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화가 만든 고지식
하긴 달밤뿐이랴. 한낮의 거리에서도, 시끌벅적한 장터에서도 그는 언제나 ‘솔로’였다. 그것은 무리로 움직이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한 사항이다. 가장 가까운 동행자인 장복이와 창대는 뼛속까지 중화주의의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책 없는 고지식 계열의 인물들이다.
책문 밖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도강록渡江錄」). 아침밥을 먹고 행장을 정돈한즉, 양편 주머니의 왼편 열쇠가 간 곳이 없다. 샅샅이 풀밭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장복이를 보고, “너는 행장을 조심하지 않고 늘 한눈을 팔더니, 겨우 책문에 이르러서 벌써 이런 일이 생겼구나. 속담에 사흘 길을 하루도 못 가서 늘어진다는 격으로, 앞으로 2천리를 가서 연경에 이를 즈음이면 네 오장인들 어디 남겠느냐. 내 듣건대 구요동(舊遼東)과 동악묘(東嶽廟)에 본시 좀도둑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니, 네가 또 한눈을 팔다가는 무엇을 잃어버릴지 알겠니[汝不存心行裝 常常遊目 纔及柵門 已有閪失 諺所謂‘三三程一日未行’ 若復行二千里 比至皇城 還恐失爾五臟 吾聞舊遼東及東岳廟 素號姦細人出沒處 汝復賣眼 又未知幾物見失]”하며 꾸짖으니, 그는 민망한 듯이 머리를 긁으며 “쇤네가 인제야 알겠습니다. 그 두 곳을 구경할 적엔 제 두 손으로 눈깔을 꽉 붙들고 있으면 어느 놈이 빼어갈 수 있으리까[小人已知之兩處觀光時 小人當雙手護眼 誰能拔之]”한다. 연암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좋아[善哉]”하고 응낙하고 만다.
이렇게 장복이에겐 유머와 개그, 비유 따위가 안 통한다. 그에게는 오직 ‘썰렁한’ 직서법만이 있을 뿐이다. 요양성에 들렀을 땐 ‘여긴 좀도둑이 많아 낯선 사람이 구경에만 마음이 팔려 있으면 뭐든 잃어버리고 만다’면서 지난해 사신 행차가 안장이나 등자를 잃어버렸다고 주의를 주자, 장복이가 갑자기 말안장을 머리에 쓰고 등자를 쌍으로 허리에 차고서 앞에 나선다. 이 정도면 고지식도 가히 ‘엽기적’ 수준이다. 연암도 기가 질려 “왜 너의 두 눈알을 가리진 않냐”고 혀를 내두른다. 또 열하로 가는 길에 혼자만 뒤에 남게 되자 말머리를 붙들고는 울고불고 하다가 일행이 열하에서 돌아왔을 땐, 상봉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선물 챙기기에 바쁘다. 그러고는 창대가 하는 ‘뻥’ —— 황제를 만났다는 둥, 별상금을 받았다는 둥 —— 을 모조리 다 믿어버린다.
창대 역시 비슷한데, 주술적 영험이 많다는 관제묘에서 일행이 모두 제물을 바치고 머리를 조아리며 제비를 뽑아 길흉을 보는데, 창대가 참외 한 개를 놓고선 무수히 절하며 복을 구한 다음, 곧바로 그 참외를 관운장의 소상(塑像) 앞에서 몽땅 먹어치운다. 옆에서 지켜보던 연암은 “가진 것이 적으면서 바라는 것은 사치롭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혀를 끌끌 찬다. 결국 창대는 장복이와 ‘환상의 2인조’였던 것이다. 그러니 연암의 말을 알아먹을 리가 없다. 가엾은 연암!
장복이나 창대는 무식한 데다 고지식해서 그렇다 치지만 소위 식자층인 정사, 부사, 역관, 비장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암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열하의 태학에서 만났던 윤가전은 연암과 의기투합하여 오래도록 고금의 운율을 논한 바 있었는데, 「망양록(忘羊錄)」이라는 장이 그 보고서다. 근데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양을 잊다니? 양이 음률과 뭔 상관이 있다고, 사연인즉 이렇다. 연암이 윤가전의 처소에 들렀을 때 윤이 연암을 위해서 양을 통째로 쪄놓았다. 그런데 악률이 고금에 같고 다른 것을 한참 이야기한 뒤에, 윤이 양을 아직 찌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하인은 이미 차려 놓은 지 오래라 식었다고 답한다. 음률을 논하는 데 빠져 양이 익고 식는 것을 온통 잊은 것이다. 연암이 벗과 더불어 대화하는 것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런데 윤이 연암과 사귄 뒤, 정사(正使)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조선 사행단을 찾는다. 연암은 당황한다. “우리나라 대부들은 생으로 존귀한 체함이 대단하여, 중국 사람을 보면 만주족, 한족 구분 없이 모두 휩쓸어 되놈으로 보고, 한갓 마음만 도도한 체 하는 것이 애초부터 몸에 밴 습속이 되어버렸다. 그가 어떠한 호인이며 무슨 지체인지 알기 전에 벌써 그를 반겨 맞이할 리도 없거니와, 비록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필시 견양(犬羊)과 같이 푸대접할 것이다[我東大夫 生貴甚矣 見大國人無滿 漢 一例以胡虜視之 驕倨自重 本自鄕俗然也 當不察彼是何許胡人 何等官階 而必無款接之理 雖相接 必以犬羊待之 亦必以我爲不緊矣].” 과연 연암의 예상대로 윤가전이 뜰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정사는 만나주지 않는다. 정사가 이 정도니 다른 인물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연암과 찾아온 방문객조차 만나주지 않는 정사. 이 사이는 정말 얼마나 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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