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법정(法頂)
『금강경(金剛經)』은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초기에 결집(結集)된 경전이라, 그만큼 그 형식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다른 대승경전에서처럼 도식화된 현학적인 서술이 거의 없다. 공(空)의 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공(空)이란 용어마저 쓰지 않는다.
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이 『금강경』은 패기에 가득 찬 가장 젊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전 여기저기에 읽는 사람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참신한 사상의 맥박이 약동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뗏목의 비유(捨筏登岸)를 들면서 부처의 가르침에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부처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온갖 명칭과 겉모양에 팔리지 않는 사람만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설파한다. 자신의 선한 행위에 안으로나 밖으로나 털끝만치라도 집착하지 않아야 진정한 보살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한다.
이와 같이 거리낌이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많은 수행자들이 이 『금강경(金剛經)』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일찍부터 이 경전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삼았다.
길은 누구나 가라고 열려 있고, 가르침은 듣고서 함께 나누어 가지라고 말해진 것이다. 도올 김용옥 거사(居士)는 이 『금강경(金剛經)』을 대하자 책의 향기에 흠뻑 취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이 경에서 인류 최고의 지혜를 발견한 느낌이라고 털어 놓았다.
『금강경』에서 받은 감동이 너무도 커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구도자적인 심정에서, 미친 듯이 매달려 단시일 안에 이 원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평생의 종교적 체험을 이 강해(講解)에 모두 쏟아 부어 한 자리에 회통(會通)시키려고 시도한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들은 그의 투철한 탐구정신과 해박하고 걸찍한 언어의 구사력에 놀라면서, 끝까지 읽으려면 적잖은 인내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불자들에게는 『금강경』이란 경전이 널리 알려져 독송되어 왔지만, 일반인들은 그 이름은 들었어도 실제로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이 『금강경 강해(金剛經 講解)』가 불자들에게는 새 그릇에 담긴 새 법문(法門)이 될 것이고, 가치의식이 전도된 이 땅의 혼미한 지식사회에는 새로운 사상의 지평을 제시하는 담론(談論)이 되리라 믿는다.
끝으로, 저자의 이름 아래 생소한 거사(居士)의 호칭을 붙인 것은, 그 어떤 기존의 틀에도 안주하려고 하지 않는 그이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그의 뜻과 삶의 자세가 재가불자(在家佛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올 거사(居士)의 구도자적인 그 기상과 작업을 함께 기뻐하면서 책 머리에 사족을 붙인다.
이 책을 대하는 사람마다 금강(金剛)의 큰 지혜로써 이 어렵고 험난한 풍진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아가기를.
금강 반야 바라밀!
99년 가을
경후설(經後說)
나는 어려서부터 궁금한 게 많았다. 모르는 게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도 쉬운 이야기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누가 농담을 던져도 같이 따라 웃지를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아둔하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동감이었다. 어머님 말씀이 서너 살 때부터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풀한 포기가 궁금하면 거기에 덥쑥 주저앉아 떠날 줄을 몰랐다 했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증들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선생도, 책도, 나뭇잎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성장하였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불교강의를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도무지 불교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중이 되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너무도 머리가 나뻤기 때문에 직접 중이 되어 불교의 세계를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의 고향 산골 어느 폐찰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승복을 입었다. 그리고 열심히 도를 닦았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나는 승복을 입은 채 상경(上京)을 시도했다. 갑자기 서울에 계신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완벽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여장(旅裝)을 차렸다. 스무 살 남짓했던 나의 푸른 청춘이 그 잿빛 승복조차 푸르게 만들어 버리고 말 그런 활기찬 모습이었다. 나는 대로를 행진했다.
나는 이때 너무도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너무도 많은 아줌마, 할머니들이 그 어린 소년인 나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절을 해야 할 그 사람들이 나에게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승복을 한번 입고 크게 깨달았다. 그 얼마나 우리 민중 속에 불법에 대한 신앙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나는 그것을 처음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엄격한 청교도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나, 그리고 당시 신학대학을 갓 나왔던 나에게는 더 이상의 충격이 없었다.
