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 작은 단점 때문에 포기해선 이해를 안 된다
공자에서 시작하여 정약용에 이르는 13인의 유학자들 이야기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과연 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대충 감을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실린 공자를 제외한 12인의 유학자들은 모두 자신만이 공자의 충실한 수제자라고 자부했던 사상가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결같이 이전의 유학자들은 진정으로 공자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학자들이 공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주희는 자신이 공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주희가 본 것은 공자의 진정한 면모가 아니라고 비판했지요. 뿐만 아니라 유학을 좋아하는 현대 학자들도 자신이 공자의 진면목을 이해했노라고 자부하곤 합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공자의 가르침이 기록된 『논어』가 유학 사상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유학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것은 주희와도 다르고 정약용과도 다른 새로운 해석 방법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하겠지요.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반드시 『논어』를 한번 정독해보세요. 혹시 누가 알겠습니까? 주희나 정약용 그리고 현대에 진행되는 유학 사상에 대한 논쟁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의 가능성과 방법을 얻어낼 수 있을지 말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직접 『논어』를 읽을 때 너무 가혹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당시의 지적 분위기가 지금과는 현격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지 중요한 점은 우리가 공자의 생각에서 우리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 하나를 얻는 일일 것입니다. 어떻게 2500여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에게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처음 『논어』를 접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흥미진진하게 공자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 구절에 이르러 『논어』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화(陽貨)」 편에 “여자와 소인은 관계하기가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는 공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공자에 대해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사상가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여러모로 차별을 겪었던 내게 여성에 대한 공자의 생각은 그를 폄하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였지요. 이때 나는 심각하게 유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의 나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여성을 경시하는 듯한 공자의 유학 사상을, 그리고 공자의 정신을 이은 수많은 유학자들을 공부하고, 나아가 그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몇 번이나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공자를 우호적으로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공자를 옹호하려는 일종의 개종 행위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에게서 배울 것이 더 많다는 단순한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지요. 사실 20세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철학자들 가운데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났던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Platon, BC 428~BC 348)마저도 여성을 폄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성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그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계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공자를 제외한 12인의 유학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작은 단점이 보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예절이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이 난다
유학 사상은 공자라는 수원지로부터 발원되어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로 뻗어나간 거대한 강과도 같습니다. 이 거대한 강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질적인 지류들이 합류하지만, 여전히 유학 사상은 공자의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로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의 사상은 어떤 힘이 있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도하게 흘러오고 있을까요? 나는 그것을 인간에 대한 공자의 긍정적인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인간에게서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수양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서 모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수양은 최종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도에 대해서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동아시아에서 도(道)라는 개념은 서양의 진리(truth)에 해당됩니다. 보통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진리를 얻게 되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침에 도를 듣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왜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아침과 저녁 사이, 그러니까 낮이란 시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깨달은 도가 진정 의미 있는 것이라면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가 들으려고 했던 도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방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듣고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공자는 직접 그 도에 따라서 타인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낮이 지나 밤이 찾아와 다시 홀로 있게 되었을 때, 마침내 공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점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공자가 생각했던 도는 결국 주(周)나라의 통치 질서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예(禮)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공자가 보수적인 사상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공자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다시 살려내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자에게서 예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관습이나 전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논어』 「팔일(八佾)」편을 보면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합니다. 이 일화는 공자가 예라는 규범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자마자 태묘를 지키는 사람에게 참배하는 절차에 대해서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공자를 조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공자가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절차를 일일이 묻고 있으니 말이다[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이때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是禮也].”
