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세 한탄 같은 진심
단재학교를 그만 두고 나와 다시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이 길로 들어섰을 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4년 정도를 생각했다. 예전에 5수까지 도전했다 그만 둔 이력이 있고 7년 간이나 놓아뒀던 한문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만큼 쉽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4년 정도는 해봐야 어떤 결과든 나올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 하나의 지침이라도 되었는지 정말 어느덧 4년 차 임용 준비생으로 살게 되었고 어느덧 그 기간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또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도전은 할 테지만,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렇게 늘 생각과 어긋나 힘겹기만 한 현실이 한껏 주눅 들게 한다.
▲ 전주에 내려와 3년 동안 신나게 공부했던 진리관.
볼멘소리와 진심
간혹 이렇게 자꾸 엇나가는 현실이 못마땅해서 볼멘소리를 해대곤 했다. 한문공부가 좋아 맘껏 한문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리고 맘껏 한문공부를 해왔는데 어째서 결과는 나오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제 어느 정도 문장을 보는 실력도 생겼고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도 알게 됐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부족하기에 자꾸 떨어지느냐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볼맨소리야 말로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실제적인 결과로 만들지 못하면 아니 한만도 못한 신세 한탄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그럼에도 진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젠 정답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에 하게 되는 임용시험 공부가 아닌 하나하나 알아가고 정리해나가고 싶은 한문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그래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단재학교에서 대표교사로 인연을 맺은 진규썜을 제주도로 찾아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문에 대한 진심이 어느덧 계속된 실패로 인해 더욱 고조되었고 언젠가부턴 생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탓인지 올해는 임용시험 공부는 철저히 미루어뒀고 그간 정리하고 싶은 책들을 찾아 다양하게 읽고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 기간만큼은 아침에 일어날 때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한다는 사실에 들떴고 행복했었다. 조금씩 알아가고 조금씩 정리해나가는 기쁨에 정말로 ‘손은 절로 휘저어지고 발은 절로 박자를 타는[手之舞之足之蹈之]’ 즐거움을 맛보았으니 말이다. 한문공부를 재밌게 하고 싶다는 진심은 이처럼 좌절될수록, 한계에 부딪힐수록 더욱 굳건해져 갔다.
▲ 제주에 왔으니 진규샘이 사준 회.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댄다.
도망가고 싶다
올 한 해만큼은 좌충우돌하며 하고 싶던 공부도 실컷 하면서 한문 공부에 대한 실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2018년부터 충실히 쌓아온 한문 공부의 자료들이 4년이란 시간을 거치면서 거대한 주축돌이 되었다. 주축돌이 튼튼하게 서 있을 때 지진에도 버틸 수 있는 건물이 세워지듯, 다양하게 쌓아온 한문공부 자료들이 내 한문실력의 주축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용고시일이 다가올수록 두렵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상하다. 2018년에 임용고시를 봤을 때는 오랜만에 보는 첫 시험이라 그런지, 9개월 정도만 공부했기 때문에 떨어져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도대체 지금의 임용시험은 어떻게 나오는 거야?’라는 기대감에 한 장 한 장 시험지를 넘기는 게 기쁘기만 했었고 2019년에 임용고시를 봤을 때는 ‘지금쯤이면 포텐이 터지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가득했었던 데에 반해 올해는 유독 시험일이 다가오는 게 공포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막상 시험지를 받았는데(이상하게도 객관식으로 출제되어 있었다) 다 풀었다는 생각으로 넋 놓고 있다가 5분 남겨두고 나서야 확인해보니 10문제 정도를 마킹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부랴부랴 다시 보다가 마킹을 미처 하지 못하고 제출하면서 ‘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떨어졌고 1년 농사 망쳤구나’라는 절망감을 느낀 꿈’까지도 꿀 정도였다. 이런 경험은 실제로 2009년에 본 임용시험에서 느꼈던 것인데, 얼마나 불안했으면 꿈을 통해 다시 한 번 재연되었을까?
그럼에도 내뺄 수 없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기에, 그리고 다시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이 길로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예상된 일이기에 뚜벅뚜벅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4년 동안 축적해온 것들이 있을 테고 그게 배신을 하진 않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보란 듯이 나갔다.
▲ 시험이 다가올 수록 도망가고 싶은 이 마음. 어쩌리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순간
이번엔 ‘대전’에 응시를 했다. 이렇게 보면 전북에서 3번, 경기도에서 2번, 충남에서 2번, 광주에서 1번 보았으니 대전에선 처음으로 임용시험을 보는 셈이다. 한 번도 대전에 쓸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상 원서를 쓰고 나선 그곳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늘 떨어진 역사만 있는 사람이 합격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어쩔 텐가 시험을 보기 전에 무슨 상상을 하든 자유인 것을.
올해는 특별히 시험 보러 떠난다는 생각보단 여행하듯 가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야만 시험에 대한 불안과 부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가 아닌 기차표를 예매한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전주의 서쪽 끝이니만큼 동쪽 끝에 있는 전주역까진 무척이나 멀기에 여행 가듯 일찍 출발하자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깨끗이 정리하고 ‘마치 못 올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집을 나섰다. 전주역으로 향하는 그 버스에서 보이던 늦가을의 정취가 알알이 가슴에 박혔다.
▲ 늦가을. 예년엔 임용을 볼 때 한파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올핸 포근하기만 하다.
잦은 실패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전주역의 첫 마중길을 걷고 있노라니, 몽글몽글 희망이 샘솟기도 했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그토록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순간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순간이야말로 다신 올 수 없는 삶에 있어서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지 않은가.
3시 14분에 출발한 무궁화 기차는 덜컹덜컹 거리는 기차길을 따라 천천히 달려 갔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대전까지는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지만 오히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와 어느새 드리운 석양을 보면서 마음을 다시 한 번 다독였다.
대전에 내려선 시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고 바로 숙소에 짐을 풀었다. 대전 시청 근처는 엄청난 번화가더라. 마치 전주 서부신시가지처럼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고 다양한 맛집들이 가득했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한참 돌아다녔는데 음식점은 많은 데도 대부분 술집이기에 혼밥을 하기에 적당한 곳은 눈에 띄지 않더라. 그래서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충남에 체인점을 둔, 그래서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육개장집에 들어가 한 끼를 맛있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참 돌아다니다가 겨우 먹게 된 육개장은 어느 음식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고 푸짐했다.
▲ 기차를 타고 가니 마치 여행 가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 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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