드디어 서울에 왔다. 신촌 엄마 집 문에 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가 이 내 꼴을 보고 얼마나 놀라실까? 우리 엄마는 평생을 무섭도록 정통적인 기독교신앙에 헌신해 사신 분인데 이런 마귀 모습을 하고 나타나다니! 대문을 짤칵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계단 위에 엄마가 서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나의 엄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엄마는 여느 때와 아무 다름도 없이 날 빙그레 미소로 반겨주셨다. 참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 순간에 대하여 오늘날까지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 순간의 엄마의 미소! 그것은 가섭의 미소보다 더 소중한 나의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때 엄마의 그 미소가 없었더라면, 오늘 이 『금강경』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는 체험이 없이는 무의미하다. 여기 이 『금강경』 강해는 나의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삶의 깨달음의 역사요, 나의 무지의 체험의 역사요, 나의 삶의 환희의 기록이다. 기독교와 불교에 깊은 신앙체험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 『금강경』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본질을 ‘십자가’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기독교가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 부활과 성령의 은혜를 말하며, 회개와 사랑을 말하지 않고 천국의 도래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인으로 컸다. 나는 『성경』을 다 외웠고, 나는 엄마를 따라 고사리손을 호호 불면서 매일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뭔지도 모르면서 애통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성스러운 방언도 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사도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갔다. 나는 신학대학에 다니면서 이미 여기저기서 명설교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나는 나의 언설의 카리스마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언어는 뭇 대중들에게 성령을 베푸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신학대학을 나와서 목사가 되었더라면 최소한 빌리 그래함보다는 더 위대한 전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쯤 아마도 엄청난 성전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너무도 잘 알기에, 분명 신의 뜻이 다른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신학대학을 나왔다. 너무도 내 목소리가 신의 음성을 닮았기에 나는 나를 더 이상 기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학대학을 걸어나오면서 내가 흘렸던 눈물은 지금도 후회함이 없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고독하게 살았다.
나의 무지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아무리 묻고 찾아봐도 이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를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천지를 헤맸다. 그렇게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지나갔다.
그런데 요즈음 좀 이상한 일이 생겼다. 조금 무엇인가 아는 듯한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동안 머릿속에 궁금해서 집어 넣어 놓은 지식들이 서로 춤추면서 어떤 모습을 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고 내가 처음 집필한 붓이 아마도 이 『금강경 강해』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이 방대한 원고를 꼭 스무 날 만에 썼다. 초가을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지루하게 비가 쏟아지는 9월에 이 글을 썼다. 다른 원고에 대한 피치 못할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7월 한 달 강의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멀리 도망가 버릴 것을 두려워하여, 그리고 한번 붓을 놓아버리면 영원히 못쓸 것 같아 결사적으로 붓을 놀렸다. 반야 지혜의 여신이 내 붓을 움직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원고를 스무 날 만에 탈고하는 그런 무지한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관심은 우리 이 조선땅에서 계속 살아갈 젊은이들이다. 요즈음같이 젊은이들이 보수화되어가고, 역사의 대의나 진실에 무관심해져가는 사태를 나는 방관할 수 없다. 우리 조선의 역사는 젊음을 상실해서는 아니 된다.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금강경』의 벼락 같은 회초리를 맞고 정말 크나 큰 마음을 가지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바하!
감사의 말
먼저 서문을 써주신 법정 스님께 감사드린다. 맑고 깨끗한 스님의 음성에 감사드린다.
내가 이 『금강경』을 강해하는데 가장 크게 참고했던 책은 다음의 두 책이다.
1. 中村元ㆍ紀野一義 譯註. 『般若心經ㆍ金剛般若經』. 東京: 岩波書店, 1997.
2. Edward Conze. Buddhist Wisdom Books. New York: Harper Torchbooks, 1972.
이 두 책은 동양과 서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금강경』의 역서이자 연구서이다. 동경대학(東京大學) 학창시절에 나카무라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나카무라 선생님의 한문에 대한 정확한 해독은 나의 작업에 선구적 모범이 되었다. 오히려 콘체는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이 두 분께 감사한다.
이 외로도 참고한 일본 책이 다음 두 권 있다.
1. 橋本光寶ㆍ淸水亮昇譯編. 『蒙藏梵漢和合璧, 金剛般若波羅密經』. 東京: 蒙藏典籍刊行會, 1941.
2. 南條文雄. 『梵文金剛講義』. 東京: 光融館藏版, 1909.
