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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 말과 사물에 대한 관점 차이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 말과 사물에 대한 관점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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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에 대한 관점 차이

 

 

연암의 미학적 특질이 유머와 패러독스라면, 다산은 숭고와 비장미를 특장으로 한다. 앞에서 음미한 양반전(兩班傳)애절양(哀絶陽)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머와 패러독스가 공통관념을 전복하면서 계속 미끄러져 가는 유목적 여정이라면, 숭고와 비장미에는 강력한 대항의미를 통해 자기 시대와 대결하고자 하는 계몽의 파토스(pathos)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미학적 차이 뒤에는 몇 가지 인식론적 접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말과 사물의 관계. 조선 후기 비평담론에 있어 언어와 세계의 불일치는 핵심적인 논제였다. 언어를 탈영토화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크게 보면, 언어를 탈영토화하는 방향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낡은 상투성의 체계로부터 탈주하여 예측불가능한 표상들을 증식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통사법을 뒤덮고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최대한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암이 전자의 방향을 취한다면, 다산은 후자의 방향을 취한다.

 

 

저 허공 속에 날고 울고 하는 것이 얼마나 생기가 발랄합니까. 그런데 싱겁게도 새 ()’라는 한 글자로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채색도 묻혀버리고 모양과 소리도 빠뜨려 버리는 것이니, 모임에 나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끝에 새겨진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습니까. 더러는 늘 하던 소리만 하는 것이 싫어서 좀 가볍고 맑은 글자로 바꿔볼까 하여 새 ()’자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글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병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로 그늘진 뜰에 철 따라 우는 새가 지저 귀고 있기에,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마구 외치기를,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날아갔다 날아오는글자요,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글월이다. 다섯 가지 채색을 문장이라 이를진대 문장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오늘 나는 참으로 글을 읽었다하였습니다. 경지에게 답함2[答京之之二]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마을의 어린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다가 아이가 읽기 싫어하는 것을 나무랐더니, 하는 말이,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 ()’자는 전혀 파랗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하였소. 이 아이의 총명함은 창힐이라도 기가 죽게 하는 것이 아니겠소. 창애에게 답함3[答蒼厓之三]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兒聰明, 餒煞蒼頡.

 

 

연암의 이 척독(尺牘, 짧은 편지)들은 언어에 관한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이다. 새 조()자에는 날아가고 날아오는’, ‘서로 울고 화답하는새의 생기발랄한 호흡이 담겨 있지 않다. 또 하늘은 새파랗기 그지없지만, 하늘 천 자는 전혀 푸르지 않다. 요컨대 부단히 생생하는 천지빛이 날로 새로운 일월을 문자는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동하는 변화를 담아내려면 의미의 고정점을 벗어나 증식, 접속, 변이를 거듭해야 한다. ‘사마천(司馬遷)과 나비의 비유가 말해주듯, 진정한 의미란 대상의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잡았는가 싶으면 날아가버리는 그 순간에 돌연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중심적 기표로 환원되지 않는 수많은 의미들의 산포, 혹은 다층적 표상이다.

 

그에 비해 다산은 의미의 명징성을 추구한다. 그는 (), (), (), () 넉 자도 모두 원초의 뜻이 있으니 먼저 그 원초의 뜻을 알고 나서야 여러 경전에서 한 말의 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어 및 개념들은 본래의 투명한 원의미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그것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일일 뿐이다. 그래야만 사물을 분별하고 이치를 뚜렷이 알게 된다. 다산은 이렇게 성리학적 추상성에 의해 감염된 언어들을 최대한 투명하게 다듬어 본래의 생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어원학적 태도를 견지한다. 소품문이나 소설이 허황한 말들로 언어를 오염시키는 점을 신랄하게 비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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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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