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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에필로그 - 2. 예절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이 난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에필로그 - 2. 예절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이 난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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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절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이 난다

 

 

유학 사상은 공자라는 수원지로부터 발원되어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로 뻗어나간 거대한 강과도 같습니다. 이 거대한 강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질적인 지류들이 합류하지만, 여전히 유학 사상은 공자의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로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의 사상은 어떤 힘이 있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도하게 흘러오고 있을까요? 나는 그것을 인간에 대한 공자의 긍정적인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인간에게서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수양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모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수양은 최종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도에 대해서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동아시아에서 도()라는 개념은 서양의 진리(truth)에 해당됩니다. 보통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진리를 얻게 되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침에 도를 듣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왜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아침과 저녁 사이, 그러니까 낮이란 시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깨달은 도가 진정 의미 있는 것이라면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가 들으려고 했던 도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방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듣고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공자는 직접 그 도에 따라서 타인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낮이 지나 밤이 찾아와 다시 홀로 있게 되었을 때, 마침내 공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점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공자가 생각했던 도는 결국 주()나라의 통치 질서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공자가 보수적인 사상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공자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다시 살려내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자에게서 예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관습이나 전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논어』 「팔일(八佾)편을 보면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합니다. 이 일화는 공자가 예라는 규범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자마자 태묘를 지키는 사람에게 참배하는 절차에 대해서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공자를 조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공자가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절차를 일일이 묻고 있으니 말이다[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이때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是禮也].”

 

공자가 생각했던 예는 단순한 허례허식이나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번 다시 묻고 그 상황에 적절한 예법인지를 살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공자를 조롱했던 사람이야말로 예를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 간주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공자에게 예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지요. 공자가 말한 예는 태묘라는 사당에서 참배하는 절차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진정한 예란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규정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는 태묘에 가서 그곳 관리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참배 행위를 훌륭하게 수행하길 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공자의 예가 형식적인 행위 절차를 넘어서,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도모하려는 데 뜻을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공자가 말한 예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요? 공자는 관례적인 예를 넘어서는 곳에서 오히려 예의 진정한 가치를 찾았던 것이지요. 예절이란 것은 결국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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