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헤맨 외로운 늑대
그래서 정말로 연암과 동행한 벗들은 멀리 있는 이들이다. 연암은 추억의 갈피를 들춰 여정마다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흔적을 찾는다. 특히 유리창(琉璃廠)에서 연암은 자기보다 앞서 연행을 했던 친구들 생각으로 깊은 감회에 젖는다.
조선시대 연행에서 ‘유리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려 27만 칸에 달하는 서점,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한 지식의 보고(寶庫), 아니 용광로, 그야말로 세계의 지식이 흘러들어오고 다시 뻗어나가는 곳이 유리창이었다. 그러므로 근대 이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있어 유리창은 연행의 필수코스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공식적 업무가 없는 지식인들의 경우, 연행의 목적지는 북경이 아니라 유리창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홍대용(洪大容)이 ‘천애의 지기’를 만난 곳도 바로 이 유리창이 아니었던가. 이쯤 되면 독자들도 내가 중국에 갔을 때, 왜 퇴락한 유리창에서 유독 깊은 감회에 젖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는 거기서 200여 년 전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역동적인 숨결을, 그리고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 거리를 지나갔을 연암의 발자취와 호흡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연암은 유리창에서 가슴벅찬 감동과 함께 진한 고독감에 사로 잡힌다. ‘지성의 거리’를 거닐면서 새삼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지식을 펼칠 장이 없음을 환기하게 되었나보다. 하여, 한 누각 위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이렇게 탄식한다. “이 세상에 진실로 저를 아는 사람 하나를 만났다면 한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비감함. 그렇다고 기죽어 울울해할 연암이 아니다. 「관내정사(關內程史)」에 보이는 내용이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면 나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다’라는 노자의 궤변을 버팀목 삼아 국면을 전환한다. “이제 이 유리창 중에 홀로 섰으니, 그 옷과 갓은 천하에 모르는 바이요, 그 수염과 눈썹은 천하에 처음 보는 바이며, 반남(潘南)의 박(朴)은 천하에 일찍이 듣지 못하던 성일지라도, 내 이에서 성(聖)도 되고 불(佛)도 되고 현(賢)도 되고 호(豪)도 되어, 그 미침이 기자(箕子)나 접여(接輿)와 같기로, 장차 그 누가 와서 이 천하의 지락을 논할 수 있겠는가?
今吾獨立於琉璃廠中 而其衣笠天下之所不識也 其鬚眉天下之所初覩也 潘南之朴 天下之所未聞也 吾於是爲聖爲佛爲賢豪 其狂如箕子接輿 而將誰與論其至樂乎?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을 고귀함으로, 다시 자유인의 지극한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는 이 멋진 역전! 그래서 ‘외로운 늑대’ 연암은 결코 외롭지 않다!
▲ 유리창 거리
유리창은 베이징에서 고전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동아시아 지식의 요람이라는 영광은 사라졌을지언정 붓과 먹, 고서와 종이 등 여전히 지식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보물들로 그득하다. 그래서인가. 이 거리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200년 전 새로운 지식을 찾아, 이국의 벗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서성였을 연암의 뒷모습이 보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