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의 의미
그러니까 기독교의 정경화과정(canonization process)은 4세기에 걸쳐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이단을 배제하려는 배척의 과정이었으며, 결집(結集)이 아닌 전집(專集)의 과정이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의 367년 부활절 메시지에 최초로 명료하게 나타난 ‘정경적(canonical)인 것과 외경적(apocryphal)인 것’의 분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367년 이전의 초기기독교 문헌에 대해서는 우리는 ‘외경’(Apocrypha)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외경은 오직 정경이 있기 때문에만 생겨나는 규정이다. 정경이 확정되는 순간 이전에는 그것은 모두 동일한 경전이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는 모든 선수가 동일한 메달리스트 후보인 것이다.
정경이라는 말의 카논(canon)은 무엇을 재는 ‘자 막대기’(rule)라는 뜻인데 그것은 성경(scripture)과 동의어로 쓰이는 말이다. 보통 우리가 외경의 뜻으로 쓰는 아포크립파(apocrypha)는 ‘숨겨진 것’ ‘비밀스러운 것’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 말은 정확하지 못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외경이 숨겨져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외경이라는 뜻의 실제적 의미는 ‘27서에 끼지 못한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문헌’이라는 뜻이다. 아포크립파보다는 슈데피그랍파(pseudepigrapha)라는 개념이 사용되기도 하나, 여기에 또 다시 위(僞)의 개념이 개재되므로 역시 적합하지 못하다.
정경과 위경의 기준으로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는 ‘신적인 영감에 의한’(divinely inspired)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 이전에 알렉산드리아의 주요사상가였던 오리겐(Origen, c.185~c.254)은 ‘전세계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homologoumena, 혹은 anantirrhēta)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정경화과정을 지배한 기준을 대별하면 1)사도저작성(apostolicity) 2)신앙의 잣대(regula fidei) 3)교회의 일치된 의견(the consensus of the churches)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의 논의를 한번 다시 회고하면서 요약해보자!
AD 30년 | 예수의 십자가 처형 |
AD 70년경 | 마가복음의 성립 |
AD 100년경 | 요한복음의 성립 |
AD 150년경 | 마르시온 정경(11서체제)의 성립 |
AD 172년경 | 4복음서 디아테사론 성립 |
AD 300년경 | 무라토리 정경(23서체제) 성립 |
AD 367년경 | 아타나시우스 27서 정경 성립 |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현세적 권위는 로마제국의 권위였다. 결국 그 사건이 있은지 337년만에 27서정경이 성립하면서 로마제국은 이제 기독교가 마련한 십자가 위에 못박히고 만다. 로마제국에 대한 기독교의 완벽한 승리였다. 27서정경의 성립은 로마제국의 정신적 카논(기준)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27 서정경은 향후 인류사를 지배하는 가장 막강한 카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다음의 중요한 두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1.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 다시 말해서 27서체제의 정경화작업에는 교회라는 조직의 이해가 얽혀있었다.
2. 27서정경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정경과 외경의 분별이 성립할 수 없다.
엄밀하게 정통과 이단의 기준도 성립할 수 없다. 27서 정경화 작업이 이루어질 당대에만 해도 27서에 편입되지 못한 수많은 정경후보의 책(비블로스)들이 있었다. 그 책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그 방대한 인류의 유산인 그토록 화려한 예술품, 그리스ㆍ로마의 신전들이 하루아침에 우상파괴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무너져버리듯,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은 명약관화한 이치이다. 이제 우리는 이 수많은 고귀한 비블로스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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