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수건과 대보법왕
먼저 다음 장면부터 음미해보자. 때는 2001년 여름쯤이고, 장소는 인도의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궁전 앞이다.
궁을 나섰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궁으로부터 보드가야의 대탑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천수만의 티베트 군중들이 달라이라마를 한번 뵙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더더욱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순간에 전개된 군중들의 모습이다. 달라이라마와 내가 궁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온 거리가 정적에 휩싸였다. 영화의 뮤트 슬로우 모션처럼. 온 세계가 너무도 조용해진 것이다. 미동의 소리도 없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육안으로 쳐다보는 그 감격을 가슴으로, 눈빛으로만 표현했다. (중략)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군주였고, 다르마의 구현체였다. 그는 21세기 벽두에 우뚝 서 있는 왕이었다.
김용옥,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 통나무, 2002년 강조는 필자
나는 이 장면을 처음 접했을 때,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한갓 난민촌의 수장이 어떻게 이토록 막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군중을 침묵하게 하는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왕이면서 동시에 진리의 구현체인 존재가 이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가능하단 말인가? 누구도 이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 우리의 이 협소한 인식의 수준에선 달라이라마는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다.
연암의 시대에도 그러했다.
대저 그들이 하는 말들은 모두 놀랍고 이상하여, 활불을 칭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며, 괴상하고 기이하며 속임수 같고 거짓말 같아서 다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끌어 붙여서 이를 기록하고, 잡된 내용을 모아서 서술하여 문득 「황교문답(黃敎問答)」 한 편을 완성한 것이다. 신령스럽고 환상적이며, 거대하고 화려하며, 밝고도 섬세하여 아주 특이하고 이색적인 글이 되었다. 이른바 활불의 술법이나 내력을 갈고리로 후벼 파내고 더듬어서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암이 만나서 이야기한 사람들의 성격이나 학식 및 용모와 말버릇까지 모두 펄펄 살아서 뛸 듯 환하게 드러난다.
大抵皆是可驚可異 似譽似嘲 瑰奇譎詭 莫可盡信 而第爲之牽聯而書之 叢雜而述之 便成一篇 靈幻鉅麗 空明纖妙 異樣文字 不特所謂活佛者 法術來歷 可以鉤距探取 卽晤語諸人之性情學識容貌辭氣 躍躍然都顯出來
이것은 연암의 처남 이재성(李在誠)의 평어(評語)다. 무슨 평어가 이렇게 알쏭달쏭한가? 대체 어떤 글이길래? 바로 「황교문답(黃敎問答)」에 대한 것이다. 황교란 티베트 불교를 뜻하는 것으로, 평어에 나오는 활불, 곧 판첸라마의 내력을 다룬 글이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티베트와의 만남은 마치 ‘낯선 우주’와의 충돌만큼이나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서술이 단순명료할 리가 없다.
실제로 『열하일기』 전체에서 가장 ‘튀는’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연암이 판첸라마를 만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판첸라마는 명목상으로는 대법왕 달라이라마를 잇는 소법왕이지만, 서로 번갈아 가며 통치하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위상을 지닌 존재이다. 결국 요즘으로치면 연암은 달라이라마를 만난 셈이다! 연암과 달라이라마의 만남이라? 이 대목은 내용도 기이할 뿐 아니라,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티베트 불교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신기하게도 이 내용들은 별다른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특별한 주목을 받지도 않았다. 문체반정(文體反正)에서도 이 부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사상적 배치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먼나라의 ‘괴담’ 정도로 간주되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찰십륜포(札什倫布)」, 「황교문답(黃敎問答)」, 「반선시말(班禪始末)」로 이어지는 대목들은 열하일기』라는 큰 대양 위에 떠 있는 ‘섬’, 그것도 신비로운 산호초와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절해고도(絶海孤島)처럼 느껴진다.
달라이라마를 접견할 때 항상 수반되는 예식이 하나 있다. 하얀 비단천으로 된 수건을 달라이라마께 바치면 달라이라마가 다시 그것을 그 사람의 목에 걸어주는 것이 그것이다. 이 흰 수건을 ‘카타’라고 하는데, 이것을 받으면 전생과 금생의 업장(業障)이 모두 소멸된다고 한다.
「반선시말(班禪始末)」에 바로 이 예식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선비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판첸라마는 서번(西番) 오사장(烏斯藏)의 대보법왕으로 전신은 파사팔(巴思八)이다. 파사팔은 토파(土波)의 한 여인이 새벽에 나가서 물을 긷다가 수건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주워 허리에 둘렀는데, 얼마 후 그것이 점점 기름으로 엉키며 이상한 향기가 나면서 잉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흰 수건은 판첸라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상징적 매개물인 셈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신성하여 『능가경(楞伽經)』 등 1만 권을 능히 외울 수 있었다. 원세조(元世祖)가 그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맞아오니 과연 지혜가
있고 명랑한 데다, 전신이 향기롭고 걸음걸이는 천신 같으며, 목소리는 율려(律呂)에 맞는지라 대보법왕(大寶法王)이란 호를 하사했다. 그 뒤 원제국에선 파사팔교(巴思八敎)가 번성하여 황제와 후비, 공주들이 열렬히 그 예식에 참여하곤 했다.
▲ 찰십륜포의 황금전각
찰십륜포는 순전히 판첸라마 6세를 위한 궁전이다. 황금전각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진 판첸라마 6세의 좌상 및 만수절 행사 행렬도를 비롯하여 각종 기록들이 남아 있다. 건륭제의 만수절과 판첸라마의 행차가 당시 세계사적 이벤트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