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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새로운 유학을 꿈꾼 세 명의 유학자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장재와 정호ㆍ정이 형제 - 새로운 유학을 꿈꾼 세 명의 유학자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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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학을 꿈꾼 세 명의 유학자

 

 

기원전 202년에 시작되어 기원후 220년에 막을 내린 한나라는 유학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제국이었습니다. 이 제국은 여타 모든 사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유학만을 숭상한다는 기치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던 법가 사상을 지지한 진나라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공자로 대표되는 유학 사상은 아마도 땅속에 그대로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 제국에 이어 중국을 장악했던 한 제국은 진 제국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부각시켜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법가 사상에서 국가를 좀먹는 좀벌레라고 폄하했던 유학 사상을 다시 살려내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오히려 유학 사상의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의 비호를 받으면서 유학은 사상으로서의 생명력을 점점 잃어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한나라 때 유행했던 훈고학(訓誥學)은 이런 비극을 상징하는 학문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훈고학의 등장으로 인자(仁者)가 되려는 공자의 정신도, 그리고 대인(大人)이 되려는 맹자의 정신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저 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대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글자 그대로 분석하고 해명하는 작업만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자와 맹자가 강조하던 완성된 인간에 대한 열망은 간과되고 말았습니다. 성인이 되려는 수양론의 정신이 사라지고, 오직 글자를 주석하는 훈고학만이 남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결국 공자와 맹자의 유학이 제공했던 절실한 삶의 문제들,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가?’하는 주체적인 삶의 문제들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문제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반드시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요. 유학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자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가 이 역할을 대신 담당하게 됩니다. 불교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른 삶을 위해 어떤 수양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었습니다. 이제 불교에 자리를 내준 유학은 진정 위기에 빠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몇몇 지식인들의 지적인 유희로 변질되고 만 유학을 다시 새롭게 만들 수는 없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와 견줄 수 있도록 유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는 공자가 제안했던 인자의 이념을 그대로 유지함과 동시에, 불교와 유사한 규모의 사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학자들은 공자의 정신을 잇고 불교와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유학을 만들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섬서성(陝西省)에서 장재(張載, 1020~1077)라는 사상가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장재 이전에 유행하던 불교는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유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삶의 고통도 마음에서 생기고, 고통의 해소도 오직 마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불교에서는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입장을 피력했지요. 이렇듯 불교는 극단적 주관주의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장재는 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 체계를 구성하여, 모든 것을 마음으로 수렴하는 불교의 논리를 공격합니다. 장재는 사람의 마음을 포함한 마음 바깥의 모든 것까지 결국 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이제 사람이 죽어 마음이 사라진다 해도, 기로 이루어진 객관적 세계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장재의 생각은 지금 정몽(正蒙)이라는 책에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정몽(正蒙)어리석음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장재가 말한 어리석음이란 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사실 공자와 맹자의 진정한 유학 정신을 망각하고 있던 당시 유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지요.

 

불교에서는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난 사람을 부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유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란 벗어나야 할 고통의 바다가 결코 아닙니다. 만약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행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지요. 유학자들은 삶의 문제는 삶이라는 지평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새로운 유학자들, 즉 신유학자(新儒學者)들은 불교와는 달리 이상적인 인격을 성인(聖人)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인은 삶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삶에 뛰어들어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삶의 달인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인이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까요? 장재와 함께 신유학을 시작했던 형제, 즉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 ~1107) 형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는 신유학에서 꿈꾸던 성인과, 성인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형제를 이정자(二程子)’라고도 부릅니다. 두 명의 정씨 선생이라는 뜻이지요. 두 형제의 사상은 주희가 정리한 하남정씨문집(河南程氏文集)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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