 쫓아버릴 정도의 양기와 ‘마갈궁의 사주를 타고난 인물이 우울증에 빠졌다? 그것도 한창 기운생동(氣運生動)’는 청년기에? 아직 산전수전을 겪지도 않았고, 권력투쟁의 뜨거운 맛경험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마 그의 생애 가운데 이렇게 의기소침한 경우는 이때가 유일할 듯싶다.

 

이 우울증은 사나흘씩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에다 음식만 보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거식증까지 동반하는, 한마디로 중증이었다. 음악, 서화, , 거문고 등에 탐닉하거나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달래보아도 별반 효과가 없을 정도로 병의 뿌리가 깊었다. 사춘기의 통과제의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젊은 날의 이유 없는 방황이었을까. 원인이 뭐든 중요한 건 청년 연암의 내부에 참을 수 없는 동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입신양명이라는 제도적 코스와의 격렬한 마찰음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질병은 다른 삶을 살라는, 문턱을 넘으라는 몸의 신호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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