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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애노희락의 심리학 -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8장 정보의 왜곡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8장 정보의 왜곡

건방진방랑자 2021. 12. 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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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정보의 왜곡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이 왜곡되면 세상에 대한 인식 역시 왜곡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언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또한 정보의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정보 왜곡은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앞에서 천시(天時)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철새 정치인들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철새 행각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왜곡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차피 누구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적당히 왜곡하며 사는 것 아니냐는 뻔뻔스런 논리를 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왜곡에 대해서도 본인은 진짜로왜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꽤 많다.

 

체질별로 왜곡을 범하기 쉬운 지점이 다 다르다. 또 다른 사람의 왜곡에 대해서 왜곡임을 파악하는 지점도, 자신의 왜곡에 대해서 왜곡임을 못 알아차리고 넘어가는 부분도 각기 다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자신은 왜곡한 기억이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게 된다. 지적하는 사람은 넌 거짓말쟁이야라고 말하는데, 막상 당사자는 나는 거짓말한 적 없다. 인신공격하지 마라하고 나오게 되고, 결국은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기본은 이렇다. 누구나 자신이 약한 영역은 조심하고, 자신이 약한 영역에서 지적받으면 잘못한 부분이 있었는지를 짚어본다. 그러나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는 영역에서 잘못을 범하면 그것이 잘못인지를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결국 정보 왜곡은 주로 자신이 강한 영역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보는 수집되어, 정리되고, 교류되고, 평가된다. 정보 왜곡 문제도 이 과정에 따라 정리해보자.

 

 

 

 

1. 수집 단계에서 태음인이 범하는 오류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실들은 정보라고 부르지 않고 첩보라고 부른다. 첩보들이 모여서 하나의 방향을 나타낼 때 비로소 정보라고 부른다. 판단을 서두르는 사람은 적은 양의 첩보를 바로 정보로 가공하며, 바로 정보화되지 않는 첩보는 가치가 없다고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첩보를 충분한 양이 될 때까지 모으지 않는다. 내용이 복잡한 경우에는 첩보들을 무시하지 않고 일단 모아두는 버릇이 있어야 정보로의 가공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결국 선 접수 후 판단의 버릇이 있는 태음인들이 정보 생산에 강해진다.

 

정보 생산이라는 용어는 좀 전문적인 이야기이고, 그냥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으로는 이 단계까지를 정보 수집이라고 표현하니까, 거기에 맞추자. 결국 태음인들이 정보 수집에 강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대로, 태음인은 가장 강한 수집 단계에서 왜곡을 범하기 쉽다.

 

정보 취득은 선행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즉 먼저 취득한 정보가 나중에 취득할 정보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단 하나의 정보를 듣고 그럴듯하다고 느끼면, 그 정보와 연결되는 정보에 먼저 귀가 솔깃해지고 그 정보와 반대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한 상품이 어떤 한 이미지로 굳어지면 이미지를 바꾸기가 힘들어진다. 보통 처음 이미지를 형성할 때의 다섯 배에서 열 배 정도의 광고 노출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태음인은 그 부분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태음인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순간에 판단하지 않고 유보했기 때문에 그 정보가 아직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태음인은 처음 취득한 정보와 반대되는 정보를 구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어서, 늘 본인은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취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만큼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처음 접한 정보의 영향, 충격이 컸던 정보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바로바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선행 정보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되는 정보를 접했을 때도 판단을 내리려 한다. 또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면 그만큼 상대의 반론도 거세지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음인은 자신의 믿음과 반대되는 불편한 정보를 접하면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를 더 많이 구해서 중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애당초 중시하는 정보원을 편향되게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편향성을 지적당하면, 태음인은 그것이 편향이 아니라는 증거를 한 보따리쯤 풀어놓는다. 태음인에게는 편향된 방향에서만 구해도 한 보따리의 정보를 모아두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보편과 동떨어진 특수한 경우들이라서 문제다. 어디서 그런 것들만 그렇게 용케 모았는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뉴욕 쌍둥이 빌딩의 붕괴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근거를 70개쯤 댈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70개쯤의 근거를 들이밀면 일단 그 양에 질려서 그럴 듯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마련이다. 또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그 사람의 주장이 진짜로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사람의 정보 수집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인터넷에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예를 70개씩이나 모으지는 않는다. 한두 개의 정보를 가지고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애매하면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방식을 취한다.

