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자
청년기의 우울증을 거쳐 30대, 젊음의 뒤안길을 통과하면서 연암은 마침내 과거를 폐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을 보면, 연암을 자기 당파로 끌어들이려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에 대한 염증이 그 원인이라고 암시되어 있다. 하지만 선뜻 납득되지는 않는다. 소인배 없는 시절이 어디 있었으며, 당파 싸움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닌 바에야, 그 정도로 아예 ‘초연히 세상에서 벗어나’겠다는 실존적 결단을 내렸다면 좀 지나친 결벽증 아닌가.
좀더 무게가 실리는 건 정국(政局)에 대한 심각한 회의다.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처숙(妻叔) 이양천이, 영의정에 소론계 인물이 임명된 조치에 항의하다 흑산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형벌을 받았고, 또 벗 이희천(李羲天)이 왕실을 모독하는 기사가 실린 중국 서적을 소지한 혐의로 처형을 당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으며, 유언호(兪彦鎬), 황승원(黃昇源) 등 그의 지기들이 잇달아 정쟁에 휘말리는 사건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정치에 대한 환멸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이것도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사화의 피바람이 그치지 않았던 조선왕조에서, 더욱이 세상을 경륜하는 것을 학문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유학자가 이런 정도의 난맥상을 못 견뎌 뜻을 접는다는 건 뭔가 석연치 않다. 따지고 보면 과연 그 정도의 격랑이 없는 시대가 있었던가? 더구나 이용후생을 지식의 모토로 삼았을 만큼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그가.
물론 이 저간의 사정들이 함께 작용하긴 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그는 선천적으로 제도와 질서와는 절대로 친화할 수 없는 신체적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닐지, 사실 한 인간의 생을 규정하는 건 거창한 명분이나 사명감 따위가 아니다. 특히 ‘기가 센’ 인물일수록 시대가 부과한 기대 지평과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의 균열이 정치경제학적 인과관계나 이념적 명분으로 환원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지각 불가능의 상태에서 ‘돌연’ 인생 코스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예컨대 그를 못 견디게 한 건 정쟁이나 권력의 부패 이전에 과거장의 타락상이었던 듯하다.
어제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줄잡아 수만 명이나 되었지만 창명(唱名; 급제자 발표)은 겨우 스무 명밖에 아니 되니 이야말로 만에 하나라 이를 만하지 않겠소. 시험장의 문에 들어갈 때 서로 밟고 밟히고 죽고 다치고 하는 자들이 수도 없으며, 형제끼리 서로 외치고 부르고 뒤지고 찾곤 하다가, 급기야 서로 만나게 되면 손을 잡고 마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나 만난 듯이 여기니, 죽을 확률이 십 분의 구라 이를 만하지요. 지금 그대는 능히 십 분의 구의 죽을 확률에서 벗어나서 만에 하나의 이름을 얻었소.
凡言僥倖, 謂之萬一. 昨日擧人, 不下數萬, 而唱名纔二十, 則可謂萬分之一. 入門時相蹂躪, 死傷無數. 兄弟相呼喚搜索, 及相得, 握手如逢再生之人, 其去死也, 可謂十分之九. 今足下能免十九之死, 而乃得萬一之名.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만에 하나의 영광스러운 발탁을 미처 축하하기 전에, 속으로 사망률이 십 분의 구에 달하는 그 위태로운 장소에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축하할 따름이오. 즉시 몸소 축하해야 마땅하겠으나, 나 역시 십 분의 구의 죽음에서 벗어난 뒤라 지금 자리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으니 병이 조금 낫기를 기다려주기 바라오.
僕於衆中, 未及賀萬分一之榮擢, 而暗慶其不復入十分九之危場也. 宜卽躬賀, 而僕亦十分九之餘也, 見方委臥呻楚, 容候少閒.
