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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2일차 - 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2일차 - 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건방진방랑자 2022. 3. 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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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기적 자아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주시죠?”

 

연기란 한마디로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라는 뜻입니다. 무자성이란 자성(自性)의 법(, dharma)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interdependency), 상호관련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ㆍ상호관련성을 불교에서는 공(, śūnya)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 Nothingness)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항상 거기 있는 겁니다(something there). 그러니까 무아라고 하는 뜻은 아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거나 나의 완전한 무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에 대한 이해방식의 근원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마음의 소멸이 아니라 마음의 혁명입니다. 혁명이란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혁명을 불교는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아적 나의 본연으로 돌아왔다 할 지라도 그것이 윤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윤회의 굴레로부터의 해탈(解脫, mokṣa)이라고 하는 불교의 지상명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들의 영원한 윤회만 존속하는 것이 우리들의 우주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너무 지나치게 해탈이라고 하는 말에 집착해서는 아니 될 것 같습니다. 원시경전에서부터 부처님 자신이 열반(涅槃, nirvāṇa)이나 해탈이라는 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윤회로부터의 온전한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번뇌로부터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가볍게 쓰였던 말입니다.”

 

그렇다면 번뇌로부터 벗어난다면 윤회도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윤회라고 인식했던 세계 그 자체가 깨달음의 세계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곧 대승이 말하는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말의 참 뜻이 아니겠습니까? 왜 또 다시 달라이라마께서는 윤회라고 하는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실체화 하고 계신 것입니까?”

 

윤회의 실체화, 그것은 참 강력한 표현이군요. 그런데 도올선생님께서는 저의 말을 근원적으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도올선생님은 윤회를 부정하고 나는 지금 윤회를 긍정하는 각도에서 서로의 변론을 쌓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겠는데요, 불교에서는 근원적으로 윤회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가치적으로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즉보리라는 혁명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해탈(解脫, mokṣa)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는 한 윤회는 존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 있어서도 너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현재적 순간의 절대적 경지로서 파악하는 것은 연기적 세계관에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선승들의 그러한 주장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현재라는 찰나는 과거의 업의 결과이며 또 미래의 지향성과 반드시 관계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승계적인 흐름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내가 현세에서 대단한 각()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기나긴 과거세의 업장을 다 소멸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아무리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존재성의 관계그물이 있는 한에 있어서는 또 다시 업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윤회란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역사입니다. 인간의 허약하고 집착하고 치우치는 변계소집(遍計所執, parikalpita)의 마음이 있는 한 윤회의 굴레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시는 것은 도올선생님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경지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윤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쑤시고 들어간들 승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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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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