 

결국 이 사람의 태도에는 정보의 양으로 각 정보의 낮은 신뢰도를 덮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태음적인 방식의 정보 왜곡이며, 수집 단계에서 나타나는 왜곡이다. 태음인에 관한 결론이다. 태음인이 정보 왜곡을 피하려면 정보의 양이 정보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정보의 양에 관한 지나친 믿음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비록 내가 아직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그동안에 입수한 정보는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특히 추가로 입수하는 정보의 방향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왜곡은 교심(驕心)이 강해질수록 더 심해진다. 교심(驕心)이 강해지면 정보원의 폭을 좁히는 일을 더 일찍, 더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2. 정리 단계에서 소음인이 범하는 오류

 

 

소음인은 정보 정리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태음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장 강한 영역에서 왜곡을 범할 가능성도 가장 커지는 것이다.

 

수집된 정보 중에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고, 드러난 사실의 전후관계 및 인과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정리하는 능력, 이것이 소음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소음인의 왜곡이 발생하기 쉬운 지점이다. 즉 객관적 처리가 정보 정리에 필요한 핵심이지만 바로 이 객관에 대한 맹신이 왜곡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소음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는데 한두 가지 정보만 연결이 잘 안 되면, 연결이 안 되는 정보를 배제하려 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소음인에게 유독 이런 경향이 강하기 쉽다. 소음인은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단일한 동기로써 행동하지 않는다. 명분을 좇는 마음과 실리를 좇는 마음이 늘 동시에 존재하게 마련이고, 이왕이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동안은 명분에 치우쳤다가, 다른 순간에는 실리에 치우치기도 한다. 더군다나 개인이 아닌 집단이 되면 이런 식의 복잡한 행동을 하는 개인들이 서로 얽혀서 행동의 결과가 드러나게 된다.

 

정보 정리라는 것은 원인, 과정, 결과가 일관성을 가지고 서로 들어 맞도록 정보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경우처럼 그 기본이 되는 원인이 애매할 때나 과정의 일관성이 없을 때는 정리가 훨씬 힘들어진다. 결국 소음인의 정보 정리 능력은 실험실 상황에서 강하고, 실제 현장 상황에서 약해진다. 자연과학적 사실에서 강하고, 생명체에 관한 것, 사회과학적인 것, 인문학적인 것으로 올수록 약해진다. 물론 그런 영역에서도 굳이 정리하려고 들면 역시 소음인이 가장 잘한다. 그러나 원인이 복합적일수록, 과정의 일관성이 없을수록, 소음적인 정리 능력이 효과를 발휘할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문제다. 소음인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꼭 고려해야 할 사실 한두 개쯤을 빼버리고 정리하는 짓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내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는 남편이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남편이 의처증이 있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렇다’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등등에서 시작해서 남편이 거꾸로 바람을 피우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감추려고 그런 것이다까지 아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분석할까? 어떤 때는 자신감 부족 때문에, 어떤 때는 아내에게 갖고 있던 다른 부분의 불만에 대한 간접적 표시로, 어떤 때는 애정(哀情)과 관심의 표시로그런 식으로 매번 다른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양인(陽人)은 일관성의 문제에 대해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태양인의 경우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오히려 옳다[]고 본다. 소양인의 경우 감성적인 흐름을 중시한다. 따라서 양인(陽人)들이라면 남편의 이런저런 행동에 관한 정보들을 모두 하나의 원인을 중심으로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음인(陰人)은 변화를 쫓아가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태음인은 복수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익숙하다. 위의 경우를 해석할 때도 자신감 부족, 불만, 애정(愛情)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오는 결과라고 해석한다. 세심한 태음인이라면 속으로는 대충 5:3:2 정도로 작용하나 보다라고 계산까지 해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음인은, 변화하는 기준으로 따지는 것도 약하고, 복수 기준으로 따지는 것도 약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접하면 하나의 가설을 먼저 세운다. 예를 들자면 남편의 그러한 행동은 모두 자신감 부족에서 나온 행동이다라고 가정하고, 각각의 정보를 이런 가설을 중심으로 재배치해본다. 그러고는 논리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맞으면 그걸로 끝이고, 틀리는 부분이 많으면 이번에는 불만의 표시라는 쪽으로 또 모든 정보를 해석해보는 것이다.

 

소음인은 매순간 순발력을 발휘해서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사에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복수의 기준을 적용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으로 적용하는 시스템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단일 기준으로 일단 따져보고 나서 논리적 모순이 없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고,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번에는 다른 기준으로 다시 따져보는 식의 방법을 택하기 좋아한다.

