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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서산의 입적시 본문

고전/불경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2장 한국불교의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 - 서산의 입적시

건방진방랑자 2021. 7. 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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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입적시

 

 

서산은 하나의 승려로서, 하나의 사상가로서 매우 심오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입적할 때 쓴 시만 보아도 그 인격의 깊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입적할 때(선조 37[1604] 정월 23)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는 엄청나게 많은 제자들이 시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에게 후사를 부탁하는 글을 따로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설법을 했습니다. 그리고 설법을 마치자 자기의 영정(초상화)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걸개 뒷면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입적의 순간에도 이러한 적멸송(寂滅頌)을 쓸 수 있는 정신력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도 죽는 순간에 이런 시 한 수 쓰고 깨끗하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세상을 하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불가에서는 이런 시를 정확히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요. 애매하게 번역하거나 그럴듯하게 흐려 버리고 말거든요. 그 경지만 적당히 맛보라는 얘기겠지요. 하긴 한국불교의 대맥을 운운한다면 원효 지눌 서산의 세 봉우리를 논할 수밖에 없는데, 최후의 찬란한 노을의 광채가 담긴, 이 서산의 생애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시를 해석한다는 것이 여간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문의(文義)는 매우 간단합니다.

 

여기 팔십 년이라는 것은 물론 서산 본인의 인생살이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그가 죽었을 때 85세였으니까요. 그가 오도송을 쓴 것은 18세 때였구요. 여기 ()’라는 말은 한문에 있어서 당ㆍ송대의 구어체에서 쓰던 말로서 현대 백화의 (), ()에 해당되는 의미입니다. ‘그것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하면 거시기정도라는 뜻이 가장 근접하게 그 복합적 의미를 잘 나타낼 것입니다. 그럼 한번 번역을 시도해볼까요?

 

 

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거시기가 난 줄 알았는데,
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을 지나고 보니 내가 거시기로구나!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명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화상(畫像)을 놓고 하는 말이니 거시기는 객체화된 자기(Ego)’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모습이 나의 밖에 객체(客體)로서 걸려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인식이 자기 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어 철들고 보니 여기 살아있는 나가 곧 거시기, 즉 거시기는 주체적인 나의 투영일 뿐, 영원히 살아있는 실상은 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이 거시기를 부처님으로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죠! 어렸을 때 불문에 들어와 구도자로서 행각을 시작할 때에는 부처님은 항상 저기 연화좌 위에 앉아있는 거시기(그 무엇)였습니다. 나 밖에 있는 초상화 같은 것이었죠. 이제 열반에 들려고 하는 마지막 순간에 생각해보니, 이 죽어가는 내가 곧 부처요, 80년을 살아온 이 나가 곧 싯달타였다[八十年後我是渠]라는 것이죠.

 

 

 

 

인용

목차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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