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와 서산대사의 인연
영규 스님이 거느린 승병 800여 명이 금산전투에서 거의 전원 용감하게 전사함으로써 끝내 금산을 탈환하고야 만 처절한 상황을 보고받은 선조는 승군이야말로 국가수호의 효율적인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선조(宣祖)는 평양성까지 내버리고 북쪽 국경지대인 의주로 도망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전국 스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던 묘향산의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묘향산의 별명이 서산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에 서산대사라고 불렀다. 휴정이 그의 법명이다.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완산 최씨)를 의주로 부릅니다. 휴정은 이미 그때 나이가 73세였습니다.
선조와 서산대사는 그 전에 안면이 있었습니다. 서산대사는 3년 전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의금부에 갇혀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은 전주 사람인데, 선조 2년(1570) 식년 문과 을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이율곡, 성혼과 같은 당대의 석학들에게 각별한 후원과 촉망을 받은 매우 천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정여립은 서인들과 가깝게 지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서인들에게 등을 돌리고 동인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서인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그래서 낙향하여 살게 되는데 그 주변으로 많은 지사들이 운집(雲集)하게 됩니다. 하여튼 진안 죽도라는 곳에서 서실을 짓고 강론을 하면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무예를 연마하곤 했습니다. 정여립은 직설적이고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선조에게 깊은 미움을 산 것 같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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