 

그런데 모든 가능성을 그렇게 일일이 다 따져볼 수는 없는 것이 문제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기준으로 대부분이 들어맞는데 한두 가지 안 맞는 정보가 있으면 그 정도에서 결론을 내고 싶어진다. 결국 안 맞는 것 한두 가지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확실한 사실을 아니라고 우길 수는 없으니까, 그것은 평가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든지 직접 관련되는 정도가 적은 내용이라고 우긴다.

 

종교를 맹신하는 사람이 자신의 종교 교리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때, 이런 오류를 자주 범한다. 하나의 교리를 중심으로 자신이 아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가 정리되면 소음인은 아주 개운하게 느낀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교리를 위협하는 정보는 어떻게든 배제하고 싶어진다. 그런 부분을 지적받으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신앙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으로 삼고자 일부러 모순되게 보이는 것을 남겨둔 것이다라는 식으로 우긴다.

 

소음인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런 모순 없이 다 설명된다고 꼭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반대의 해석도 역시 똑같이 아무런 논리적 모순 없이 설명되는 경우가 늘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동시에 논리적 모순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시야를 넓힌다는 뜻이다. 긍심(矜心)을 먼저 벗어나야 된다는 의미다.

 

 

 

 

 

3. 전달 단계에서 소양인이 범하는 오류

 

 

소양인은 정보 전달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 쉽다. 소양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도 잘하고, 남에게 전하는 것도 잘한다. 남에게 받아들이는 것을 잘한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고, 전달하는 것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한다는 의미다. 감성에 예민하다는 것이 이렇게 작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양인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정보에 대한 상대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전달할 때 그 정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느낌의 전달이라는 것이 부정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효율적인 전달 방법인 경우도 많다. 느낌이 실린 정보 전달은 그 정보에 대한 평가, 그 정보의 중요성, 정보 전체에서 중요시할 부분 등, 2차적 정보까지 한꺼번에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부정확해 보이는 소양인 식의 정보 전달을 사람들이 편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태도 때문에 소양인이 자신도 모르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양인이 누군가를 오래 기다렸을 때, 게다가 그 기다림이 굉장히 지겨웠을 때, 막상 상대를 보게 되면 대뜸 한 시간도 더 기다렸어요!”라고 내뱉는다. 시계를 보지도 않고서 한 시간도 더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만으로 그렇게 말한다. 실제로는 30분도 안 되었는데, 물론 악의적인 거짓말이 아니다. 자신은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또는 상대에게 강하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자신도 그게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들지만, 그냥 무시한다. ‘그래 내가 좀 강조했다. 너도 그러면 될 것 아니냐는 느낌의 냄새도 좀 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기 싫은(또는 말할 능력도 없는) 음인(陰人)들은 거기에 상처를 입곤 한다.

 

이런 경우는 사소한 경우다. 상대의 말버릇을 이해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니까.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바닥에 잘못된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경우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작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인제(李仁濟, 1948~) 후보의 보좌관이 경선장에 노무현(盧武鉉, 1946~2009) 후보 지지운동을 하러 온 노사모 회원들 수십 명이 고급호텔에서 숙박했는데,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라며 공격했다. 그런데 사실 노사모 회원들은 여관과 여인숙의 중간 수준쯤 되는 숙소에서 한 방에 7,8명씩 칼잠을 잤으며, 그 비용은 참가자들이 회비를 모아서 처리했음이 밝혀진다. 결과적으로 이인제 진영 전체가 사실을 왜곡해서 치사하게 음해나 하는 집단으로 비춰지게 되고, 이인제 의원의 도덕성에 상당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소양인이 치명적인 정보 왜곡을 범하는 경우는 일반적인 인식이 깨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작년의 후보 경선 과정까지는 자발적 지지자들이 자기 돈을 써가며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 아니었다.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은 정치가로부터 사례비를 받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그 정치가를 지지하는 정도가 강해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경우라도 선거운동에 드는 실경비는 정치가가 지불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인제 진영은 이를 기준으로 생각한 것이다.

 

