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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노희락의 심리학 -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10장 보수성과 개혁성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 제2부 체질에 따른 약점과 그 극복, 제10장 보수성과 개혁성

건방진방랑자 2021. 12. 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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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보수성과 개혁성

 

 

보수성과 개혁성은 기본 성정(性情)사심(邪心), 태행(怠行), 박통(博通), 독행(獨行) 등이 모두 어울려서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태도다. 체질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한 번쯤 다뤄볼 만한 주제다. 개요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기본 성정(性情)은 개인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회적 성향의 보수성/개혁성은 굳이 체질에 따른 경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1.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성향의 차이

 

 

체질에 대해 설명한 시중의 책들을 보면, ‘태음인은 보수적이다’ ‘태양인은 급진적이다라는 식의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보수’ ‘진보라는 용어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용어들 중 하나라서 문제다.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엉뚱하게 차이 나는 그런 단어들을 체질과 잘못 연결하면 오해를 부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고 그런 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이미 세상에 퍼진 고정관념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으니, 차라리 자세히 설명해서 오해의 여지를 없애는 편이 나을 듯하다.

 

수구, 보수, 진보, 급진이라는 말의 근본을 따져보자. 세상을 살다보면 과거의 기준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들이 생긴다. 이걸 고치기는 고쳐야 하는데 세상일이라는 것이 서로 얽혀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 하나만을 딱 떼어내서 고치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하나를 고치려면 연관된 여러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잘 되고 있는 좋은 것들도 함께 쓸려서 없어지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사람마다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구란 옛것을 최대한 지키자는 쪽이다. 수구가 잘못된 것 하나도 없으니 그대로 가자는 경지에 이르면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보수는 고치더라도 좋은 것의 훼손이 없도록 천천히 잘 살피면서 고치자는 쪽이다. 그 속도가 너무 느리면 결국은 고칠 생각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진보는 지금 잘못된 것이 일으키는 문제가 심각하니 빨리 고치자는 쪽이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문화 파괴자란 소리를 듣게 된다.

급진은 가장 본질적인 뿌리에 해당되는 것을 한꺼번에 고치려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 노력이 부족할 때 이상주의자, 모험주의자로 취급될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성정(性情)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보수성/개혁성이다. 이른바 기본 성향으로서의 보수성/개혁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기본 성향은 주로 개인적인 삶에서 나타난다. 즉 개인적인 사는 습관, 가치관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것이 사회적인 여러 문제를 대하는 자세에서 나타날 때는 또 다른 부분의 영향을 받는다. 주변에 자주 어울리는 집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그 외에도 나이, 직업, 연령, 거주지 등등의 영향이 체질의 영향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 영역에서의 보수성/개혁성이 사회적 영역에서 바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어떠한 영역의 문제이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분배가 먼저냐, 생산이 먼저냐’ ‘국가가 우선이냐, 개인이 우선이냐’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투자해야 하느냐등등의 문제들은,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가고 있느냐, 지금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 달라지는 문제다. 예를 들어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자 쪽이 진보이고 사회주의자쪽이 보수일 수 있다. 성향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로는 그렇게 된다. 또 남녀 문제에는 진보적이지만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회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집안에서 일하는 것은 늘 하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이제까지 이야기해왔듯이, 사람은 기본 성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기본 성향만을 강하게 드러내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통(博通), 독행(獨行)으로 넓혀가는 사람도 있고, 사심(邪心), 태행(怠行)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 각각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이 다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무턱대고 태음인은 보수적이다라고 해버리면, 태음인은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자본가를 지지하고, 남녀평등에 소극적이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 ‘태양인은 급진적이다라고 해버리면 태양인은 매사에 머리에 띠 두르고 투쟁 일변도로 나서는 사람으로 오해될 수 있다. 좀 무책임한 언급이다.

