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라는 문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우리는 성서라는 문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공포감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 공포감이란 그것이 성령의 계시에 의한 절대적인 말씀이라서 일점일획도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세뇌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성서는 한 글자도 변동시킬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신앙 세계를 우리는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성서는 절대불가침의 신성한 말씀이며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절대불가침의 성서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교보나 동네책방, 대한기독교서회나 분도출판사책방 같은 곳에 가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책방에 꽂혀있는 성서는 한두 종류가 아니다. 이 글을 쓰다가 바람도 쉴 겸해서 나는 시내에 나가 눈에 뜨이는 성서는 모두 사가지고 돌아왔다. 요한복음 1장 1절만 가지고 생각해보자!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개역한글판)
2.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공동번역판)
3.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판)
4.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한국천주교회 창립200주년기념 개정보급판)
5.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 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현대인의 성경판)
6. 천지가 창조되기 전, 아무것도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 (현대어 성경판)
내가 오늘 구한 성경은 이것이 다인데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판본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는 성경이란 말인가? 문제는 어휘의 선택부터 심지어 신택스(syntax, 구문론), 세맨틱스(semantics, 어의론)까지 모조리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의 하나님 말씀으로 간주할 수가 없다. 어떤 다른 문장을 예를 들자면 전혀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이 한둘이 아니다. 과연 성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느 판본, 어느 책이 진짜 성경이란 말인가?
유식한 독자들은 이 우리말성서의 문제는 단순한 번역상의 문제이며,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희랍어텍스트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말씀은 하나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희랍어성경을 보고 말하시오라고 대꾸할지도 모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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