노사모 회원들이 적게는 수십 명, 많을 때는 2,3백 명씩 경선장에 몰려다니는데, 자기 돈을 써가며 그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일반론을 절대적인 전제로 깔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히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의심스럽다. 결국 노무현 진영이 실제로는 우리보다 돈을 더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가 문제가 된다. 분노의 감정을 정보 전달에 싣지 않았다면, “수십 명의 노사모 회원들의 숙박비용은 어디에서 나왔는가?”까지만 언급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있을 수 있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실제로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임이 밝혀졌어도 이인제 진영의 도덕적 타격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만일 그 비용이 이인제 진영의 의심대로 노무현(盧武鉉, 1946~2009) 후보 진영에서 나온 돈이라면 호화 호텔이 아니라 싼 여관이었다는 점은 그대로 묻혀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인제 진영은 사실 확인 없이 자신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믿었다. 그리고 그 비용은 노무현 진영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이 경우 소양인은 흔히 사소한 과장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십 명이 호화 호텔에서 잤을 것이라는 건 그들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몇 명은 호화 호텔에서 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체가 호화 호텔에서 잤다고 밀어붙였다. 그런 정도의 과장은 노사모의 활동자금이 노무현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만 밝혀진다면 별것 아닌 과장이라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소양인은 상대 쪽에 오류가 있다고 믿고 공격할 때 정보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정보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기준으로 정보 내용을 부풀리는 것이다. 만일 진짜로 상대에게 오류가 있을 때는, 과장 자체는 별 무리 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상대가 옳고 이쪽이 착각했을 때나 과장 자체가 너무 심했을 경우에는, 과장 때문에 훨씬 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결국 도덕성에 아주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동안 소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단순한 다수 지지나 관행, 일반론을 보편이라고 믿으면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정보 전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장의 오류 역시 같은 이유다. 결국 과심(誇心)의 극복이 관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늘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부터가 내 감정인가를 구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4. 평가 단계에서 태양인이 범하는 오류

 

 

태양인의 강한 직관은 정보 평가에서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그 직관이 공정한 평가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태양인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를 빨리 읽어낸다. 그런데 그 의도가 틀렸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다르다고 생각할 때는, 그 정보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전달자의 의도에 대한 평가와 정보에 대한 평가를 뒤섞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과시를 목적으로 떠드는 사람에 대해서 태양인은 필요 이상으로 냉담하다. 그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든다.

 

사소한 부분에 걸려서 전체적인 평가를 그르치는 것은 어느 체질이나 범하는 오류다. 소음인의 경우 부분적으로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으면 전체적인 내용을 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엽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태음인은 구체성이 부족한 정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인 경우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지 스스로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용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를 무시한다. 소양인은 표현에 민감하다. 기분 나쁜 표현이 나오면 감정적 대응을 하며 발끈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정보 왜곡으로 가기는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사소한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주장하는 본인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지, 그 정보가 쓸데없는 정보라는 인식을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심어 넣지는 못한다. 그러나 태양인의 경우는 좀 달라진다. 태양인이 상대의 정보를 낮게 평가하고 이를 공격하고자 할 때는, 상대가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을 날카롭게 치고 들어간다. 대부분의 정보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수집, 정리, 전달의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나 왜곡이 포함되게 마련이다. 이 부분을 정확히 공격당했을 경우, 상대는 갑자기 버벅대거나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정보 평가 과정은 정보 생산에서 전달까지가 다 끝난 상황에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정보 왜곡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정보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정보 평가과정에서도 정보 왜곡을 빚을 수 있다. 정보 자체에 대한 평가와 정보 전달자의 의도에 대한 평가를 뒤섞어서 생기는 태양인의 잘못된 평가는 분명히 정보 왜곡으로 작용한다. 상대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속에 담겨 있는 정보는 유용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정보 전달자가 공격을 받으면서 그 부분이 같이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태양인의 벌심(伐心)이 심해지면 이런 왜곡은 점점 심해진다. 심지어는 확실한 사실에 대해서도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생긴다. 만일 상대가 질려서 꼬리를 내리면 왜곡이 발생된다. 그러나 상대가 강하게 반격해서 거꾸로 태양인 쪽이 당하는 경우도 있다. 노련한 태양인의 경우엔, ‘그 부분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그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깊게 알아보지 않았다라며 도망친다. 그러면서 사소한 부분을 물고 들어가지 말고 본질적인 부분을 토론하자. 굳이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내가 잘못 알았다고 인정하겠다는 식으로 반격한다.

 

그런데 상대를 폄하하는 마음이 강해서 함부로 배수진(背水陣)을 치거나 강한 용어를 사용하는 쪽으로 벌심(伐心)을 키우게 되면, 결국 둘 중 하나는 크게 상처를 입게 된다.

 

수양이 된 태양인, 벌심(伐心)이 어느 정도 제어되는 태양인의 경우에는 내가 인정하는 부분은 어디 어디이고, 인정 못하고 토론을 하고 싶은 부분은 어디 어디다를 미리 밝히고 토론을 시작한다. 즉 그 정보에서 유용한 부분은 정당한 평가를 하여 대중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놓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만 바로잡는 작업에 들어간다.

 

 

 

 

인용

목차

사상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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