 

체질별로 하나씩 시작해보자. 개인 생활에서 보수성/개혁성이 나타나는 모습을 언급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연결될 때는 체질에 따라 어떤 부분의 영향을 받는지 검토해보자. 깊이 있는 언급까지는 힘들겠지만, 오해를 상당히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2. 소음인의 수구 성향

 

 

소음인은 기본 성향에서 수구적이다. 바꿔 말하자면, 수구적인 태도를 견지해도 문제없다 싶을 정도로 확신이 들어야 그 부분을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한번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는 평생 변하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의 빈민 사랑도 마찬가지고, 이른바 수구적 태도와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아주 근접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음인이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확신이 그 사회를 기준으로 볼 때 아주 급진적인 생각인 경우도 있다. 그 경우에 소음인은 그 급진적인 사고를 변치 않고 지켜간다. 급진적 사상을 수구적 태도로 지켜낸다는 것이다. 종교적 맹신자의 경우, 급진인지 수구인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 바로 그런 경우다.

 

하지만 소음인의 그런 경향이 크게 문제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선 소음인의 수구성은 세상이 주장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다음부터 시작된다. 즉 세상이 지켜온 것에 대한 수구가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인 것에 대한 수구성일 뿐이다. 게다가 그 받아들이는 과정이 절대 간단하지 않다. 자신이 완전히 납득하고 수긍해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은 기존의 제도에 의해 혜택을 얻는 집단에 의해 주로 대두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제도교육이나 언론 등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런데 소음인은 아무리 언론이 주장을 펴고 학교에서 가르쳐도 자신이 납득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기득권자의 이득만을 비호한다는 뜻의 부정적 의미의 수구가 되는 경우는 오히려 많지 않다. 다만 자기의 과거 생각을 잘 안 바꾼다는 의미의 성향상 수구가 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그러나 소음인이 충분한 정보에 접하지 못하고, 충분한 사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소음인은 뚜렷한 기준 없이 사는 불안감을 가장 못 견디는 체질이라, 결국은 자기 주변의 주장 가운데 그나마 받아들이기 쉬운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즉 철저한 통제국가에서는 소음인이 사회적 의미의 수구가 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수구의 주장은 그 사회의 기득권자를 위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사회의 모순에 의해 심한 피해를 입는 계층이면서도 수구적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음인의 수구성이 문제가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수구성이 발동되는 영역이 좁다는 점이다. 즉 자기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부분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유연하고 관대한 경우가 많다. 천성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사는 소음인은 자신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늘 겸손하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매사에 중도적인 사람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가장 흔한 소음인의 모습이다.

 

소음인이 매사에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어지면 그때는 사회 문제에 전혀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른바 보수성/개혁성의 기준으로 가를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소음인일수록 사는 방식을 늘 일정하게 유지하며, 그 방식이 조금만 변해도 불안감을 느끼는 성향은 오히려 강해진다. 결국 사는 방식 면에서 보면 보수 혹은 수구적인 사람이고,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면 무당파, 무관심층으로 분류될 것이다.

 

소음인이 사회 문제에 있어 수구나 급진으로 분류되는 것은 대부분 긍심(矜心)이 강해진 경우다. 자신의 기준을 자신의 영역 밖에도 마구잡이로 적용하기 시작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장하는 방식으로 봐서는 소음인인 것 같은데 수구적 주장에서 급진적 주장까지 널뛰기를 하는 이상한 사람도 가끔 있다. 나름대로는 엉뚱한 기준을 들이대며 자신은 그 기준에 충실할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영 믿어지지 않는 경우다. 이것은 천심, 탈심(奪心)이 강해진 경우다.

 

경륜(經綸), 식견(識見)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 소음인이 절대적으로 지키려 하는 내용은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깊이까지 내려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강하게 고집하는 모습이 없어진다. 각 사안별로 적절한 입장을 내세운다. 주로 보수에서 진보까지의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하지만 때로 아주 불합리하고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가 있을 경우 급진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꼭 지켜야 할 문제인데 세상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수구로 오해받는 것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럼 탈심(奪心), 천심(擅心)의 경우와 어떻게 다르냐가 문제인데, 그래서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기준은 주장하는 논리의 일관성 여부이고, 그 기준이 자신의 이득 여부와 무관하게 지켜진다면 더욱 믿을 만한 것이 된다. 즉 소음인이 경륜(經綸), 식견(識見)의 경지에 가면 폭넓은 주장을 해도 그때그때 주장이 널뛴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주장하는 소음인은 일관성이 있는데, 사회의 평가 기준이 균형이 안 잡혀 있어서 남들에 의해 보수 쪽 혹은 진보 쪽의 입장으로 분류될 뿐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짚어보면 과연 일관성을 지켰구나라고 이해된다.

