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운동(1954~62)의 한계
사실, 해방 후에 이승만정권이 종교를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저질스러운 짓들을 많이 하면서 오히려 기독교, 불교가 다 같이 망가져갔습니다. 청담이나 성철 스님으로 대변되는 불교정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그 내면에 ‘봉암사결사’와 같은 훌륭한 정신도 있었지만 결국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불교계의 자생적 자정 노력이 펼쳐지지 못한 채, 공권력의 폭력에 의존케 됨으로써 결국 파행적인 해결책만 도모되었고, 불교정신 자체의 타락만 초래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총무원장이라는 권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저열한 스님들의 행태에까지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 내가 ‘진짜 중’이라는 말 한마디의 의미를 풀려고 했다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데 이제 그 의미를 말해보도록 하죠. 내가 말하는 ‘진짜’는 ‘가짜’와 대비되는 상대어가 아니라, ‘분위기’를 지칭하는 비근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명진이라는 인간에게는 그를 중다운 중으로 만들어주는 분위기의 특수한 훈도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분위기의 혜택을 받은 자가 한두 명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중’은 명진 말고도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근세를 통하여 익숙한 이름들, 만해, 춘성, 효봉, 경봉, 운허, 월운, 청담, 성철, 탄허, 전강, 송담, 숭산 행원, 가산 지관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이런 분들은 학식이나 경지의 고하를 막론하고, 서산에서 경허로 이어지는 조선불교의 대맥을 ‘분위기’로서 체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요즈음 대학 나와서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사람들과는 체험의 층차, 그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1960년 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찰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철도청 촉탁의사를 했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전 가족이 대절 전용기차를 타고 한국의 유명 사찰을 유람하는 매우 특별한 기회를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1950년대에 화엄사, 불국사, 통도사 등의 대찰을 순례하는 기이한 체험을 했습니다. 1960년대에 동진출가(童眞出家)를 하여 유수한 대찰 강원의 엄숙한 과정 4년(사미과沙彌科, 사집과四集科, 사교과四敎科, 대교과大敎科)이라도 제대로 마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조선불교의 정통적 분위기를 맛본, 그 혜맥의 끝자락 세대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누구든지 남아라고 한다면 한번 출가의 꿈을 꾸는 그런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 나도 그런 로맨스에 젖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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