그러나 실제로 별로 활용한 바가 없다.
그리고 내가 참고한 한국책은 다음의 4종이 있다.
1. 석진오. 『金剛經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서울: 현대문예사, 1986.
2. 석진오. 『금강경연구』. 서울: 출판시대, 1999.
3. 이기영 번역ㆍ해설. 『반야심경ㆍ금강경』.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78.
4. 무비스님. 『금강경 강의』. 서울: 불광출판부, 1995.
내가 본문에서 이 책들의 약간의 문제점을 언급한 바 있지만 네 책 다 아주 좋은 책들이다. 내가 『금강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세 분께 크게 감사한다. 한국불교계에 많은 훌륭한 선구적 작업을 남기신 고 이기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대승반야사상을 이해하는데 카지야마 선생의 날카로운 논변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참고한 책은 다음의 3권이다.
1. 梶山雄一. 『空の思想』 京都: 人文書院, 1983.
2. 梶山雄一. 上山春平, 『佛敎の思想』. 東京: 中央公論社, 1980.
3. 梶山雄一. 『般若經』. 東京: 中央公論社, 1987.
나의 아둔한 머리를 일깨워 주신 카지야마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불교의 많은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런데 좋은 사전들은 대체로 일본문명에서 나왔다.
1. 『望月佛敎大辭典』. 東京: 世界聖典刊行協會, 1974.
2. 中村元. 『佛敎語大辭典』. 東京: 東京書籍, 1981.
3. 水野弘元等. 『佛典解題辭典』. 東京: 春秋社, 1983.
4. 中村元ㆍ福永光司等, 『岩波佛敎辭典』. 東京: 岩波書店, 1989.
이 사전 중에서 첫 번째 10권으로 된 모찌즈키(望月) 사전은 그 출전을 찾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상세함에 있어서는 어떠한 사전도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네 번째의 『이와나미불교사전(岩波佛敎辭典)』은 참으로 걸출한 명저이다. 불교개념을 고도의 학문적 성과의 바탕 위에서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해설하여 놓았다. 이 책에 있는 많은 개념해설이 이 이와나미(岩波)의 사전에서 따온 것이다. 내가 동경대학(東京大學) 학창시절 때 배운 이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후쿠나가 선생님은 나에게 격의불교의 역사를 소상히 가르쳐 주셨다. 수강생 스무 명 중에서 학점을 딴 사람이 나 한 명이었던 옛 기억이 새롭다. 이 사전은 정말 너무도 많은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국불교계의 업적으로서 사계에 내놓을 만큼 훌륭한 사전은: 운허(耘虛) 용하(龍夏). 『불교사전(佛敎辭典)』. 서울: 동국역경원, 1998. 이다. 선각자이신 운허 큰스님께 감사드린다.
사전은 그 시대의 문화의 수준이다. 한 문화의 학계의 성과는 모두 이 사전에 반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서가 빈곤하다. 특히 불교계는 사서가 빈곤하다. 이런 맥락에서 가산 지관(智冠) 스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계신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은 참으로 우리민족문화의 가능성을 집결하는 위대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케일은 기존의 어떠한 불교사전의 범위도 미칠 수가 없다. 불교계가 합심해서 이 사전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이 되도록 그 완성(完成)을 도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스크리트어 사전으로는 다음 3종을 사용하였다.
1. Sir M. Monier Williams. Sanskrit English Dictionary. Oxford: Clarendon Press, 1988.
2. Prin. Vaman Shivaram Apte. The Practical Sanskrit-English Dictionary. Kyoto: Rinsen Book Co., 1992.
3. 荻原雲來 編纂. 『漢譯對照 梵和大辭典』. 東京: 講談社, 1986.
자세하기로는 『윌리암스』를 따라갈 수 없고, 『앞떼』는 실제적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오기와라』는 산스크리트와 한역이 병치되어 참으로 편리하기가 이를 데 없다.
몇 년 전부터 범어를 배울 것을 종용해주시고 친절하게 교본까지 보내주신 원의범 선생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범어를 가르쳐 주신 서종순 선생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범어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의 문의에 친절하게 대답해주신 이지수 교수님, 김성철 선생님, 이종철 교수님께 감사한다.
1999년 9월 21일
무정재에서 탈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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