 

 

 

 

3. 태음인의 보수 성향

 

 

태음인의 기본 성향은 보수적이다. 감각을 중시하고 경험적 접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보수적이기 쉽다. 기존의 것이 익숙하고, 익숙한 것이 바뀌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또 약간의 불편은 고치려 하기보다 그냥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희성(喜性)이 발달되어서 웬만한 상황은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음인이라고 기존의 가치관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소음인이 자신의 논리로 받아들이기 힘든 제도 교육의 왜곡을 거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태음인은 배운 것보다 경험한 것을 중시하는 천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음인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가는 경향이 있다면, 태음인은 반쯤만 받아들이거나 삼분의 일쯤만 받아들이거나 하는 식이다. 책은 책이고, 세상은 세상이다[書自書 世自世].’ ‘학교는 학교고, 세상은 세상이다.’ ‘뉴스는 뉴스고, 세상은 세상이다.’ 태음인에게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는 늘 깔려 있다. 책이나 학교나 언론 등에서 주장하는 것 중에서 자신의 경험과 잘 맞는 부분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꼭 거부하지는 않는다. 판단을 미룬 상태로 놔둔다.

 

따라서 자신이 경험한 세상이 문제가 많다고 느꼈으면, 아무리 책이나 어른들이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해도 이를 믿지 않는다. 특히 교과서 안의 세상과 교과서 밖의 세상이 전혀 다를 때 그런 현상이 심해진다. 또 태음인은 학교나 제도권의 제약에 잘 만족하지 못한다. 폭에 대한 욕구가 강해서 그 범위 내에서의 경험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늘 자기 영역 이외의 주변 영역을 기웃거리며 경험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태도 때문에 사회적 모순을 일찍 느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태음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개혁적인 경우는 좀 드물다. 세상의 문제점을 느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 주변이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해결하려 한다. 그런데 양인(陽人)의 경우 한두 가지 시도에 실패하면 바로 구조적 문제라고 느끼고,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개혁적인 입장을 강하게 표출하게 된다. 반면 태음인은 여러 가지 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시도를 해보고 나서야 이건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이 안 되는구나를 인정한다.

 

그래서 태음인들의 개혁 성향은 오히려 나이가 좀 들어서, 세상의 흐름도 좀 보이고 세상과 맞설 지위도 어느 정도 확보했을 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태음인이라도, 젊었을 때 개혁적이고 나이 들면 보수적이 된다는 큰 흐름을 어느 정도는 따라간다. 하지만 다른 체질과 비교할 때는 차이가 난다. 나이가 들면서 거꾸로 개혁 성향을 띠게 되는 사람의 비율이 다른 체질보다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잠재해 있던 개혁 성향이 뒤늦게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음인(陰人)이라도 소음인은 학생 시절부터 강한 개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제법 된다. 소음인은 시도 자체를 여러 가지로 하기보다는 한두 가지를 아주 깊이 있게 해보고 나서 판단한다. 즉 자신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개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 사회적 모순에 눈을 띄워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바로 개혁 투사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태음인의 개혁 성향은 교심(驕心)이나 치심(侈心)이 약간 있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불평불만분자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이 약간이라도 인정받거나 약간의 지위가 생기면 바로 개혁 성향이 사라진다.

