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邪心)과 태행(怠行)의 비교
사심(邪心)에 대해 이해해둘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자.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다. 즉 성(性)과 관련해서 천기(天機)에 있어 자신이 약한 영역을 이해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심(邪心)에 빠졌다거나, 박통(博通)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할 때는 아무래도 그런 사고방식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방식만을 설명해도 자기 체질에 대한 설명은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즉 교심(驕心)이니, 주책(籌策)이니 하는 내용을 세상에 대한 인식 방식에 관한 것으로 국한해서 설명해도 태음인은 잘 알아듣는다. 또 소음인에게 긍심(矜心), 경륜(經綸)을 이야기하면 잘 알아듣는다. 그러나 다른 체질에게 그런 식으로 설명해서는 알 듯 모를 듯하다는 반응만 나올 뿐이다. 그런 사고방식에 의해 나타나는 행동을 직접 예로 들어줘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한계 때문에 사심(邪心), 박통(博通)의 문제도 행동을 중심으로 설명을 했지만, 초점은 마음 자세에 있는 것이다.
반면 뒤에서 설명할 태행(怠行)과 독행(獨行)의 문제는 전적으로 행동의 문제다. 즉 인사(人事)를 할 때 약한 부분의 문제다. 물론 그런 행동이 어떠한 마음일 때 강해지는가의 문제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마음의 문제도 같이 다뤄지기는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다른 체질의 행동을 어설프게 흉내 내느냐, 아니면 자신의 장점을 키워서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경지에 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사심(邪心), 박통(博通)이 마음 쓰는 방식의 문제인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독행(獨行)은 꾸준한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결국 사심(邪心)이 강한 사람도 주변의 강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단지 세상을 비뚤게 볼 뿐,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심(邪心)이 강한 사람이 영향력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사심(邪心)을 행동으로 표출하게 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기본 방식이 틀려 있으니까 오히려 큰 문제를 일으킨다. 뒤에서 설명할 태행(怠行)은 행동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바로 피해를 주게 되지만 그 피해가 많은 사람에게 넓고 강하게 작용하는 정도는 오히려 덜한 경우가 많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서 지속적이지 않고 일시적, 충동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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