「북쪽 이웃의 과거 급제를 축하함[賀北鄰科]」이라는 글의 일부다. 과거시험장이라고 하면 우리에겐 궁중악이 우아하게 깔리는 가운데 비원 뜰을 가득 메운 선비들이 나란히 정좌한 채 근엄한 표정으로 붓을 놀리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실제 상황은 그와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전국 각처에서 수험생들이 올라오면, 그들의 수행원들까지 포함해서 시험 당일 전에 이미 고사장 바깥이 장바닥이 되었고, 또 당일날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수행원들 사이의 ‘닭싸움’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니, 수만 명이 서로 짓밟으며 형과 아우를 불러댄다는 연암의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듯하다.
연암은 단지 제도의 부조리를 풍자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아수라장에서 간신히 벗어나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으면서 후회막심해하는 표정이 생생하게 손에 잡힐 듯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하다면, 이미 십대 후반 입신양명의 문턱에서 ‘과거알레르기 증후군’을 앓았던 그로서는 체질적 거부반응이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설령 과거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 해도, 그는 무엇보다 ‘고정된 하나의 틀로 천만 편의 똑같은 글을 찍어내는’ 바로 그 과문(科文)을 참을 수 없었다. ‘사마천(司馬遷)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대도 /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진 않으리라’고 하여 고문을 답습하는 문풍을 격렬히 조롱했던 그가 까다롭기 그지없는, 게다가 다만 격률의 완성도만 테스트하는 과문의 구속을 어찌 참을 수 있었으랴. 아니, 더 나아가 관료로서의 진부한 코스를 어찌 선택할 수 있었으라. 어떻게든 과거에 입문시키려는 주최측의 그물망을 피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포획과 탈주, 이후에도 이런 ‘시소 게임’은 계속된다. 뒤늦게 음관(蔭官)으로 진출했을 때, 음관들을 위한 특별 시험을 실시하면서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는 왕명이 있었음에도 그는 근무지인 경기도 제릉으로 ‘날쌔게’ 달아난다. 과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시험을 치르게 하여 관료로 진출시키려는 포섭의 기획을 계속 와해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연암은 흔히 떠올리듯,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제도권으로부터 축출당한 ‘불운한 천재’가 아니라, 체제의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국가장치로부터 끊임없이 ‘클리나멘(clinamen)’을 그으며 미끄러져 간 ‘유쾌한 분열자’였던 것.
그렇다면 시짓기에 그토록 인색했던 까닭에 대해서도 대충 감이 잡힐 듯하다. 그는 사실 매우 뛰어난 시인이었다.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고[총석정관일출, 叢石亭觀日出]」를 비롯하여 남아 있는 작품들은 그 기상이나 수사학이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그런데도 그가 시를 멀리한 이유는 알고보면 꽤나 단순하다. ‘그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엘리트 집단의 공통 문법이자 문화적 징표인 한시의 형식도 견디지 못했던 연암, 거기에는 어떤 명분이나 사회적 이유를 떠나 태생적으로 ‘탈코드화된’ 기질적 속성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만년에 자식들에게도 과거로 출세하기를 바라지 말라고 당부했고, 실제로 자식의 영달에도 무심했다. 그와 관련한 흥미로운 삽화 하나. 한번은 아들이 정시를 보는 날이었는데, 그때가 마침 연암골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친지들은 모두들 틀림없이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시험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암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도 일절 마음의 동요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그는 원초적으로 ‘비정치적인’, 아니 ‘권력 외부’를 지향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의 탈주를 막을 수 있으랴!
▲ 「소과응시」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 과거는 일생일대의 큰 행사였다. 입신양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대부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과거제도의 권위도 추락하고 말았다. 조선 후기 들어 과거제도가 부패하면서 ‘자리 빼앗기’에 컨닝까지 과거 시험장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그림에서 보듯 응시자 한 명에 수행원이 너댓 명인 데다 마치 유람을 온 듯한 포즈들이다. 연암 같은 기질로 이런 분위기를 참아내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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