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맹자 -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맹자 -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5. 14:18
728x90
반응형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성선설(性善說)을 구성했다는 데 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사례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사단의 마음은 우리가 결코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그것은 나에게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는 셈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사단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우리가 선한 것은 바로 이 본성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이해한다면, 공자가 이야기했던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선한 본성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 인간들이 윤리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구별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공도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公都子問曰: “鈞是人也, 或爲大人, 或爲小人, 何也?”

공도자문왈: “균시인야, 혹위대인, 혹위소인, 하야?”

 

맹자가 대답했다.

대체(大體)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孟子曰: “從其大體爲大人, 從其小體爲小人.”

맹자왈: “종기대체위대인, 종기소체위소인.”

 

공도자가 다시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체를 따르고 어떤 사람은 소체를 따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 “鈞是人也, 或從其大體, 或從其小體, 何也?”

: “균시인야, 혹종기대체, 혹종기소체, 하야?”

 

맹자가 대답했다.

귀나 눈 같은 기관은 사고를 못하여 사물에 가려진다. 사물과 사물이 만나면 끌어당길 뿐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은 생각을 하니, 생각하면 깨닫게 되고, 생각하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 큰 것을 먼저 확립하면 작은 것이 빼앗을 수 없다. 이것이 대인일 따름이다.” 맹자』 「고자

: “耳目之官不思, 而蔽於物, 物交物, 則引之而已矣. 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也. 此天之所與我者, 先立乎其大者, 則其小者弗能奪也. 此爲大人而已矣.”

: “이목지관불사, 이폐어물, 물교물, 즉인지이이의. 심지관즉사, 사즉득지, 불사즉부득야. 차천지소여아자, 선립호기대자, 즉기소자불능탈야. 차위대인이이의.”

 

 

제자 공도자(公都子), 똑같은 사람인데 왜 대인과 소인의 구별이 생겼는지 스승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인간을 두 가지 계기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대체(大體)와 소체()가 있습니다. 여기서 대체가 글자 그대로 큰 몸을 의미한다면, 소체는 작은 몸을 의미하지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인간에게서 가장 큰 몸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살펴본 선천적인 본성을 의미합니다. 또는 이 본성으로부터 나온 윤리적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반면 작은 몸은 외부 대상에 현혹되기 쉬운 우리의 육체적인 욕망이나 감각을 의미하지요. 맹자는 인간은 바로 두 가지 몸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야만 하는 숙명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지요. 만약 큰 몸, 대체를 따르면 그 사람은 대인이 됩니다. 반면 작은 몸, 소체를 따르면 그 사람은 결국 소인이 됩니다. 맹자의 대인과 소인은 사실 공자가 말한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계승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맹자가 인간을 대인과 소인으로 구별하는 근거는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논의를 조금 더 살펴보지요.

 

공도자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어떤 사람은 대체를 따르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소체를 따르게 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감각기관과 마음이라는 이분법을 끌어들입니다. 그는 우리가 감각기관의 욕구를 따르면, 다시 말해 육체적인 욕망을 따르면 제대로 사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기관을 따라 사유할 수 있으면, 본성으로부터 나온 윤리적 마음을 따르게 된다고 보았지요. 만약 여러분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마음 중 어떤 것이 나의 본성으로부터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맹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생각을 잘 하여 대체로서의 본성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단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닫게 된 본성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곧 대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맹자는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면에 있는 본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따르면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맹자의 이와 같은 생각을 정치철학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맹자의 이 이야기가 얼마나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맹자시대에도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의 아들은 왕이 되고, 농민의 아들은 농민이 되고, 노예의 아들은 노예가 되는 식이었지요. 그러나 맹자의 생각에 따르면 왕의 아들이는 노예의 아들이는 누구나 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수양을 잘 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 것이지요.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