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
01년 3월 19일(월)
주일이었던 어제 처음으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생판 달리 안개 낀 새벽을 빌미로 어둑어둑한 하루가 계속 전개되었다. 그에 맞추어, 3주차의 주된 훈련은 K-2 소총 교육과 실전 사격 훈련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맞물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한 주에 대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현실은 사실일 뿐이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저 저번 주에 했던 K-2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기에, 힘들었다면 여전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가 가장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날씨의 저조증이 우리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으며, 자기의 의지가 전혀 관여할 수 없이 꼭 잘해야만 하는 사격에 대한 부담이 우리의 움츠러든 맘을 한껏 더 세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심리상, 날씨상의 우울은 결국 폭발하고만 것이다. 모든 짜증 속에 훈련이 다 끝나고 나서 손병장의 말대로 환복을 하였으나, 저번 주 금요일에도 그랬던 것처럼 체력단련을 하려는지 늦게서야 원복을 착용하고 총기류를 갖춰 입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음과 동시에, 아이들의 억압된 불만들이 일제히 폭발하였다. 또한 그런 억압의 표출은 불만의 장본인에게서가 아닌 주변인 이른바 동지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쏟아지게 된 것이다. 평소엔 그저 지나쳤을 일들도 서로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으며,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표출 방식이다. 쌓여 있는, 억압되어 있는 것은 영원히 억압되고,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억압은 표출되기 마련이고 결국 자기를 망치는 형국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함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힘들다. 과연 내일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고 잘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 참으며 내일의 영예를 바라자. 내일이여 날 기다려다오.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
01년 3월 20일(화) 맑음
살아서 돌아왔다. 오늘 살상용(殺傷用) 화기를 다루면서 많이 떨었다. 오전 내내 들었던 총기의 굉음이 그랬고 살상용이라는 용도가 그랬고, 내 총기에 대한 의심이 그랬고, 예전부터 들어왔던 총기의 안전사고 내용들이 그랬다.
쏘려는 그 순간까지 많이 떨었다. 하지만 막상 쏘고 나니, 허탈한 마음과 함께 다시 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흡사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타기 전엔 무수한 생각으로 고민하며 결국, 그 표를 샀다 하더라도 근심, 걱정의 눈초리로 자기가 타게 될 놀이기구를 보게 된다. 그와 같이 사격전에는 자기의 삶과 죽음이란 많은 고민을 하며 결국 사선(射線)에 이르러 대기조에 서있다 할지라도, 너무나 크고 선명히 들리는 총소리에 놀라며 자기 차례가 돌아옴에 대해 거부감을 심히 느낄 것이다.
이젠 직접 사선에 올라 총을 쏜다. 머리가 띵하다. 바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이다. 그저 주어져 있는 한가지 일(표적 조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빗나간다 할지라도 그건 전혀 우리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건 총기 다룸의 미숙에 대한 응분의 보복 조치이기 때문이다.
여러 후회 속에 놀이기구를 탔다. 놀이기구는 그 활동 영역을 따라서 정신없이 움직인다. 전혀 생각이 없고, 그저 빨리 내리고 싶을 뿐이다. 놀이기구가 멈췄다. 금방까지의 못 참았던 행동들이, 지금은 망동으로만 느껴질 뿐이고 허무감이 밀려듦과 함께 다시 타고 싶다는 극반전된 감정이 든다. 사격이 끝났을 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듯 놀이기구를 탔을 때와 총을 쐈을 때의 감정은 비슷한 것이었다.
살았다. 열심히 조준하여 살상용 실탄을 쐈다. 그러나 영점 조준 불합격의 불명예란 결과를 받은 거다. 막상 안 좋은 결과를 받고 보니 불명예스럽게 느껴지더라. 거기다 친구들이 멀게만 느껴져 꽤나 힘도 들었다. 잘 이겨 나가자, 나를.
유격과 참호전투
01년 3월 23일(금) 화창
원랜 오늘 기록 사격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인지 다음으로 연기되어 버렸다. 맞을 매는 후딱 맞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데, 그러지 못하니 맘이 아프다. 빨리 보고 노는 게 좋은데 이렇게 있으려니 죽겠다.
하루 종일 정신 교육이기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글쎄 종아리에 좀이 배기는 거 있지. 하도 활동적인 활동만 하다가 전혀 생각도 못했던 VTR 시청만 하려니 되게 힘들기만 했다.
