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관한 몇 가지
태음인, 태양인의 관점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정리가 되었는데, 소음인의 ‘옳다/그르다’, 소양인의 ‘좋다/싫다’라는 관점을 이야기한 김에 다른 체질 이야기도 같이 다뤄보자. 태음인의 관점은 일차적으로는 ‘성(成)/패(政)’에 많이 치우쳐져 있다. ‘된다/안 된다’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성/패’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도 꽤 된다. 너무 ‘된다/안 된다’ 만을 따지면 좀 속물같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차적으로 ‘맞다/틀리다’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상당히 강조했기 때문에 ‘맞다/틀리다’와 ‘옳다/그르다’가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맞다/틀리다’는 서로 어울리느냐, 어울릴 수 없느냐의 문제다. 영어로 하자면 ‘fit/unfit’이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맞다/틀리다’가 ‘옳다/그르다’와 같이 ‘right/wrong’의 개념으로 쓰이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전체주의적 사고의 영향이다. 주자학 하나만이 옳은 것으로 받아 들여졌던 세월에 이어, 천황이 절대 기준인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를 겪고, 이어서 바로 군사독재에 시달려온 흔적이 우리의 말글살이에 남아 있다. 매사에 기준이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그 기준과 틀리면 그른 것이고, 그 기준과 맞으면 옳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른 것은 버려야 한다. 틀린 것은 맞춰야 한다. 틀린 것을 버린다면 어느 쪽을 버려야 할까? 틀린 것은 서로 틀린 것이다. 한쪽만 틀린 경우는 없다. 버린다면 둘 다 버려야 하는가? 또 틀린 것은 조금 돌려서 맞춰보면 맞을 수도 있다.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식으로 서로 맞춰나가는 것이 태음인의 관심사다. 인륜(人倫)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다. ‘맞춰나가 보자꾸나.’ 그게 인륜(人倫)이다.
태음인은 망가진 물건이나 낡은 물건을 웬만해서는 잘 안 버린다. 어딘가 쓸데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적에 대해서도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은 남겨놓고 싶어한다. 확실한 태음인인 것 같은데도 물건도 과감하게 잘 버리고 사람 관계 정리도 화끈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어서 체질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한데, 좀 드문 경우다.
태양인은 ‘좋다/나쁘다’라는 관점에 민감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소양인과 같이 ‘좋다’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한자로 하자면 태양인은 ‘선(善)/악(惡)’이라는 관점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선악이 개인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집단 전체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라는 관점이 강하다. 태양인의 출발은 인(仁)이기 때문이다. 두루 유리하게 만드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또 이 ‘좋다/나쁘다’를 개별적인 ‘행동’이나 개별적인 ‘생각’에 적용한다. 즉 그런 행동이나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벌심(伐心)이 강해지면 달라진다. 태양인이 사람을 ‘착한 분/나쁜 놈’으로 갈라보는 경향이 생겼다면 그건 벌심(伐心)이 강해졌다는 증거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