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이요
나는 사실 그에게 묻고 싶은 불교학의 전문적 주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평생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호학(好學)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를 좋아한다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서 독단에 갇혀 버린다. 사실 공자가 말하는 호학도 자기를 비울 줄 아는 마음의 공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의 공부가 곧 공의 지혜다. 내가 생각하기엔 공자도 그러한 공의 지혜를 터득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십일세기에 현실적으로 존속하고 있는 왕입니다. 왕 노릇하기가 좋습니까? 싫습니까? 어떠하신지 개인적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화의 벽두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하나의 제도일 뿐이라고요. 왕이니 달라이라마니 세계 지도자니 하는 것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man-made)입니다. 그것은 모두 세속적인 명칭입니다. 티벹의 국민들이 내가 달라이라마라는 제도적 사실을 받아들이면 나는 달라이라마이고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게되면 나는 달라이라마가 아닙니다. 티벹국민들은 16세기 이전에는 달라이라마가 없이도 아주 잘 살았습니다【달라이라마라는 제도는 실제적으로 제3대 달라이라마 소남갸초(bSod nams rgya mtsho, 1543~1588)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1대와 제2대는 제3대로부터 추증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여하에 따라서 기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도 나는 법복을 입고 보리수 밑에 앉아 제식을 행하였습니다. 고요하게 앉아 명상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하는 양심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의 운명은 내가 승려(monk)라는 사실, 그것 하나입니다. 내가 승려라는 사실은 누구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승려의 계율을 받았고 그 계율을 지키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내가 승려라는 사실을 누구도 나로부터 뺏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국정부는 나를 비난하여, 분열주의자(splitist), 봉건주의자(feudalist), 거짓말쟁이(Big Lier), 도둑놈(thief), 살인자(murderer), 겁탈자(rapist), 중옷을 뒤집어 쓴 늑대(the wolf in monk's robe)라는 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다 인간이 만든 말일 뿐입니다. 내가 승려라는 사실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멘탈 프로젝션(mental projection)일 뿐입니다. 나를 누가 신이라 부르는, 생불이라 부르든, 관세음보살이라 부르든지 그러한 것은 모두 그들 자신의 멘탈 프로젝션일 뿐입니다. 나는 여전히 도올선생님과 같은 단순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는 중입니다. 그 이외의 어떠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만이 진정한 나의 운명입니다.”
여기 어찌 나의 사족을 첨가하리오? 또박 또박 공들여 말씀하시는 성하의 어조는 너무도 소박하고 진실했다. 나는 마지막 한 질문을 던졌다.
“성하께서는 어려서부터 어려운 불경공부를 하셨고 많은 요가ㆍ밀교수행을 하셨고 또 세계를 다니시면서 폭넓은 지식을 흡수하셨습니다. 달라이라마 당신은 분명히 우리시대의 훌륭한 사상가이며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 제가 정말 인간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해서 좋을지 모르겠는데, 정말 너무 어리석은 질문 같습니다만, 정말 성하의 내면 속 깊은 정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성하!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잔뜩 긴장 속에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 듯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 전체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의 답변은 내가 기대한 모든 언어를 초월한 매우 진솔한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이때 나의 목에는 카타가 걸렸다. 나는 어떠한 종교적 제도와도 타협하고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자비감의 동포애적 표현으로서 나는 내목에 걸리는 카타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드디어 우리는 기나긴 대화의 자리를 털었다. 궁의 널찍한 홀을 같이 걸어나올 때 달라이라마는 나를 쳐다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에는 북경에서 만납시다!”
순간 왜 북경에서 만나자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의아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중국통이라는 것을 배려했음일까? 혹은 서울에서 북경이 가깝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티벹의 주권이 확립될 수 있다는 신념을 표방하는 것일까? 계속 그를 의아스럽게 쳐다보자 달라이라마는 좀 당황한 듯 어조를 바꾸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사에서?”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포탈라에서 만나죠!”
나의 발자국 소리는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뒤돌아보질 않았다. 찬란한 정오의 햇살 속에 보드가야 대탑이 빛나고 있었다. 인도는 나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미로였다. 인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대륙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나의 삶의 미로였던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은 깨달음을 향해 가는 나의 삶의 여정이었다.
이 글은 2002년 5월 7일 탈고 되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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