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탈주ㆍ우정ㆍ도주
미스터리(mistery)
從古文章恨橘鰣 | 예로부터 훌륭한 글은 얻어보기 어려운 법 |
幾人看見燕岩詩 | 연암시를 본 이 몇이나 될까? |
曇花一現龍圖笑 | 우담바라꽃이 피고 포청천이 웃을 때 |
正是先生覔句時 | 그때가 바로 선생께서 시 쓸 때라네 |
이 시는 ‘연암그룹’의 일원인 박제가(朴齊家)의 「연암이 율시를 지은 걸 축하하며(하연암작율시賀燕岩作律詩)」라는 시이다. 3천 년에 한 번씩 피는 꽃, 우담바라. 살아서는 서릿발 같은 재판으로 이름을 날리고 죽어선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포청천(包靑天), 본명은 포증(包拯), 송나라 때 유명한 판관이다. 한때 「포청천」이라는 중국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에게서 웃는 모습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그런데 박제가는 연암의 시짓기를 우담바라 꽃과 포청천의 웃음에 비유했다.
또 다른 친구 이덕무(李德懋)도 『과정록(過庭錄)』 4권에서 다음과 같이 비슷한 불평을 토로한 바 있다.
연암의 산문은 천하에 오묘하다. 그러나 공은 시만큼은 몹시 삼가 좀처럼 지으려 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포청천이 잘 웃지 않아 그가 한 번 웃는 일이 100년에 한 번 황하가 맑아지는 데 비견된 것처럼 많이 얻어볼 수 없다.
燕岩文章玅天下. 而於詩獨矜愼, 不肯輕出, 如包龍圖之笑, 比河淸, 不得多.
두 사람 모두 연암이 평생 동안 지은 시가 고체시, 근체시를 합해 50여 수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허풍과 익살로 빗댄 것이다. 저 향촌의 재주 없는 선비들도 적게는 수백 수에서 많게는 수천 수에 이르는 시를 남기는 게 조선조의 관례임을 떠올리면, 두 사람의 과장적 제스처도 그저 ‘수사적 표현’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다. ‘한유(韓愈)와 소식(蘇軾), 반고와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타고났으며’, ‘붓으로 오악(五嶽)을 누르리라’는 꿈의 예시를 받았다는 그가 어째서 시짓기에 그토록 인색했던 것일까? —— 미스터리 하나.
당시 아버지의 문장에 대한 명성은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치를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는 아버지를 꼭 합격시키려 하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눈치채고 어떤 때는 응시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응시는 하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거시험장에서 고송(孤松)과 괴석(怪石)을 붓 가는 대로 그리셨는데,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時先君文章之名, 已喧動一世, 每有科試, 主試者, 必欲援引. 先君微知其意, 或不赴, 或赴而不呈券. 一日在場屋, 漫筆畵古松老石, 一世傳笑其踈迂.
아들 박종채의 회고록인 『과정록(過庭錄)』 1권 일부다.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 유학자가 과거시험 보기를 거부하고, 거기다 한술 더 떠 기껏 응시하고선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거나 고송과 괴석을 그리고 나오다니. 시험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나온 건 내가 아는 한 연암이 유일한 케이스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않으려 했는데, 꼭 응시해야 한다고 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험장에 들어가긴 했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왔다. 그때 장인이 시골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고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某之會圍, 吾不甚喜也. 及聞其不呈券, 甚欣然也](『과정록過庭錄』 1권)”라고 했다나. 그 사위에 그 장인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과거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으나 시대가 용납하지 않아서, 아니면 제도적 부정의 횡포 때문에 제도권으로의 진입을 봉쇄당한 천재들은 무수히 있었다. 하지만 거꾸로 시험 주관자는 어떻게든 합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데, 정작 당사자가 관문에 들어서기를 끝내 거부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대체 왜? —— 미스터리 둘.
언뜻 무관해 보이지만, 이 두 가지 미스터리는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이것들은 그가 청년기에 겪은 우울증에 연원이 닿아 있기도 하다. 이 미스터리들을 풀 수 있다면, 독자들은 청년기 이후 연암의 생애를 좀더 근경에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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