3주차 교육도 이렇게 끝나 간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겁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 역시 언제나 늘 말하지만 지나가 버린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건가 보다. 어찌 이렇게 빠를 수 있지. 근데 앞으로 있을 일은 너무도 아마득히 느껴지니 말이다. 미치겠다. 과연 25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가긴 할까~
오늘은 하루 종일 유격을 받았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유격을 받을 거란 강박관념 때문에 아침에 무지 일어나기 싫었단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에게 숨 쉴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해주신 이상. 그러한 날이 나에게 오지 않을 리 만무하지 않겠어. 결국 어쩔 수 없이 너무도 싫었던 오늘 하루를 맞이해야 했다.
유격,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수련회 같은 걸 갔을 때, 빼놓지 않고 꼭 해봤던 거였기에 얼마나 힘든 건 줄 대충은 알고 있기에 맘 다짐을 확고히 했어. 아침에 14번까지 배울 때만 해도 별로 힘들지 않았어. 아니 오전 교육인 반복 숙달까지만은 별로 힘들지 않았지. 쉬는 시간이 충분했으니까.
근데 오늘의 문제는 오후였다. 그저 장애물 테스트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긴커녕 우리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PT체조를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시켰기에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실전 테스트엔 정말 힘들더라. 그 뒤론 참호전투를 했는데 처음엔 이기는 듯했으나, 결국은 5소대의 패배였다. 그래도 재밌었고 오늘은 힘들고도 기쁜 하루였다.
봄 경치(화창한 날에)
春景(和暢日中)
01년 3월 23일(금) 오전 11시 52분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 중에 봄이 가장 좋다.
四節은 春與夏與秋與冬也라 其中에 最春貴乎니
봄엔 감정이 살아나고 즐길 만하기에 좋은 것이다. 봄이라는 것은 겨울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다.
貴於春은 感好而樂이다 春者는 乃來冬終이라
겨울 동안은 몸이 위축되고 마음은 치우치며 정신은 해이해진다.
冬內에 體爲縮이오 心進偏이오 精神爲弛라
이것은 찬 겨울바람 때문이다.
是以寒風之故也라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으나, 어느 때에 보니 이미 와 있다.
如不來春이나 看何時하니 旣猶來라
산은 푸르름으로 돌아갔고 풀은 푸른색을 되찾았으며 마음은 여유를 되찾았으니, 이것으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歸山綠하고 探草靑하며 復心餘하니 乃感春來라
봄의 화창한 날에 나와 너는 이곳에서 극기에 힘쓰고 있으니, 놀랍고도 만족스럽다.
春之中暢日에 予和汝務克己於是所하니 驚也足也라
봄의 경치엔 아름다움과 생기 있음을 바라며, 쓰리고 아픔은 봄경치로써 이기자.
望春景之美而有生氣며 是若與痛以春景勝哉인저
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
01년 3월 25일(日)
미래의 자화상
5년 후 | 군을 전역했을 것이기에, 자신감과 함께 기고만장함을 가지고 있겠지. 1년 간 대학에 바로 갈 수 없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거다. 과연 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지? 걱정이지만 지금 그 걱정을 한다면, 단순한 기우(杞憂)라고나 할까? 그저 복학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알바할 것이다. 적어도 군대는 갔다 왔으니, 조금이라도 확신 있고 생활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돈 꼭 벌어서 사회라는 현실도 체험해보고, 입학금도 마련할 거야. |
10년 후 |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겠지. 그걸 합격하여 장래희망을 이루고자 대학에 들어간 것일 테니깐 꼭 합격해야겠지. 그리고 결혼도 할 거다. 결혼이란 게 선택사항이든, 필수사항이든 간에 꼭 할 거야. 세상에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지 않겠어. 물론 이러한 겉으로 드러난 이유 외에도 내밀한 이유도 있지. 이 두 가지를 꼭 이룰 거야. |
훈련소 친구
강승국 (姜昇國) |
대전, 21살 훈련소에서 알게 된 친구이다. 바로 옆 번호이기에 친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도 친해진 걸 그다지 후회하지 않는다. 힘들 때 한 명이라도 말할 수 있는 전우가 있다는 것은 좋으니까. ◉ 사람과의 터울이 적어 쉽게 친해지며, 말을 잘 한다. ◉ 이해심이 많아 대하기가 편하다. |
국철수 (鞠哲洙) |
고창, 22살 ◉ 활기차며 모든 일에 열심히 하려 한다. ◉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려 한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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