 

극단적인 수구나 급진의 모습을 띠는 경우는 교심(驕心)보다도 치심(侈心)이 강해졌을 때 많이 나타난다. 요즘도 관광버스 타고 일당 받으며 데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5분만 이야기해보면 치심(侈心)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수구 쪽만 아니라 진보 쪽 집회에도 치심(侈心)을 과시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술 얼큰해가지고 나타나서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 광화문 촛불시위장에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태음인이 주책(籌策)이나 위의(威義)의 경지에 도달하면 역시 경륜(經綸)식견(識見)의 경지에 도달한 소음인과 비슷해진다. 사안에 따라 적절하게 보수에서 진보까지 맞는 위치를 찾아낸다. 원래 사상의 기운을 고루 갖추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비슷해지는 법이다. 다만 소음인이 정신적 지주, 지표의 노릇을 한다면, 태음인은 실질적 좌장의 노릇을 하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 여러 시민단체에 보면 30대까지도 평온한 삶을 살다가 늦바람난 어른들이 가끔 눈에 띈다. 늦바람이란 표현은 좀 심할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런 분들의 가족들이 장난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흉내 내어 보았다. 어쨌든 가까이만 있어도 든든하게 느껴지는 그런 분들이 주책(籌策), 위의(威義)의 경지에 도달한 분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4. 소양인의 진보 성향

 

 

소양인의 기본 성향은 개혁적이다. 성정(性情) 문진표에 부당하다고 느끼면 참지 못한다는 문장을 넣어놓고 소양인을 판별하는 문항으로 사용하는 한의사들이 꽤 많다. 집안의 가구 배치가 좀 불편하다고 느끼면 그날로 바꿔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대부분 소양인이다. 대외적으로도 개혁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다른 체질보다 높게 나타난다. 동네 반상회, 학교 학부모회, 회사의 업무개선 회의 등등의 자리에 가보면 바로 눈에 띈다. 그러나 다른 체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성향들이 바로 사회적 문제의 진보 성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보편과 특수를 이야기할 때 강조했듯이, 소양인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다수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가 변화를 원할 때와 현상 유지를 원할 때 각각 그 개혁성이 나타나는 정도가 차이가 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소수가 독선적인 방법으로 다수를 지배할 때는 바로 문제를 느낀다. 지배 그룹의 잘못을 바로 지적한다. 그러나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문제점을 인식하는 게 늦는 경우가 많다.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양인의 경우에도 동성애자 문제나 특수한 마니아문화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관심을 적게 가지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소수자의 권리 중시는 진보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양인은 별로 진보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 부분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소수자 문제에서도 아주 적극적인 소양인이 있으니까.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회적 소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기에 불리한 입장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양인은 그것이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게 늦다는 것이다. 다수의 문제를 이해하는 쪽의 감각이 먼저 발달하니까, 소수자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를 인식하는 게 늦다.

 

하지만 그것이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 안 지켜진다는 것이니까. 원래 소양인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에 따른 배려 쪽은 약하지만, 기본적이고 공적인 약속을 지키려는 의욕은 강하다. 기본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소양인이 보기에 상당히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싸울 거리가 되는 것이다.

 

소양인의 진보성이 사회 문제로 드러날 때 기본 성향보다 약화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몇 가지가 더 있다. 소양인은 학교나 언론의 주장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상당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 받아들인다. 따라서 수구적 지배집단이 교육과정과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때는 진보적 사고를 배우기가 어렵다.

 

