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7. 문명창조자만이
非天子, 不議禮, 不制度, 不考文. 천자(天子)가 아니면, 에(禮)를 의(議)하지 못하고, 도(度)를 제(制)하지 못하고, 문(文)을 고(考)하지 못한다. 此以下, 子思之言. 禮, 親疎貴賤相接之禮也. 度, 品制. 文, 書名. 여기 이하는 자사의 말이다. 예(禮)는 친하고 소원함에, 귀하고 천함에 서로 대하는 예다. 도(度)는 품제다. 문(文)은 서명이다. |
부정사 非와 不
이 문장에는 의례(議禮)ㆍ제도(制度)ㆍ고문(考文)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오늘날 이 말들은 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문(古文)을 볼 때는 오늘날의 그런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장을 잘 보면 ‘비(非)A 불(不)B’라는 구조가 보이는데, ‘이것은 A가 아니면 B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관용구예요. 일반적으로 비(非) 다음에는 명사나 형용사적인 것이 오고 불(不) 다음에는 동사적인 것이 옵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의 不 다음에도 동사적인 것이 올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본다면 의(議)·제(制)·고(考)가 동사이고, 예(禮)·도(度)·문(文)이 각각의 동사에 대한 목적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천자(天子)가 아니면 예(禮)를 의(議)할 수 없으며 천자(天子)가 아니면 도(度)를 제(制)할 수 없으며 천자(天子)가 아니면 문(文)을 고(考)할 수 없다’로 직역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교(儒敎)적 맥락에서 앞의 동사들(議·制·考)을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작(作)’ 즉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 작(作)이라는 것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작(作)인데, 그 작(作)의 대상이라는 것을 중용(中庸)에서는 예(禮)·도(度)·문(文) 세 가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작(作)’의 대상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그 다음에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해보도록 합시다.
쉽게 표현한다면 예(禮)는 일종의 의식(ritual)으로서 영어로는 커스텀(Custom, 관습)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문명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주자의 주를 보면, 주자는 이 ‘예(禮)’를 ‘친소귀천상접지례(親疏貴賤相接之體)’, 즉 친소(親疏)와 귀천(貴賤)이 상호 접하는 예(體)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친소(親疏)라는 것은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을 의미하는 것이고 귀천(貴賤)이라는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고 체(體)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체통입니다. 즉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이, 그리고 위(位)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서로 대하는 체통이 바로 ‘예(禮)’라는 것이죠.
그리고 도(度)라는 것은 마디마디의 절도가 있고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다는 말로서, 영어로 말하면 일종의 오더(Order)인데, 주자는 이것을 품제(品制)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제도라는 말을 쓰지만 이 도(度)라는 것, 즉 이 제도(制度)라는 것은 일종의 품도(品度)입니다.
마지막으로 문(文)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일종의 서류(documantation)예요. 주자(朱子)는 문(文)을 서명(書名)이라고 하고 있는데, 결국 여기서 문(文)이라는 것은 모든 문명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문자로서 관공서의 서류에서부터 예술적인 문장까지 다 포함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문자의 세계, 즉 영어로 말하면 ‘리터레쳐(literature)’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禮)·도(度)·문(文)을 바로 문명의 3대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결국 이 말은 이 문명의 3대 요소를 제작하는 데는 천자(天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몇 번 인용을 했듯이, 『예기(禮記)』 「악기(樂記)」에는 ‘작(作)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作者謂聖].’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문장에서의 천자(天子)는 바로 「악기(樂記)」에서 말하는 ‘성인(聖人)’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을 했듯이, 이 성인(聖人)이니 천자(天子)니 작자(作者)니 등의 말들은 문명의 패러다임을 최초로 시작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서 어떤 의미에서 ‘컬츄럴 히어로(Cultural Hero)’를 뜻해요. 여기에서는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이야기를 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천자(天子)가 아니면 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작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 말은 결국 그만큼 문명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특수한 전기(轉機)에 특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아무나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해설은 그 다음에 계속되는데 29장에서 가면 더욱 확연해집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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