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과 삼가귀감
서산은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서산이 원효나 보조 지눌에 비해 좀 지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즈음 생각이 바뀌었어요. 서산은 수행자로서도 탁월한 인물이지만 매우 심오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선(禪)ㆍ교(敎) 양면을 깊게 통달한 사람입니다. 그는 『선가귀감(禪家龜鑑)』ㆍ『유가귀감(儒家龜鑑)』ㆍ『도가귀감(道家龜鑑)」이라는 책을 썼는데,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이 책들을 원문으로 다 통독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그 당시는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어요. 우선 책의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고 느꼈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여러 번 읽으면서 서산은 진정으로 유ㆍ불ㆍ도 삼가(三家)를 회통(會通)한 대사상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결한 언어 속에는 무궁한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하여튼 조선 중기에 서산과 같은 큰 인물이 스님들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산은 태고보우(太古普愚)의 7대손이며, 또 서산 밑에서 사명유정(四溟惟政, 1544~1610),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4),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 정관일선(靜觀一禪, 1533~1608)의 4대 문파가 법통을 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모든 조선 스님들의 법맥은 서산을 떠나지 않습니다. 서산이야말로 일시적으로나마 승통을 부활시켰고, 살아 정2품의 직위를 받았으니 향후의 조선불교는 서산의 품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외관과는 달리 그 내면이 심오했다는 것이 조선불교의 축복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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