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문제 다루기
감정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개인의 감정을 중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객관화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를 예로 들어보자. GOT, 혈중 콜레스트롤 농도 같은 것은 숫자로 나온다. 하지만 자각 증상은 다르다. 상처 깊이가 0.5cm, 길이가 2cm라고 적을 수는 있어도, 통증은 그냥 애매하게 심한 통증, 가벼운 통증, 찌르는 듯한 통증, 묵직한 통증, 이런 식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속이 더부룩함, 메슥메슥함, 가슴에 무언가 막힌 듯한 느낌, 찌뿌둥함, 뭐 이런 것들은 정리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느끼는 정도와 표현하는 정도가 환자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작은 불편을 크게 이야기하는 사람, 큰 고통을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 등등, 이런 개인적 특성을 빨리 파악하지 않으면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특성에 너무 매달리면 이번에는 진단이 너무 늦게 나오게 된다. 진단이 끝나고 나니 환자는 이미 치료시기를 넘겼더라, 이렇게 되면 이것도 곤란하다.
슬픔, 기쁨, 모욕감, 수치심, 황홀감,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마다 느끼는 것이 다 다르고, 또 느낀 정도에 따라 얼마만큼 강하게 표현하는가도 다 다르다. 결국 감정의 문제를 다루는 기준은 두 가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싫어하는 것들을 확실한 기준을 세워서 강하게 제지하는 것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에서 남을 충분히 배려하여 상대가 좋아하고 싶어하는 것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소양인의 눈이 세회(世會)에 밝다는 것은 전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소양인은 감정에 민감하지만, 반면 개별적 특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후자 쪽의 감정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태음인의 태도에 가깝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태음인의 인륜(人倫)이 이와 관련되는 감각이다.
결국 앞에서 말한, ‘판검사는 변호사 경험을 충분히 갖춘 사람을 임명하라’는 것은 태음인 감각이다. 소양인 감각은 ‘법을 제대로 만들고 잘 지켜라’ 쪽이다. 소양인은 사람들 감정의 파악에 능하니까, 사람들이 보통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잘 안다. 그러니 법에서는 이 정도로 규정하면 되겠다는 감각도 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개별적 상황은 그때그때 빨리 느껴서 대처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법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