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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영규대사: 최초의 육지에서의 승전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영규대사: 최초의 육지에서의 승전

건방진방랑자 2021. 7. 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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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 최초의 육지에서의 승전

 

 

최초의 승군은 무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충남 공주사람 영규(靈圭) 대사였습니다.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했고, 휴정(休靜, 서산대사) 문하에서 법을 깨우친 큰 인물이었습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3일을 통곡하고 승병을 조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승병장이 됩니다. 승군 800여 명을 이끌고 청주로 진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는(1592. 8.1) 최초의 육지에서의 승전을 기록합니다.

 

조선에서 가장 강한 장군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 신립(申砬) 대장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끝까지 사력을 다해 분투하다가 자살하고만(1592. 4.28)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는 민중들에게, 영규대사의 청주탈환이야기는 환호작약할 수밖에 없는 희소식이었습니다.

 

이 청주대첩을 보고하는 실록의 기사를 보면, 승군의 디시플린(discipline, 기강)이 당대의 군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지를 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규가 호령하는 것을 보면 광풍이 이는 듯하며 그의 수하에 감히 어기는 자가 없고, 질타ㆍ격려하는 소리에 1천여 명의 중들이 돌진, 여타 군대 또한 이들을 믿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호령이 엄하였고 곧바로 전진할 뿐 퇴각함이 없이 한마음으로 싸웠다. 청주의 왜적은 승병이 아니었으면 물리칠 수 없었다운운.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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