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千辛萬苦)’
그러나 가장 힘든 건 뭐니뭐니해도 ‘야간비행’이다. 일정을 당기기 위해서는 쉴참을 건너뛰는 것, 밤을 도와 행군하는 것 말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마침내 온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리는 마지막 난코스가 시작되었다. 무박나흘의 ‘지옥훈련’!
하인들이 가다가 발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존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은 구름장을 드리운 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가 밀려오듯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눈을 빤히 뜨고 사물을 보긴 하나 금세 기이한 꿈에 잠겨버리고, 옆사람에게 말에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깨워주면서도 정작 내 몸은 안장에서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下隷行且停足者 皆立睡也 余亦不勝睡意 睫重若垂雲 欠來如納潮 或眼開視物 而已圓奇夢 或警人墜馬 而身自攲鞍
창대가 가면서 뭐라뭐라 떠들어대기에, 나 역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잠꼬대가 그토록 생생하였다.
昌大行且語 吾初與酬酢 細察之 譫囈鄭重也
얼마나 졸리웠으면 연암은 길가의 돌에다 대고 이렇게 맹세한다.
내, 장차 우리 연암 산중에 돌아가면, 일천 일 하고도 하루를 더 자서 옛 희이선생(希夷先生, 한번 잠들면 천 일씩 잤다는 도사)보다 하루를 더 자고, 또 코 고는 소리를 우레처럼 내질러 천하의 영웅이 젓가락을 놓치게 하고, 미인이 기절초풍하게 할 것이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긴다면, 내 기필코 너와 같이 돌이 되고 말 테다
吾且歸吾之燕岩山中 當作一千一日睡 要勝希夷先生一日 鼾聲若雷 使英雄失箸 美人象車 不者有如石
맙소사! 아무리 졸리기로 이런 맹세를 하다니.
이 정도면 가히 전시 상황이라 할 법하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전시가 아니고서야 이런 식의 강행군을 어찌 감내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황제의 명령이 어떤 것인지 이보다 더 실감나게 말해주는 것도 드물다. 당시인들에게 있어 황제의 명이란 전쟁을 치르듯 지엄한 일이었던 것이다. 객점에 이르기 직전 연암은 창대를 말에 태운다. 여러 날 굶주린 끝에 오한까지 들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 수역의 마부도 크게 앓으므로 병든 두 마부를 각기 말에 싣고, 흰 담요를 꺼내어 창대의 온몸을 둘러싸고 띠로 꼭꼭 묶어서 수역의 마두더러 부축하여 먼저 가게 하고, 수역과 더불어 걸어서 객점에 이르니 밤이 이미 깊었다. 마침내(!) 열하에 도착한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한마디로 파김치가 되어.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졸린 것보다 더 간절한 괴로움은 없었나 보다. “객점에 이르니 곧 밥상을 내왔다. 허나 심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로하여, 수저는 천 근이나 되는 듯, 혀는 백 근이나 되는 듯 움직이기조차 힘들다[至店卽進食 而身倦神疲 擧匙若千斤 運舌如百斤].” 수저가 천 근이고, 혀가 백 근이라? 나흘을 자지 못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배고픈 사람 눈에는 모든 게 먹을 것처럼 보이듯, 졸린 사람 눈에는 세상 모든 게 잠을 돋우는 것으로 보이는 법. “상에 가득한 나물이나 구이 요리가 모두 잠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촛불마저 아롱아롱 무지개처럼 뻗쳐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곤 한다[滿盤蔬炙 無非睡也 燭焰如虹 芒角四孛].” 눈이 가물가물 잦아드는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그렇다고 그냥 쓰러질 수야 없지. 연암은 이 와중에도 ‘먼 길 나그네의 벗’인 술 한잔을 잊지 않는다. “청심환 한 개로 소주와 바꾸어 마시니, 술맛이 기가 막히다. 마시자마자 곧 취하여 나도 모르게 스르르 베개 위로 곯아떨어졌다[於是以一淸心丸 易燒酒痛飮 酒味亦佳 飮輒醺 頹然抵枕矣].” 천신만고 끝에 오는 달콤한 잠, 그것에 견줄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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