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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맹자의 성선설을 다시 숙고하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맹자의 성선설을 다시 숙고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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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성선설을 다시 숙고하다

 

 

이제 진사이는 주희미발ㆍ이발 개념의 구조를 넘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해명합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어 너라고 모욕하면서 주는 음식도 받을 수 있고 동쪽 집의 처자를 유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수오지심이 있어 그것을 막기 때문에 그런 탐심을 함부로 풀어놓을 수 없다. 본성이 선하지 않다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이것이 맹자가 성선(性善)을 논한 본래 취지이다. - 어맹자의』 「()

人有嗜慾, 可以受嘑爾之食, 可以摟東家之處子. 然必有羞惡之心爲之阻隔, 不敢縱其貪心. 非性之善, 豈能然乎? 是孟子論性善之本也.

인유기욕, 가이수호이지식, 가이루동가지처자. 연필유수오지심위지조격, 불감종기탐심. 비성지선, 기능연호? 시맹자론성선지본야.

 

 

물의 본성은 아래로 흐르려는 자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적인 압력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위로 흘러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경우는 모두 일정한 고도 차이를 전제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지요. 사람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배가 고픈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모욕적으로 음식을 주었다고 해보지요. 이때 우리는 두 가지 경향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받으려는 마음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입니다. 진사이에게, 전자의 마음은 외적인 압력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위로 올라가게 된 마음을 의미하고, 후자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아래로 내려가려는 마음, 즉 선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전자의 마음, 즉 탐심이 이겨서 부끄러운 음식을 받아먹었다 할지라도, 배를 채운 뒤 우리의 마음은 과연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아마 이전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때의 배고픔 때문에 수치스러움을 당했다는 자괴감이 생기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심리적 상황은 결국 인간 마음의 자발성, 즉 우리의 본성이 선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진사이의 수양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습니다. 진사이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리 마음이 가진 자발적인 경향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라고 강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을 차마 할 수 있는 상태로 옮기는 것이 인()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을 해도 되는 상태로 옮기는 것이 의()이다. () 이른바 사람에게는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것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바로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의 두 가지 단서이다. ‘그것을 차마 할 수 있는 상태해도 되는 상태로 옮긴 뒤에야 인과 의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하면, 사단(四端)의 마음이란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것이고, 인의예지란 곧 사단의 마음을 확충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맹자의』 「인의예지

人皆有所不忍, 達之於其所忍, 仁也. 人皆有所不爲, 達之於其所爲, 義也, () 所謂人皆有所不忍有所不爲者, 卽惻隱羞惡之二端也, 而謂達之於其所忍所爲而後能爲仁爲義, 則見四端之心, 是我生之所有, 而仁義禮智, 卽其所擴充而成也.

인개유소불인, 달지어기소인, 인야. 인개유소불위, 달지어기소위, 의야, () 소위인개유소불인유소불위자, 즉측은수오지이단야, 이위달지어기소인소위이후능위인위의, 즉견사단지심, 시아생지소유, 이인의예지, 즉기소확충이성야.

 

 

진사이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동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타인의 고통을 구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고통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우리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만이 차마 할 수 있는 일이 되겠죠. 마찬가지로 수오지심이 일어났을 때도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수치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불의를 물리쳐야만 하겠지요. 만약 타인의 고통을 구제하는 데 성공해서 동정심이 해소되었다면, 비로소 ()’이라는 덕목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불의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면, 비로소 ()’라는 덕목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결국 진사이에게 인의예지, 마음의 자발적 경향성인 본성을 따르는 실천적 노력에 의해서 달성되는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사이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독특합니다. 주희맹자인의예지설을 분석하면서 인의예지는 선천적으로 우리 마음 안에 깃든 본성이며, 그것이 밖으로 실현되어 나온 단서가 바로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네 가지 마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사이는 주희의 입장을 반대하면서 어맹자의』 「인의예지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의예지는 도덕의 명칭이지 성()의 명칭이 아니다.”

 

여기서 진사이가 말한 도덕이란 실천을 통해 측은지심 같은 마음을 확충해나간 결과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진사이는 본성을 측은지심 등의 네 가지 단서로 이해했고, 이 단서를 바탕으로 보다 확충해나간 마지막 결과를 인의예지 네 가지 덕목으로 이해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진사이는 맹자의 인의예지는 내 마음 안에 깃든 선천적 본성이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본성이란 것은 측은지심으로 작동할 뿐이고, 인간의 노력으로 측은지심의 마음을 확충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의예지라는 도덕이라고 본 것이지요. 이와 같은 진사이의 관점은 맹자성선설을 매우 독창적이고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사이의 독특한 해석은 이후 다양한 유학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약용도 바로 그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나중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仁義禮智 四端
朱熹 선천적 본성 본성이 밖으로 실현되어 나온 단어
伊藤仁齋 측은지심 등의 본성을 확충해 나간 마지막 결과 선천적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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