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자신과 한몸처럼 보아야 한다
장재가 유학자들에게 던진 우주가족의 이념의 영향은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물론 정호와 정이 형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특히 형인 정호에게 장재의 철학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정호는 어떤 사람이라도 우주가족으로 생각하라는 장재의 명령을 유학의 핵심 이념인 인(仁)이라는 개념으로 수렴시켰습니다.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명제로 유명한 그의 인 개념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지요.
의학 서적에서는 손과 발이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仁)이라는 명칭의 모습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몸이라 여기므로, 어떤 것도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이라고 여기니 어디인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일 자신에게 있지 않다면 자연히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니, 마치 수족이 마비되어 기가 통하지 못하면 모두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널리 베풀어서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곧 성인의 역할이다. 『하남정씨유서』 2 (상) : 7
醫書言手足痿痺爲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莫非己也. 認得爲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之功用.
의서언수족위비위불인, 차언최선명상. 인자이천지만물위일체, 막비기야. 인득위기, 하소부지? 약불유저기, 자불여기상간, 여수족불인, 기이불관, 개불속기. 고박시제중, 내성지공용.
히말라야에 오르는 등산가를 괴롭히는 엄청난 질병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동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증상이 심해지면 동상에 걸린 부위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동상에 걸린 부위는 점차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절단해야 할 상황에 이르지요. 동상에 심하게 걸려서 내 다리에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면, 과연 내 다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꼬집어도 때려도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면 말이지요. 겉보기에는 분명 내 다리이지만, 내 다리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정호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우주가족의 이념을 새롭게 사유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전통적인 동양 의학의 개념 하나를 빌려왔습니다. “손과 발이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手足痿痺爲不仁]”는 의학 서적의 글귀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자, 반대로 손과 발이 마비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볼까요? 마비되었을 때가 '불인한 상태이니까, 당연히 마비가 되지 않았거나 마비가 풀렸을 때는 ‘인(仁)’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결국 정호의 생각에 따르면, 어떤 것과 통하여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인의 상태입니다. 자, 이제 시야를 좀더 확대해보지요. 저기 어떤 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났다면 정호는 이런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위기에 빠진 아이가 내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측은지심이 일어났다고 말했겠지요.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지요. 어떤 사람이 실연하여 울고 있을 때 그의 슬픔을 함께 느꼈다고 한다면, 이 경우도 그 사람을 내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정호는 이것을 기가 통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깊이 장재의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호가 성인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호는 성인을 가장 완벽한 인자(仁者)라고 보았습니다. 인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몸처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정호는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몸이라 여긴다[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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