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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비겁한 유생들의 작태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비겁한 유생들의 작태

건방진방랑자 2021. 7. 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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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유생들의 작태

 

 

이토록 찬란한 전과를 기록한 승군과 영규대사의 활약상을 보고하면서도 유생들은 이들에게 상이나 주고 빨리 환속(還俗)시키라고 권고합니다. 다시 말해서 승군의 조직력이 두려운 것이죠. 그러한 조직을 격려하고 합심하여 국난을 국복해야 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에 승군이 어떤 정치세력을 형성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죠.

 

청주성의 회복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전체 전세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결정적 호운의 기세였습니다. 왜군들은 청주에서 서남으로 곧바로 내려가 호남곡창지대를 장악할 계획이었습니다. 만약 승군이 청주를 탈환하여 그 계획을 무산시키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순신(李舜臣)의 해군도 호남의 지지기반을 상실함으로써 무기력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후 의병장 조헌(趙憲, 1544~1592)과 합세하여 충청도 지역방위의 핵심적 길목인 금산을 탈환하는 전투에서도, 조헌이 영규 스님의 말을 잘 들었더라면 그토록 참혹한 손실을 초래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조헌은 율곡의 제자로서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만 전체적 형세파악보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맹목적 돌진형의 전투를 했습니다.

 

영규 스님은 그러한 무리한 공격보다는 현명한 전략에 따라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순차적인 공격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조차 리더십은 스님에게 있지 않고 유생들에게 있었습니다. 조헌이 무리한 돌진을 감행하자 영규 스님은 그것이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돌진하여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면서 장렬하게 산화하고 맙니다(1592. 8.18).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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