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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노희락의 심리학, 프롤로그 - 4. 출발점에 대한 이해: 체질을 아는 것은 출발점을 아는 것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프롤로그 - 4. 출발점에 대한 이해: 체질을 아는 것은 출발점을 아는 것

건방진방랑자 2021. 12. 2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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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을 아는 것은 출발점을 아는 것

 

코페르니쿠스적이라는 말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는 찬사가 들어 있는 표현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것은 정확히 말해서 지동설(地動說)’이라기보다 태양중심설(太陽中心說)’이다. 천문학의 시초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천구를 그리고, 별들을 그 천구 위에 배치하여 운동을 측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문학이 발달되면서 점점 단일 천구에 별들을 배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2중의 천구라는 발상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늘 처음이 어려운 법이고, 다음은 쉽다. 천구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난다. 코페르니쿠스 시절에는 수십 개의 천구80여 개였다고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를 설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을 중심으로 놓고 다시 배치해보니 천구가 14개면 그때까지 관찰된 모든 별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중심설도 점차 깨져나간다. 태양계는 은하계의 변방에서 은하의 중심을 축으로 도는 하나의 부분에 불과하고, 우리의 은하 역시 전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들이 밝혀진다. 그럼 전 우주의 중심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날까? 지구중심설은 과연 폐기해야 할까? 아니다. 우주의 중심이라는 관점 자체가 꼭 필요한가의 문제가 있다. 중심이란, 모든 별의 움직임을 중심을 주변으로 도는 원운동이라는 모델로 해석하고자 할 때 필요할 뿐이다. 원운동을 굳이 고집하지 않으면 지구를 중심에 놓든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든 아무 모순될 것이 없다. 다만 별들의 움직임의 경로가 좀 복잡해질 뿐이다. 상대적인 것이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 별다른 중심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놓으면 별들의 움직임은 확실히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 복잡한 경로를 계산하여 그릴 수 있으면, 내가 어디에서 어느 별을 찾을 수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으며, 그 별들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바로 계산할 수 있다. 우주의 중심을 다른 곳에 설정해서 별들의 움직임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은 우리가 그 중심에 섰을 때의 간단함이지, 지구에 섰을 때의 간단함이 아니다. 그 별과 지구와의 관계는 다시 계산해주어야 한다. 두 개, 세 개, 여러 개의 별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는 아주 복잡해진다.

 

동양의 천문학으로 운기학(運氣學)이라는 것이 있다. 우주의 움직임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의 기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운기학은 기본적으로 지구를 중심에 놓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한다. 각각의 별의 기운들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니까. 지구를 고정시키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결국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 고정된 중심은 없다.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쓸 것이냐에 따라 중심을 설정할 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경제학 하나로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까다롭다. 배우자와 사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손실과 등가인가를 계산하려면 너무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사람들이 감수할 만한 경제적 비용은 얼마인가의 계산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 과정이 너무 복잡하니까 쉽게 세상을 이해하려면 심리학이나 정치학이라는 다른 영역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니 너는 이것만 다뤄라하는 것은 차별이다. 차이의 인정이 아니라 차별이다. 경제학 개념 중심의 인식 체계가 탄탄한 사람이 정치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면, 기존의 심리학이나 정치학이 도달한 영역을 넘어 새로운 경지를 열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나 학문이나 자신의 강점을 발달시켜서 자신의 약점의 영역에 도달하게 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야말로, 태양인이 태양인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게 하며, 소양인이 소음적인 능력이 필요한 영역에서 소음인보다 훨씬 뛰어난 업적을 쌓을 수 있게 하고, 직관이 약한 태음인이 직관의 영역에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게 하고, 소음인 제갈량이 모옥(茅屋)에 앉아 세상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인간 유형학의 기본은 출발점을 알고자 하는 것이며,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다. 유형의 설정에서 비로소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현할 방향이 정해진다. 의지의 발현 정도와 방향에 따라 어디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위에서 사주명리학의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모든 사람이 길흉화복의 예측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주명리학 역시 그 가치는 지도에 출발점을 찍는 것이다.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물며 남녀의 차이에 관한 공부라든가 사상체질에 대한 공부는 더욱이 그렇다.

 

인간 유형학이 출발점과 방향을 언급하는 데서 벗어나 결과에 대한 섣부른 예측으로 갈 때,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다름을 틀림으로 만드는 타락한 학문이 되고 만다. 결과를 예측하지 않으면 여러 다른 출발점에 대해 우열을 매길 수 없다. 서로 다른 출발점의 평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다른 영역에 도달하고자 노력할 때, 다름이 맞음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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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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