공자가 생각했던 예는 단순한 허례허식이나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번 다시 묻고 그 상황에 적절한 예법인지를 살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공자를 조롱했던 사람이야말로 예를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 간주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공자에게 예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지요. 공자가 말한 예는 태묘라는 사당에서 참배하는 절차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진정한 예란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규정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는 태묘에 가서 그곳 관리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참배 행위를 훌륭하게 수행하길 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공자의 예가 형식적인 행위 절차를 넘어서,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도모하려는 데 뜻을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공자가 말한 예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요? 공자는 관례적인 예를 넘어서는 곳에서 오히려 예의 진정한 가치를 찾았던 것이지요. 예절이란 것은 결국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를 확보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3. 가족의 논리
유학 사상은 사실 공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자가 창시했지만, 12인 아니 그 이상의 유학자들이 합류하여 풍성하게 만든 거대한 강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거대한 강물은 서양 문명이라는 둑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거대한 둑을 넘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중국 인민대학의 <공자연구원>이나 KBS 방송에서 예언했던 것처럼 이 거대한 강이 앞으로 계속 흘러나가 인류의 비전이 될 수 있을까요? 서양 문명을 넘어서 유학 사상이 미래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장점을 유학 사상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하나는 가장 원형적인 공동체의 모델로 가족을 강조했던 유학 특유의 ‘가족의 논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동정심의 논리’입니다. 주희의 성리학에 의해 통일된 우주가족의 논리나 우주적 동정심의 형이상학보다, 구체적인 삶의 지평에서 가족과 동정심의 논리를 설파했던 정약용의 주장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우선 ‘가족의 논리’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앞으로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모든 개인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경쟁에 내몰리게 되겠지요.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거대한 교환의 세계에 더욱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일상적 삶에서 윤리적 관계를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습니다. 윤리적 행위란 기본적으로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대가 없이 제공할 때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가령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윤리적 행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입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수행하는 행동은 기본적으로 비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가족은 인간의 윤리적 행위의 마지막 보루가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나아가 형제나 자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어떤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순수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사랑을 배운다면 그것은 바로 가족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대가 없는 사랑을 충분히 경험했을 때 비로소 자녀 또한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유명한 문구가 떠오르는군요. 바로 이런 사랑의 발생을 우리는 유학에서 강조한 ‘가족의 논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4. 동정심의 논리와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동정심의 논리’입니다. 근대 서양 윤리학은 칸트(I. Kant, 1724~1804)의 정언명령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도덕형이상학원론(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에서 칸트는 윤리적 명령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의지의 준칙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 입법자로서 간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해야만 한다.”
칸트의 이 말은, 자신이 타인에게 행하려고 생각한 행동이 누구나 수행해도 좋을 행동인지를 미리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치려고 합니다. 칸트는 이럴 때 먼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배고플 때 내 빵을 훔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말이지요. 아마 우리는 이런 행동을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배고프다는 이유로 남의 빵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실 칸트의 윤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의 보편적인 판단 능력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형식에 치우친 냉정한 윤리학이 될 위험을 안고 있지요. 더구나 그의 윤리학은 자기 변명이나 기만에 빠질 수 있는 문제점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할 거야. 내가 당신에게 했듯이 당신이 나에게 똑같이 행동한다 해도 나는 상관없어.”
이처럼 형식적 일관성 또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윤리학은 일종의 냉소주의로 흐를 위험마저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관된 이성의 법칙을 추구하는 윤리학은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나 타인을 구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바로 여기에, 위험에 빠진 아이를 보자마자 몸을 던져 그 아이를 구하도록 이끄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또는 동정심의 중요한 가치가 놓여 있습니다. 이성적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이 보편적인지 반성하는 것보다.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즉각적인 감정이야말로 더 강한 윤리적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중국 인민대학의 <공자연구원>이나 KBS의 <유교, 2500년의 여행>은 이 두 가지 논리를 염두에 두고 유학 사상이 인류 미래의 비전이라고 역설했던 것일까요? 이들의 장밋빛 전망이 정치 논리나 자본 논리에 따라 유학 사상을 표면적으로 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공자의 이름으로 이런 현상을 치열하게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공자에서 시작된 유학 사상은 정치적인 압력이나 사상적인 도전에 맞서 굴복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해왔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지적 환경에서 새로운 인간 관계의 논리를 제공할 의무가 유학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바로 공자의 정신이자 12인의 유학자들을 관통하는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이 훤히 알고 있는 예절인데도 태묘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다시 물어보았던 공자의 인간애와 삶에서 만나는 타자에 대한 공자의 예민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리 공자를 높여도 유학 사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논어』를 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공자적인 것을 되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정약용의 뒤를 이어 공자의 정신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열네 번째 유학자가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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