주로 소양인의 진보성이 개발되는 것은 자신이 자신 주변의 사소한 부당함을 개선하고자 부딪혔다가 좌절하면서 시작된다. 작은 일이면 세상과 타협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게 너무나 치명적이라서 타협할 수 없었을 때, 또는 당연히 자신이 옳으므로 곧 해결되리라고 믿고 강하게 부딪혀갔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끝까지 가서 좌절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주변에 진보적 사고를 깨우쳐 줄 사람이 있으면 개인적인 진보성이 사회적 진보성으로 발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자존심만 내세우는 건달형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소양인은 각각의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식이 약한 편이다. 이것도 사회적 문제에 개혁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관성의 중시는 순발력의 부족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순발력이 부족한 사람은 뚜렷한 기준이 없으면 여러 상황에서 쉽게 대처방법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 기준을 항상 꽉 붙들고 있는 모습이 외부적으로는 일관성 중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순발력에 자신이 있는 소양인은 상대적으로 일관성에 대한 집착이 약해진다. 즉 여러 가지 사안에서 일관되게 보수 또는 진보의 입장을 지키는 경우가 음인(陰人)들보다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양인에 있어서는 사안에 따른 유연한 대처가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나심(懶心)이 심해졌을 때 전형적인 보수, 전형적인 진보라는 식으로 고정된 타입을 지니는 경우가 많아진다. 더 심해지면 수구나 급진으로 고착되는 경우도 생긴다. 생각하기도 싫고 따지기도 싫으니 아예 한쪽 극단에 가서 뒤로 누워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과심(誇心)이 심해져서 수구나 급진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실제 마음이 그 지경까지 간 것은 아니다. 마음이 보수 쪽으로 기울면 표현은 수구적으로, 마음이 진보 쪽으로 기울면 표현은 급진 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자기표현에 자기가 발목을 잡혀서 진짜 수구나 급진의 노릇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량(度量)이나 재간(才幹)의 경지에 가면? 역시 사상의 기운을 두루 익힌 것이니 앞에서 소음인, 태음인 설명할 때와 비슷해진다. 각각의 사안에 따라 적절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소양인의 약점이 문제해결 중심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도량(度量)이나 재간(才幹)의 경지에 가면 거의 극복된다. 따라서 보수냐 진보냐 하는 입장에 연연함이 없고, 지금 상황에서 최대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 무엇이냐를 중시하게 된다.

 

 

 

 

5. 태양인의 급진 성향

 

 

태양인은 기본 성향에 있어서는 확실히 급진적인 면이 있다.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네 체질 중에 가장 적게 느낀다. 따라서 기존의 체제를 바닥부터 흔드는 변화라 할지라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이를 주장한다.

 

또 태양인들은 공통된 기준을 지키는 일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태양인들이 교우(交遇)에 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자신이 잘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보통은 공통된 기준을 많이 가질수록 사람들끼리 어울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우(交遇)에 능한 태양인은 그걸 잘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서로가 공통된 기준이 많지 않은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려면 공통된 기준이 넓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가치 중에 굳이 지켜야 할 것이라고 느끼는 부분도 다른 체질보다 적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 이런 급진성이 바로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급진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급진성을 발휘하기에는 사회적 영역보다 학문, 종교, 예술 등이 훨씬 좋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내면의 급진성을 사회적 영역에서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때, 무조건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학문, 종교, 철학, 예술과 같은 영역에 몰두하여 내면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문제에서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활동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위에서 말한 영역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내면의 급진성이 바로 사회와의 충돌로 드러나는 경우를 줄여준다.

 

태양인의 급진성은 벌심(伐心)이 강해질수록 위험해진다. 타인에 대한 배척이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절심(竊心)까지 심해지면 이를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이루려고 여러 가지 무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아주 위험하다. 몇 년 전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김영철 씨가 연기했던 궁예의 모습을 상상하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은 단기간에 유토피아를 이루려는 욕심이 빚어내는 참극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이런 경우에는 수구적 모습과 급진적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관찰된다. 이미 이룬 것에 대해서는 수구적 모습이, 새로 이루려는 일에 대해서는 급진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행검(行檢)이나 방략(方略)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역시 사안에 따라 보수, 진보를 넘나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특히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고 개별의 행동이나 사고 하나하나를 기준으로 평가해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태양인의 장점이 두드러지게 된다. 또 매사에 지나치게 서두르는 태양인의 급박지심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방향은 양보를 안 하더라도 속도는 양보할 줄 아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간략하나마 체질과 사회적 입장의 관계를 정리해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보통 진보, 보수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여러 기준들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좀더 생생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족 문제의 중시 정도, 생산과 분배의 경중 문제, 개인주의의 중시 정도 등이 체질에 따라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이야기하면 좋은데, 그런 부분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체질 외적인 요소가 너무 크게 작용한다. 또 그 안에서 각 체질이 작용하는 방식을 세밀히 분석하려 들면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진다. 아쉬운 대로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할 듯하다. 어쨌든 요점은 체질에 따라 일률적으로 보수적이다’ ‘개혁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이니, 이 점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인용

목차

사상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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