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서산대사
물론 이순신(李舜臣)의 활약상은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눈부신 기적적 대첩으로 기록될 만한 위대한 것입니다. 비슷한 시대의 엘리자베스여왕 때 영국의 제독들이 스페인의 막강한 무적함대를 무너뜨린 것보다도 더 극적이고 통쾌한 전승이었습니다(‘무적함대Grande y Felicisima Armada’라 해봤자 130개의 배로 구성된 것이었고, 스페인측의 총 전사자는 2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순신(李舜臣) 의 활약상은 어디까지나 바다 위에서 펼쳐진 것이죠. 물론 이순신의 제해권(制海權)은 육지로 올라간 왜군들의 보급을 차단시키는 효과가 컸기 때문에 해전의 승리는 육지의 싸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실 이순신 장군과 똑같은 무게를 지니는 명장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서산대사라는 분이지요.
이순신의 승전기록은 이순신 본인의 일기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많은 기록에 의하여 보존되어 있지만, 서산대사와 승군(僧軍)의 활약상은 우리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를 않습니다. 육지에서 우리 군대가 왜군에게 형편없이 깨진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승군의 활약으로 왜군이 여지없이 제압된 이야기들은 충분히 밝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자들은 다 유생들이었습니다. 유생들은 실제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파의 파벌의식에만 얽매여 국가의 대의를 돌보지 않고 자파의 정치적 이익의 옹호에 골몰했습니다. 자파의 우월을 과시할 수 있는 의병조차 조직할 능력이 전무했습니다. 의병은 당파와 무관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기실 선조 시대의 조선왕국에는 정규적 ‘군대’라 할 만한 프로페셔널한 조직이 없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소위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라는 막연한 논리에 의해 군역이 충당되었습니다. 그러니 농사짓는 장정들을 속성으로 훈련시켜 군복을 입혀놓은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할 만한 대오를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프로페셔널한 전투 경험을 지닌, 센코쿠지다이(戰國時代)를 거친 일본의 사무라이 집단과는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단기간 내에 막강한 전투 조직을 쌩으로 창조해낸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명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외롭게 그의 지도력과 민중의 지원에 의하여 함대와 해군의 놀라운 위용을 갖추어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산한 분위기에도 예외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를 통하여 내내 핍박과 멸시를 받아오던 스님들의 조직이 엄존하고 있었던 것이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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