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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노희락의 심리학, 프롤로그 - 3. 살림의 문화, 죽임의 문화: 살림의 문화, 죽임의 문화 본문

책/철학(哲學)

애노희락의 심리학, 프롤로그 - 3. 살림의 문화, 죽임의 문화: 살림의 문화, 죽임의 문화

건방진방랑자 2021. 12. 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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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문화, 죽임의 문화

 

{죽임}의 문화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열세종(劣勢種)이 살아남기 위한 문화이다. 생존의 위협이 줄어드는 정도에 따라 {살림}의 문화의 비중이 커진다. 후천개벽이니 뭐니 하면서 음양의 교체가 일어나고, 여성적인 가치관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말이 있다. 별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지구의 최우세종(最優勢種)이 되었다. 이제 우세종에 어울리는 문화” “우세종이 마땅히 가져야 할 문화를 가지게 된다는 뜻이 바로 후천개벽(後天開闢)이다.

 

{죽임}의 문화는 다른 종에 대해서도, 같은 종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열세종일 때는 강한 개체 위주로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 가장 강한 개체 위주로 문화가 형성될수록, 약한 개체들이 도태될수록, 종 전체의 생존은 유리해진다. 반면 생존의 위협을 벗어나면 약한 개체를 보살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각각의 개체들이 자신 특유의 능력으로 집단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 살림의 문화는 약자 존중의 문화이고, 다양성의 문화이다.

 

사회 문제의 해결에서 이 두 가지 태도는 뚜렷이 다르게 나타난다. {죽임}의 문화는 나쁜 점을 줄이는 쪽에 중점을 둔다. 흔히 ‘negative approach(부정적인 접근)’라고 표현되는 태도이다. {살림}의 문화는 좋은 점을 늘리는 쪽에 중점을 둔다. ‘positive approach(긍정적인 접근)’를 취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체질과도 관련이 있으니, 조금만 언급을 하고 넘어가자. 양인(陽人)들은 단점의 축소에 더 중점을 둔다. 음인(陰人)들은 장점의 확대에 중점을 둔다. 사람들이 서로 속이는 것에 애()를 느끼는 것이 태양 기운의 바탕이고, 사람들이 서로 업신여김에 노()를 느끼는 것이 소양 기운의 바탕이라고 한다. 반면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는 것에 희()를 느끼는 것, 사람들이 서로 보호하는 것에 락()을 느끼는 것이 각각 태음 기운, 소음 기운의 바탕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사상인의 성정을 본격적으로 설명할 때 다시 하기로 하자.

 

이론적 설명이 길어졌으니,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01년 말의 민주당의 개혁파동을 기억하는가? 대선을 1년 남기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 원인으로 당내의 구시대적 정치를 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들이 부패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민주당의 인기를 하락시킨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온 것이다. 개혁파들은 의혹 대상 정치인이 스스로 물러날 것을 주장했다. 이른바 인적청산론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제도를 정비하여 그런 식의 의혹을 받을 일이 아예 안 생기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세 번째로, 의혹받는 정치인을 무조건 감싸고도는 부류도 있었지만, 그쪽이야 자기도 구린 데가 있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니 그쪽은 언급 없이 넘어가도록 하자.

 

인적청산은 바로 {죽임}의 문화이다. 조직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문제가 있는 개체를 도태시키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맹수에게 추격당하면 걸음이 가장 느린 사람이 잡아 먹혀서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방법. 원시시대부터 쓰던 방법이다. 반면 제도정비는 상대적으로 {살림}의 문화에 가깝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개념이다. 물론 인적청산을 주장했던 측이 모두 태양인, 소양인이라는 뜻은 아니다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정치권에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죽임}의 문화가 작동된 것일 뿐이다. 반면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동지들과는 달리 제도정비를 주장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문제는 해결하되 상처 입는 사람은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죽임}의 문화의 문제점을 한참 이야기했지만, {죽임}의 문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분위기를 좀 바꿔서 {죽임}의 문화의 장점을 검토해보자. 인류가 확연한 우세종이 된 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보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인류의 식품 생산량이 인간의 총수요를 넘어선 것은 더 최근의 일이다. 즉 어느 정도는 효율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 규모, 공동체의 규모가 점점 커져왔다. 이른바 표준화, 단일화의 요구가 점점 커져왔다는 말이다. 이런 요구들에 대해 {죽임}의 문화는 긍정적인 공헌을 했다. 무한정의 {살림}은 결국은 공멸(共滅)을 부를 수도 있다. 적절한 {죽임}은 아직도 여러 영역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문화의 전부를 차지하는 데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지구상의 최우세종이 되고, 인간의 총생산이 총수요를 넘어섰다. 이제 {죽임}의 문화가 지배하던 영역에 {살림}의 문화를 넓혀나가야 할 때이다. {죽임}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대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조화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죽임}의 문화가 {살림}의 문화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고 있다. 광고로 수요를 창출해가면서, 아직도 나눔보다 만듦이 더 중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죽임}의 문화라고 하면 바로 전쟁을 생각하지만, 사실 인류 문명에 있어 {죽임}의 문화가 가장 뚜렷이 드러난 것은 대규모의 일관 생산라인, 이른바 컨베이어벨트이다. 모던 타임스>에서 열심히 너트를 조이던 찰리 채플린의 모습, 그것이 죽임의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죽임}의 문화의 최대 폐해는 개인의 말살이다.

 

여성해방운동은 인권에 대한 자각이라는 바람직한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본가들이 저임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장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농촌을 파괴하면서 최대한 노동력을 끌어냈는데, 그것으로 부족하니까 여성을 끌어내려 했던 것이다. 기업들과, 기업의 후원을 받는 학자들은 무한정한 광고 공세로 [살림]은 천박한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강조해서 주부를 컨베이어벨트로 끌어내기 위한 공세를 펼쳤다. 그 과정이 여성해방의 참뜻을 왜곡시킨 것이며, 그나마 가정을 통해 명맥이 유지되던 {살림}의 문화를 파괴한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가사도구의 발명, 상대적으로 풍족해진 물자 등으로 [살림]이 용이해진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살림]을 하던 사람들이 [살림] 이외의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부를 사회로 이끌어내려면 사회 문화 자체를 같이 바꾸어주었어야 한다. 즉 기업의 {살림}, 공동체{살림}, 국가{살림}에 여성들이 동참하게 해주어야 한다.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바꾸어주어 여성의 동참 여지를 넓히는 것이 여성해방이지, 기존의 {죽임}의 문화를 그대로 두고 여성을 남성화시키는 쪽의 해결책은 결코 여성해방운동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관행, 제도, 문화를 남성 일변도의 문화로 놔둔 채, “, 여성에게도 문호가 열렸으니 도전하라고 외친다. 그건 사기다. G. I. 제인은 절대로 여성해방의 상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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